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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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당당한 고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갈라디아서 4장 6절은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고 증언합니다. 로마서 8장 15절 역시 우리가 받은 것이 다시 무서워하게 만드는 '종의 영'이 아니라 '휘오테시아' (υἱοθεσία)라고 말해줍니다. 조금은 어렵게 들리는 이 말은 사실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여짐을 뜻합니다. 우리가 양자 됨을 누리게 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함께하시기에 비로소 하나님을 향해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확실한 담대함을 얻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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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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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점은 이 외침이 단순히 우리의 의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갈라디아서의 흐름을 가만히 짚어보면, 우리가 마음을 먹고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이 먼저 그렇게 외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의 ‘크라존’은 중성 단수 분사로, 바로 앞의 ‘영’을 가리키며 그 영이 “아빠, 아버지”라고 외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그 뜨거운 고백은 사실 성령님이 먼저 시작하신 사랑의 노래인 셈이지요. 우리는 그저 그분의 숨결에 목소리를 얹어, 이미 허락된 자녀의 권리를 함께 누리는 것뿐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서는 성령님이 외치시고, 로마서 8장 15절에서는 우리가 외칩니다. 곧 성령의 외침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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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의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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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남의 집에 불쑥 들어온 불청객처럼 굴 때가 있습니다. 조금만 실수해도 금방 쫓겨날까 봐, 혹은 주인의 기분을 거스를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발걸음을 죽이곤 하지요. 하지만 성령님은 엄하게 감시하며 예의를 따지는 관리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 이 집의 어엿한 가족이 되었음을 분명하게 일깨워 주시는 분입니다. 양자라는 말이 주는 법적이고 딱딱한 무게는, 안아주시는 그분의 따뜻한 배려를 통해 우리 집이라는 편안한 풍경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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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서서 돕고 붙드는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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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일컫는 '파라클레토스' (παράκλητος)라는 말을 가만히 읊조려 봅니다. 우리말로 보혜사라고 옮긴 이 말은, 우리 곁에 불려 와 나란히 서서 돕는 분이라는 뜻이지요. 가장 힘든 순간에 내 편이 되어 곁을 지키는 든든한 조력자를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로마서 8장 26절이 말하듯,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 그저 막막한 침묵 속에 있을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고 깊은 일들 속에서도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거친 호흡을 어루만지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조용히 등을 밀어주시는 분입니다.
싸늘함 대신 평안
가끔 성령 충만한 모습을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누군가를 몰아세우거나, 날카로운 논리로 상대를 꼼짝 못 하게 하는 단호함에서 찾으려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령의 충만함이라기보다 끓어오르는 개인적인 감정에 가깝지 않을까요. 참된 성령의 역사는 잘못의 감옥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아빠의 품으로 이끄는 평안으로 피어납니다. 만약 성령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공포에 떨게 하거나 자녀로서 누리는 자유를 빼앗으려 한다면, 그것은 '프뉴마'(πνεῦμα), 즉 생명을 살리는 맑은 숨결이 아니라 우리 안의 욕심이 만들어낸 싸늘한 그림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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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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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받았다는 중요한 표지 가운데 하나는 놀라운 기적보다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때 찾아오는 말할 수 없는 안도감에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6절 말씀처럼 성령님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가끔은 하나님 앞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처럼 긴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성령님은 그런 딱딱한 모습에 머물게 하지 않으십니다.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고, 가장 편안한 목소리로 아빠를 부르며 쉬게 하십니다. 신앙은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는 고행만이 아니라, 돕는 분의 손을 잡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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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 김한원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