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령사회와 노인문제" 1
“우리는 노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구 고령화라는 당면 과제는 경제 대국이 나아가는 미래의 수평선 위에 거대한 빙산처럼 버티고 있다. 수면 위에 드러난 것은 지난 수세기에 걸쳐 발생한 노인 인구의 전례없는 증가와 유년 인구의 전례없는 감소다. 넘실대는 파도 밑에 실체를 감추고 있지만 인구 통계학적인 변화에는 엄청난 경제,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그 비용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라 해도 제때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파산에 이를 만큼 위협적이 다.“
- 피터 G. 피터슨
* 들어가는 말
대한민국은 2024년 12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를 넘었다. 초고령 사회(super-aging society))로 진입한 것이다. 이런 변화에 앞서서 한국 교회 안에서는 초고령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한국교회 안에서 60세 이상 인구는 2024년 기준 28.9%에 달했다. 노인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급변하는 사회 구조의 변화에 맞물려 개인의 생애주기, 가족관계, 노후대책, 의료복지에 대한 이해도 새롭게 업데이트 되고 있다. 기존의 이해 방식을 가지고 초고령 사회가 불러오는 새로운 변화에 대처할 수 없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초고령 사회의 현실을 노년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조명해보려는 이번 연재에서 우리는 노년이 겪는 생물학적 변화와 사회적 인식의 문제를 다룬 후, 노년의 삶에 찾아오는 위기의 양상들이 어떠한 것들인지, 그리고 노년의 자유와 삶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필수 요소들에 대한 논의를 거쳐, 보다 누구나 성숙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조건들을 살펴보려 한다. ‘초고령 사회와 노년’이라는 주제를 중심하여 누구나 겪게 될 노인 문제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다. 이런 논의를 통해 우리는 노인 스스로의 자기 이해뿐만이 아니라, 미구에 노인이 될 젊은 세대가 노인 문제를 이해함으로써 세대간 상호 이해의 지평도 넓혀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2050년 경이 되면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인구 전체의 약 40%에 달할 것으로 전망이 되고 있다. 개신교 신앙 공동체 안에서 65세 이상의 고령자는 그보다 더 많은 약 43.9%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추세를 생각한다면 노령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변화를 이해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은 해가 갈수록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미시적으로 본다면 노년 문제는 생물학적 몸의 변화가 불러오는 노화로 인해 일어나는 개인의 신체적 변화의 결과로 개별적인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회 속에서는 노인 인구의 증가로 인한 다양한 사회적 변화를 결과한다. 2000년 대 이후 초고령화 사회가 불러오는 변화는 현대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에, 신앙공동체들 역시 이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대응할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인과 노년;
일반적으로 노인을 이해하는 관점은 노인을 늙어가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늙은 사람,“ 즉 대상화된 노인이라는 관점과 시간 속에서 여러 단계를 거치며 늙어온 인간이라는, 인생의 단계나 과정 속에 있는 상태로서의 노인을 바라보는 ”노년기 인간”이 있다. 늙은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노인을 바라볼 때에는 주로 젊음을 상실하거나 삶의 기회가 이미 많이 소진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 노인 개인의 개별성보다는 늙은이 일반으로 뭉뚱그려 이해하게 된다. 이런 시각에서는 노인을 사회에서 밀려난 약자로 여기고 복지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생산성 없는 인간, 한 물이 간 존재로 여기는 대상화가 쉽게 일어난다. 예컨대 청년과 노인을 비교할 경우 노인은 무엇인가 상실하고 결핍된 존재로 쉽게 간주되어 다양한 사회적 편견에 갇히게 된다. 그러므로 노인이라는 개념만으로 늙어가는 인간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표현하기 어렵다.
이에 비하여 노년이라는 개념은 여러 생애주기를 거쳐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인간의 상태를 드러낸다. 노인을 이해하기에는 보다 총체적이고 통전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개념이다. 노인이 신체적이며 생물학적으로 ‘낡은‘인간을 지칭한다면, 노년은 지난 삶의 과정을 통해 성숙한 단계에 이른 존재로서 그 단계에 적절하고 고유한 삶의 과제를 가지고 있는 노인세대를 지시한다. 따라서 늙어가는 인간을 타인들이 타자화하게 될 경우 노인이라는 개념이 주로 사용된다면, 늙어가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는 노년이라는 개념이 주로 사용된다. 물론 두 개념 모두 늙어가는 인간을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노인은 과거와 단절된 상태로 파편화된 늙은 인간이라면, 노년은 삶의 여러 단계를 거쳐 마지막 단계에 이른 경험 많고 지혜로운 사람을 가리키는 뉴앙스를 담고 있다.
이 두 개념을 보다 전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노인학, 혹은 노인의학(geriatrics)과 노년학 (gerontology)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인학은 어원적으로 노인을 지칭하는 “geras”라는 단어에 의사나 치료를 의미하는 “latros“를 조합한 전문용어다. 이미 노인학이라는 단어 속에는 노인 의학적 관점에서 노화를 질병이나 치료, 혹은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따라서 노인학은 노인 몸에서 일어나는 병리적 현상, 신체적 기능 저하를 막고 어떻게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아갈 수 있도록 노인을 도울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반면 노년학은 노인을 지칭하는 ”geron“에 학문 이론을 뜻하는 ”logos“가 더해진 전문용어로 노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노화를 병리현상을 넘어서 일종의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을 담고 있다.
노인학이 늙어가는 인간을 의학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어떻게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지킬 것이냐의 문제를 다룬다면, 노년학은 늙어가는 인간을 인문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따라서 노인 문제를 다룰 때에는 이 두 가지 시각이 병행하거나 교차하게 된다. 늙고 병든 인간으로서의 노인을 바라볼 때는 노인학적인 관점이 앞서지만, 삶의 의미와 성숙, 그리고 존엄한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단계에 이른 사람을 생각할 때는 노년학적 시각이 요구된다. 노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두 전문 영역이 형성된 것은 인간이란 생물학적으로 조건지어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 생물학적 조건을 넘어서 정신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초고령 사회의 문제
노인들은 오래 살고, 젊은 세대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 초고령 사회의 도래는 무엇보다 수명이 연장된 사회구조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고도로 발달한 의료기술과 공중보건 위생의 개선은 항생제, 백신, 수술 및 화학적 요법을 통해 영아 사망률을 급격히 낮추었고, 사람들의 기대수명을 비약적으로 높혔다. 현대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자연주의적인 주거와 생활 환경에서 벗어나 인위적으로 구조화된 관계로 바꾸어 놓았다. 도시를 중심한 이동성, 일상 생활, 먹거리, 노동환경, 여가 생활 등은 기본적으로 상당한 자원을 소모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가 되어 충분한 소득이 없을 경우 기초생활 유지가 어렵게 되었다.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젊은 세대들의 만혼과 비혼이 늘면서 전통적인 가족중심의 삶의 규범이 상당히 해체되었다. 비록 결혼을 했다 할지라도 주거 및 자녀 양육과 교육 비용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사람들은 자녀를 하나 이상 낳고 기르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그 결과 한 편에서는 고령 인구는 증가하는 데, 다른 편에서는 인구 감소가 일어나게 되었고, 이 문제는 곧 부양 대상 인구의 증가와 노동 인구의 감소로 인한 불균형을 초래하여 사회 경제적 문제를 대두시키고 있다.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2022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고령 노인 인구의 의료비가 전 국민 의료비의 45%를 상회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사회학자 바우만(Zygmunt Bauman)이 현대사회를 설명하기 위하여 액체근대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결혼과 가족 관계를 지탱하던 전통적 규범이 해체되어 불안정한 관계에 그치고 만다는 주장 지그문트 바우만, 『액체근대』, 이수일 역(강, 2009). 은 이런 맥락을 잘 짚어낸 것이다.
가족관계의 다양성과 더불어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여성의 사회 진출 현상은 전통적으로 노후의 삶의 안정과 보호막 역할을 해오던 가부장적 가족관계의 해체로도 이어졌다. 이런 변화를 일찍 예측한 사회에서는 국민의 노후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연금과 보험 제도 등 다양한 사회 안전망 확충을 마련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아왔다. 이런 사회 변화는 세대 간 갈등으로도 이어진다. 고령의 노인들은 평생을 초고령사회 이전의 인생관을 가지고 앞세대 어른들을 돌보고,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살아왔지만, 후 세대 사람들은 부모조차 모실 여력이 없거나, 탈가족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대 세계가 마련해주는 좋은 주거 환경과 웰빙 식생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의 방식에 익숙하고, 이전에 비하여 높은 생활비와 자녀 양육및 교육 비용을 치를 수 있는 경제적 능력 여하에 따라 삶의 질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가족관계보다 개인의 행복과 자아실현을 더 중시하는 가치관을 따라서 살아가는 경향도 보인다. 이렇듯 초고령 사회의 젊은 세대는 고령이 된 노년 세대와 인생관과 가치관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며 크고 작은 갈등을 겪게 된다.
”노인들은 오래 살고, 젊은 세대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세상에서 젊은 세대가 노부모 세대를 배려하고 돌볼 수 있을지 의문시 되는 세상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이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비속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분히 노년 혐오적 표현들이 전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현실을 살펴보면 이런 의문이 매우 타당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인들을 연금이나 축내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연금충“이라 불리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노인을 ”대형 쓰레기“(소다이 고미), 젖은 낙엽(누레 오치바) 취급하는 노혐(老嫌) 문화가 있으며, 영국에서는 침대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bed blocker”, 미국에서는 “오케이 부머”(OK, Boomer) 라는 속어가 세대간 불평등과 부양부담을 안겨주는 노인 세대를 향해 대화를 차단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호주에서는 노인을 고핀 다저(coffin dodger)라 하여 관속에 들어갈 때가 지났는 데도 요리조리 피하며 사는 존재라 비하하기도 한다. 노인 수가 많아지는 초고령 현상을 일러 백발 쓰나미(silver Tsunami)라 지칭하며 과장되게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노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평가는 노인의 사회적 생산력의 약화라는 문제만이 아니라 노인들의 추례한 행동양식에서 증폭되기도 한다. 노인 혐오나 폄하의 요인으로는 노인들 특유의 권위주의와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무례한 언행, 청결치 못한 몸과 옷에서 나는 노인 냄새에서부터 전근대적 가치관 옹호, 자신의 노후에 대한 무책임 등이 언급되고 있다.
* 노인 이해의 변화, 초고령 사회 이전과 이후
동서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노인을 이해해온 방식은 초고령사회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뉜다. 세계적으로 초고령 사회의 선두주자로 공인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2006년 고령인구가 20%를 넘었고, 2025년 9월 현재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3,619만명에 달하여 전 국민의 29.3%를 상회하고 있다.
이는 인구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75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 인구의 18%에 이르는 현실을 나타내는 지표다.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은 단순히 노인 인구의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연령층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뀜으로써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대처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새로운 사회의 등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초고령 사회 이전의 노인 이해의 패러다임은 몇 가지 점에도 특화될 수 있다. 일단 무엇보다도 고령 노인은 소수였기 때문에 사회에서 특별하고 희귀한 존재였다. 극단적인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회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회에서 희귀한 존재인 고령 노인은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각별한 존중과 공경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특히 유교문화권의 특수성을 가진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노인은 효(孝)사상을 가진 자녀손들로 구성된 가부장적인 대가족주의의 보호를 받았다. 노인이 나이가 들어 노동 일선에서 물러나도 자녀손들의 공경과 돌봄을 받으며 노후의 여생을 즐기는 것이 노년의 과업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사회구조의 정태적 성격으로 인해 노인이 오랜 동안의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지혜는 새로운 세대에게도 여전히 유익한 것이 되어 노인들은 지혜로운 원로로 인정을 받았다. 그들은 희귀한 존재로 살다가 가족 공동체에게 큰 사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으며 살다가 노쇠하여 기력이 약해지면 가족들의 돌봄속에서 짧은 노환기를 겪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초고령 사회에서의 노인의 위상은 이전에 비해 매우 달라졌다. 수명이 연장된 세상에서 노인은 이제 희귀한 존재가 아니라 매우 흔한 존재가 되었다. 과거에는 공경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무수한 노인들의 일상을 사회가 책임지고 부담해야 할 존재로 여겨져 노인복지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붕괴는 과거 노후의 삶을 지지해주던 전통적 기반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노인의 수명이 연장되어 누구나 평균 83년을 생존하게 됨으로 오래 살고, 오래 늙어가며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기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길어진 노후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적 요구도 당연히 높아졌다. 급변하는 사회 변화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노년에도 부단히 새로운 정보를 얻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년 후기, 노쇠기에 접어들면 삶의 자리에서 추방되듯 의료 시설로 옮겨져 약 83%의 노인들은 의료화된 죽음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상과 같이 간략히 살펴보기만 해도, 초고령 사회의 도래란 노인들에게는 세상이 개벽하는 것과 같은 다차원의 변화가 강요되는 현실이 다가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초고령 사회를 앞서서 겪어온 나라들의 사례를 전거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2026년 현재 전 세계에서 약 40개 국이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인류 최초로 초고령 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초고령 사회에 대처하기 위하여 일부 민주화된 복지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세심하게 국가의 사회, 경제, 의료 시스템을 준비해 왔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처럼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오지 못했다. 선진 사례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오늘의 세계 일각에서는 가족 중심의 노인 돌봄 구조의 붕괴를 일찍부터 파악하고, 국가 사회적 차원에서 노인 돌봄 사회로의 변혁적 이행 과정을 선택하고 실천해 왔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그들이 노인 친화 사회를 모범적으로 이루어 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누구나 노인이 될 것이며, 노후의 삶이 길어질 것이므로, 이에 공동적으로 대처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일찍부터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해 왔기 때문이다.
* 생명친화 사회를 향한 노력
노년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어떻게 구상되고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을 일찍 가진 이들은 북유럽 기독교 국가의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노인을 이해함에 있어서 노인을 타자화하거나, 소외시키지 않는 관점이 가장 인간다운 것이라는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가졌던 질문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정치가들은 ‘은퇴 후의 노인들을 방임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돌볼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30년대 북유럽 국가들(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은 사회 민주주의 유형의 복지 모델을 선택함으로써 사회내 부의 양극화를 줄이고, 보편적인 인권 가치를 노인 정책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정신적 가치는 다분히 기독교, 특히 루터의 종교 개혁 사상이었다. 루터의 두왕국설에 근거해 사람들은 국가를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세우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정치가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구현시켜 나가기 위해 섬김(diakonia)의 소명과 책무를 가진 이들로 간주했다. 동시에 루터의 만인사제직 사상을 따라 모든 국민이 보편적 평등권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특히 1930년 대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알빈 한손(Albin Hanssen)총리가 제창한 “국민의 집(Folkhemmet)“개념은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가정으로 여기고, 모든 국민이 동등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구상하게 만들었다. 넬슨(Robert H. Nelson)은 그의 저서에서 루터의 정치신학, 소명론, 만인 사제직, 그리고 시혜적 적선을 금하고 연대적 나눔의 실천을 강조했던 루터의 사회윤리 사상이 북유럽 복지국가 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논증한 바 있다.
북구의 복지국가 모델 형성에는 국민들이 평등성에 기반한 연대성의 윤리가 크게 기여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와 국민이 동질성을 나누는 연대성의 윤리가 높은 조세부담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조세율에 바탕을 두고 생애주기에 가장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문제들을 공공 자원으로 해결하는 사회를 가꾸어 왔다. 교육, 의료, 그리고 노후 복지 문제가 개인이 치러야 하는 비용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국가가 감당하는 사회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북유럽 사람들은 자신의 저금 통장을 믿는 것이 아니라, 국가 사회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살아가는 국민이 된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북유럽 국가들은 노인 돌봄을 국가의 의무이자 노인의 권리로 정착시켜 왔다.
* 노인에게 비정한 한국사회
초고령 사회로 들어선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지표를 살펴볼 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노년 준비가 매우 부실하다. 우리 사회의 노인들이 처한 현실의 진면목은 북유럽이나 가까운 일본 사례와 비교해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노인 빈곤률이 2~5%에 가까운 북유럽 사회에 비해 우리나라 노인빈곤률은 40%에 가깝다는 사실, 그리고 OECD 38개국 중에서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10여년 동안 1위라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출처: 국가통계연구원, “한국의 사회동향 2025.” 한국의 소득 기준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인 39.7%로 나타났으며, 76세 이상의 노인 빈곤율은 52.0%로 2명 중 1명 이상이 빈곤층에 속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은 노인빈곤률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초고령사회의 도래를 예측하고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무능의 소산이다. 그 결과는 사회적 타살로서 고령 노인의 자살로 나타나고 있다.
2022년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 2022년 일본후생성 자살대책백서, 그리고 2022년 OECD 건강 지표에서 밝혀진 데이터에 의하면 80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한국이 60.6명, 일본이 21.6명, 스웨덴은 17.5명, 그리고 덴마크는 약 12.3명으로 나타났다. 노인 자살의 주요 원인과 특징은 네 나라가 상당히 다르다. 가장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세 나라 모두 가족에게 주는 경제적인 부담이나 신체 질환으로 생존 조건이 열악해서 일어나는 자살이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 노인들에게는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과 의료지원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립형 자살이 주를 이루고, 스웨덴은 삶의 독립성 상실이 가장 큰 이유였으며, 덴마크 역시 삶의 질이 저하된 현실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직 우리나라 노인들만 빈곤, 신체질환, 그리고 가족에게 짐이 되어 가족 갈등의 원인제공자가 되는 것이 싫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리 사회는 죽음의 그늘에서 노인들을 지켜주는 안전망이 매우 취약한 사회의 실제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노인들은 국가 사회도 돌보지 않고, 가족들이 돌보기도 어려운 정황에서 극도의 곤경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80대 남성의 자살률은 118.7명에 달해 고령 남성 노인들이 압도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 교회는 과연 이런 현실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수명이 길어진 세상에서 노년을 맞는 것이 어떤 나라에서는 인생의 성숙과 안식을 얻는 기회로 인식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장수가 축복으로 여겨지기 보다는 형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어떤 노인들은 “어서 죽어야지..., 왜 이리 명이 긴가”라며 스스로 자책하며 탄식하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사회는 여전히 노인에게 비정한 사회로 머물고 있다.
* 나오는 말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대한민국의 노인들 중 절반 이상은 편안한 노후를 지내지 못하고 극빈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이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여력을 가지지 못해서일까? 개인의 책임은 부분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보다 큰 책임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책무가 있는 국가에게 있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치가들이 국민 수명이 길어져 빠르게 고령화되어가는 사회적 변화를 예측하고, 충분한 생명 안전망을 설계해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진 복지 국가들은 이미 1930년 대에 국민 연금 제도를 설치하고 지혜롭게 수정 보완해오면서 오늘의 안전한 사회를 이루어 낼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뒤늦은 1977년에서야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도입했고, 국민연금 제도는 그보다도 더 늦은 1988년부터 시행하기 시작했으니 북구의 나라들에 비하여 무려 50년 정도 뒤쳐져 있는 셈이다. 그 결과가 생명의 안전망이 부실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생명의 안전망이 부실한 사회에서 가장 곤경을 겪게 되는 이들은 은퇴 후 몸으로는 노화를 겪으며 다양한 만성질환에 노출되기 쉬운 노인들이다. 우리사회의 약자들, 노인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 박충구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