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벙어리 예수”
교회의 예수, 예수의 교회
요즘 내란 정국에서 한국교회를 지켜보면 일부 극우 기독교가 기독교를 과잉 대표하면서 전체 기독교를 싸잡아 진한 욕을 먹게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지만, 대부분의 목사들이 내란 세력 앞에서 침묵하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그들의 침묵에서 나는 예수의 침묵을 느꼈다. 그들이 믿는 예수를 벙어리 예수라고 말하면 너무나 신성모독적일까? 우리는 어떤 예수를 생각하며 사는 것일까 스스로 물으며 이 글을 썼다.
1.
모든 것을 신이나 자연의 눈으로 보면 미시적 개체성은 그저 거대한 공식의 부속품처럼 여겨진다. 반면 신이나 자연의 법칙을 떠나 인간 실존을 바라보면 한없이 가엾다. 정치적 관심을 가지다보면 또 거기에 매몰되어 사람을 함부로 다루게 된다. 실제의 인간들은 생노병사의 과정에서 필경 죽어가는 존재로 보인다.
예수는 어떤 시선을 가지고 인간을 바라보았을까? 그는 정치가도 아니었고, 사실 종교인도 아니었으며,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을 읽은 엄청난 지식인도 아니었다. 문화적으로도 예수는 그저 유대적 배경을 가진 젊은 30대였다. 그는 바울처럼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업한 적도 없고 그의 공생애 이전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도 찾아 볼 수 없는 무명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잘 알지 못했다. 지금도 예수에 대해 설명하려는 신학자들이 적지 않다. 200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그를 찾아 보려는 시도는 사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조금 아는 예수는 정말 바른 예수일까?
2.
유대 사회에서 태어나 남다른 생각을 가진 예수에 대한 기록은 그가 스스로 기록했던 것도 아니다. 그를 기억하고 있었던 이들이 무엇인가 기록을 남겨야 할 필요를 느껴 기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 필요는 예수를 여기 저기서 끌어다가 자기 편으로 만드는 논리들이 형성되면서 그러한 주장들에 대해 만족할 수 없었던 이들이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는 성서에 기록된 예수전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전부다. 그 밖에 것들은 기독교 역사에서 대부분 지워버리려 했다. 헷갈리게 하는 소리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형성되고, 그 종교를 이끌어가는 이들이 예수를 해석한 역사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강화하기 위해 많은 것을 덧입혔다. 아마 이 시기에 형성된 것이 “그냥 예수”가 아니라, “교회를 위한 예수”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회 안에서 교회의 위상이 점점 달라지면서 기독교는 서구 세계에서 지상의 최고 권력을 가진 영향력있는 종교가 되었다. 종교의 옷을 입은 예수는 교리와 교권이라는 갑옷을 입은 예수가 되었다. 오늘의 대부분의 기독교는 바로 이런 예수를 매우 중시한다. 소위 정통과 이단을 나누는 기준이 교회를 위한 예수가 된 것이다. 여기서는 성서를 자백시키며 얻은 “영혼 구원론”이 핵심이 된다.
3.
19세기까지 영혼구원을 위한 교회의 중심부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위상은 흔들림이 없었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던 인간들이 고난과 죽음의 그늘을 넘어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적 권위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인간의 유한한 본성과 맞물린 구원을 약속하는 교회의 권위와 결부되면서 의심할 수 없는 진리로 표방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그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길은 오직 기독교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신앙고백적 명제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가진 신앙의 뼈대가 되었다.
특히 16세기 이전의 기독교는 이러한 구원의 능력이 오직 기독교에게만 주어졌고, 사제들에 의한 성례전을 통해 신도들에게 전해진다는 성직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성직자없는 예배나 기도의 유효성을 제한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제한은, 사실 성직자 독점주의에 가깝다. 성별된 성직자가 집행하는 제의를 통해서만 인간은 구원을 받는다고 교회를 위한 예수가 믿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 이들이 종교의 분열을 불러왔고, 구교와 개신교가 나누어졌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의 핵심은 성서주의냐 성직자주의냐라는 양자 택일의 요구했던 셈이다. 이 요구는 당시 엄청난 혼란을 불러왔다. 성직자주의를 부정하는 이들은 개신교인이 되었고, 전통적인 교회를 위한 예수를 믿는 이들은 구교에 남았다. 분열된 기독교는 30년이 넘도록 피터지게 싸웠다.
4.
종교개혁 사상이 남긴 성직주의에 대한 의심은 교회의 권위에 대한 불신과 끊임없는 내적 불화를 불러왔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자들은 재래의 성직주의를 부정하고 성서 텍스트에 신앙의 근거를 올인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그들은 정말 성서주의적이었을까? 교회를 위한 예수가 생산해낸 교리, 그리고 그 교리의 중심축을 성직자에게 둔 여러 교설을 비판하는 데에서는 다분히 설득력을 가졌지만, 철저히 성서적이어야 한다고 부르짓던 그들의 구호 “sola scriptura“는 사실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성서에서 그들이 찾아낸 공리가 여러 개 더해졌지만 –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영광을 하나님께(sola fide, sola gratia, sola gloria)”, 라는 구호가 그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준 적은 없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개신교 교리를 정리해 내야 했고, 거듭 거듭 성서적 신앙고백을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 냈다. 비록 성직자주의를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성서를 자신들과 달리 읽는 이견자들을 밀쳐내고 처형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루터의 대소 교리문답서나 칼뱅의 기독교 강요는 개신교 주류의 신앙고백으로 표준화 한 것이다. 이들 역시 스스로 성직자주의를 버린 후, 그들의 “교회를 위한 예수”를 다른 버전으로 생산한 셈이다. 그리고 그것을 복음주의의 정통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성직자주의를 버린 개신교의 성직자들은 저마다 정통이라고 주장하면서 분열되기 시작했다. 수 백, 수천개의 교단이 형성된 이유다. 2026년 현재 지구상에는 적게는 약 37,000개 교단, 많게는 약 47,000개 교단이 있다.
지금 그대가 다니는 교회는 그 중에 1개일 뿐이다. 누가 분열을 주도 했을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목사들이었다.
5.
이런 분열의 역사는 세 가지 측면에서 강화되었다. 하나는 목사가 성경을 읽는 방식에서, 그리고 또 하나는 목사가 경험한 영적 체험이다. 그 다음엔, 목사의 성경 읽기와 영성적 체험에 더해 언제나 사사로운 이익관계가 개입했다. 경제, 사회, 정치적 요인들이다.
개신교의 메시지는 목사가 손에 들고 있는 성경과 영성적 체험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는 돈 문제, 권위 문제, 힘의 문제가 언제나 섞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 생각이 아니라 에른스트 트뢸취의 탁월한 분석에 따른 이해다.
개신교의 정체성을 따질 때 많은 이들이 개신교의 4대 교설을 들이대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신교가 얼마나 이익관계에 민감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리챠드 니버는 종교가 그 창시자의 가르침에서 멀어지는 경우들이 있는 데, 그 이유는 돈, 즉 경제적인 문제에 천작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앙 관리 구조가 허술한 개신교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돈문제다.
조용기도 여기 걸렸고, 김삼환이도 여기 걸렸고, 최근에 말이 많은 박영선도 여기 걸렸다. 아마 거의 100% 모든 목사들이 이 문제로 인해 침묵할 때와 떠들 때를 구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예수와 무슨 상관일까?
6.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서는 예수에 대한 질문 “예수는 누구신가?”라는 물음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19세기부터 시작된 교리적으로 박제된 예수를 넘어 역사적 실존이었던 예수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케리그마(메시지) 중심의 이해에 그쳤다가 다시 유대적 역사 배경사 속에서 예수의 행태와 사상을 다시 읽어내는 예수 세미나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찾아낸 예수 이야기는 기존의 교회나 제도 속에서 자리를 잡기 어려웠다. 교리적으로 채색된 예수와는 다른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인물, 기존 질서에 저항한 위험한 인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상당수 목사들은 몸과 신분과 지위와 권위는 제도적 교회에 두고, 지극히 일부에서만 예수의 급진성을 받아들이곤 했다. 그러나 그 급진성조차도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가졌던 목숨을 건 개혁의 질에 비하면 훨씬 뒤쳐지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성서적 원칙을 지키려 했던 평화주의 전통의 재세례파나, 기득권과 모든 세속적 권위를 포기하고 오직 철저한 신앙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 노력해온 퀘이커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들은(상당수 목사들) 성직주의가 주는 특별한 지위를 포기하지 못하고 그 지위를 누리며 급진적인 예수의 모습을 따라 살아가려 애를 쓰고 있다. 이들의 목회적 혹은 실천적 삶에서 예수는 권력 친화적이거나 자본주의적 공리에 편승하는 분이 아닌, 다분히 오늘의 세계가 중시하는 가치에 반한, 반문화적인 옷을 입고 있다.
성서에 비치는 예수에게서 청빈, 평화, 민중, 가난한 이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인권과 민주적 가치와 연대를 나누는 지평을 형성하게 된다. 나는 지성적이며 양심적인 목회자라면 이런 흐름에 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7.
“예수믿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간다“라는 구원론은 오직 교권화된 교회만 교권으로 보증할 뿐이지, 아무도 이 명제를 확인해 주지 않는다. ”믿음“,”구원“, ”영생‘, “천국”에 대한 이해는 경험적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라, 순수신앙적 사유의 연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다 인간의 구복적 욕망을 담아내는 “축복”, “건강”, “성공”을 더해 현세적 축복과 내세적 축복의 패키지를 만들어 신자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워준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러한 것들이 예수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를 “제대로” 해명해주는 일이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마술방망이를 든 하나님이 되고, 그 하나님을 움직이는 데에는 예수를 믿는 믿음이 가장 유효하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심을 가지면 믿음이 없다고 윽박지르고, 심지어 마귀나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매도하기까지 했다.
이런 주장에 다분히 회의적인 이들이 점점 늘어 교회에 의해 역사적 예수가 우주적 지배자인 하나님(Pantocrato)으로 해석되었고, 그 기반 위에 거대한 교회가 세워진 것은 “진실에 것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유통시켜서 기성 교회의 존립 근거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 싸우기 싫어서 조용히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8.
예수 세미나에 참여한 신학자들은 기존의 “교회의 예수“에서 ”예수의 교회“를 지향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예수의 신격화 과정에서 예수의 종교가 예수에 대한 종교로 변질된 사실을 지적하고, 현행 교회의 교리와 제도는 다분히 교회 권력을 위한 산물이며 타협의 소산이라고 보았다.
이 타협에서 교권주의자들은 예수의 가르침 속에 담긴 무위계적 평등 사상을 버리고 당대의 제국주의적 질서를 따라 강력한 성직자 계급과 권위주의적인 제도 교회를 생산했던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고지하던 급진적 예수‘를 제거하고 ’예수에 대한 신앙’, 즉 예수에 대한 종교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2천년 역사를 가진 기독교 교의학은 예수 세미나에서 나온 연구 결과와 정면 충돌하게 된다.
사실 이런 충돌은 이미 16세기에서부터 일어나고 있었던 문제다. 루터가 구교의 교의학에 반대하여 성서주의적 개신교를 출발시켰다면, 루터주의 교회의 제도성이 비성서적이라 간주하고 성서적 예수를 따르겠다고 했던 이들이 메노나이트를 비롯한 재세례파 운동이었기 때문이며, 18세기 말 형성된 죠지 폭스의 퀘이커 신앙운동 역시 제도적 교회의 반제로서 성직주의를 버린 평등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인 내적 빛을 따라 사는 것이라 이해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성서를 읽으면, 제도적 교회의 근간 자체의 성서적 근거가 매우 취약하다. 근 2000년 동안 교회가 지켜온 여성 배제의 논리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9.
그러나 19세기 말 근본주의자들과 현대 복음주의자들 일부는 예수 세미나를 비롯한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제기된 급진적 예수 이해를 사탄적인 것이라 멸칭하며 거부했지만, 복음주의자 일부는 역사적 예수 탐구의 결과 재발견하게 된 윤리적 예수, 사회적 예수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전통적인 교회의 교리를 방어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성서에 기록된 초기 제자들과 신앙 공동체의 증언과 기억에서 ”예수에 대한 믿음“,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 ”초자연적 사건에 대한 목격자적 증언들“을 근거로 전통 교회의 교리나 신조가 후대에 가공되거나 덧칠해진 것이 아니라 기독교 고유의 증언과 체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오히려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이 과도하게 이성적인 방법만 채택하여 초자연적인 신앙 사건의 본질을 간과했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결국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은 기존의 교회 제도와 교리 속에서 취약했던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을 수용해 들임으로써 급진적 예수 해석의 허실을 가려냈다.
여기서 현대의 지성인들은 두 갈래 길을 만나게 되었다. 그 길은 기독교를 값싼 은혜의 대속 교설에서 구원을 얻는 종교라 여기거나, 아니면 마술적 대속의 교설이 없는 자연주의적 종교라 여기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재래 기독교의 배타적 교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기독교의 예수 특수성은 남아도 종교적 우월성의 근거는 취약하다.
10.
여기서 나는 조금 급진적인 해석을 더하고 싶다. 현실 세계는 이미 본훼퍼가 옥중에서 간파한 대로 탈종교적이고, 성숙한 세계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종교 다원적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 신학자들 중에는 역사적 비판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예수의 고유한 삶과 사상이 우리 삶의 구원(의미)을 이루어 나가는 나침판이 된다고 주장한 이들이 있다.
예컨대 디트리히 본훼퍼는 예수의 제자(Nachfloge)로서 종교적 교리나 제의에 갇혀 값싼 은혜 놀음하는 신앙에서 벗어나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제안했다. 가난하고 약한 이웃의 고난에 참여하는 데에서 예수의 제자의 모습을 현실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자크 엘룰은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은 체제의 권력에 순응하지 않는 전복적 삶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한 전복적인 삶은 진정한 기독자의 자유와 내밀히 연계된다. 그는 지배 권력에 참여하고 동조하기보다는 제도 밖의 예수를 따라 사는 반(反)권력의 윤리를 제안했다. 폴 틸리히는 무의미와 죄책, 죽음의 위협 앞에 있는 현대인은 예수를 따라 폭력과 단절이 깊어지는 시대 한 복판에서 사랑과 화해의 실천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새로운 존재(New Being), 거듭난 존재의 모습이다. 이 새로운 존재는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수납함으로써 존재의 용기를 얻는다고 하였다. 그 모범이 예수다.
카톨릭 신학자 칼 라너는 예수의 제자는 교회나 교리를 초월하여 예수처럼 자기를 비어내는 겸비(kenosis)의 사랑에서 입증될 수 있다고 여겼다. 비록 그가 교회와 교리 안에 있지 않더라고 이웃을 사랑하고 정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자기를 비우는 겸비의 사람이라면 그역시 그리스도인,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 여긴 것이다.
11.
글이 너무 길어졌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정신에 따라서 기독교를 정직하게 보아야 한다. 기독교는 16세기부터 와해되기 시작했고, 19세기에 비로소 오랜 동안 길을 잘못 걸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 예수에 대하여 교회와 교리를 넘어 다시 묻게 되었다.
루터는 역사적 교회의 근거를 비성서적이며 예수없는 기독교라고 비판하였다. 개신교 이후에도 예수에 대한 질문은 계속되었는데, 그 이유는 권력화된 교회와 교리가 가르치는 예수가 여전히 ”교회를 위한 예수“라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질문은 계속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아 안심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다소 불안한 소리같이 들릴지도 모르나, 사실이 그러하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현대인에게 적절한 것들은 예수가 권력 종교나 자본주의적 탐욕이나, 혹은 교회주의에 매몰된 기독교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잠정적인 결론이다.
위에서 4명의 신학자들이 이해한 예수의 제자직의 요건들 속에서 나는 오늘의 구원을 우리는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해 속에서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들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란, 우리를 타자를 위한 존재, 참된 자유를 향유하는 겸손한 존재, 반권력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힘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믿는 예수는 결코 벙어리 예수일 수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박충구 (감신대 명예교수)
그림: White Crucification -Marc Chagall, 19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