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움의 신앙”, 어제를 오늘로 끌어들이는 힘
* 말씀: 디모데후서 1장 4절
신앙에는 두 차원이 있다. 하나는 머리로 체계화하는 지식의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가슴으로 기억하는 그리움의 신앙이다. 로마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최후의 순간 떠올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사람, 그의 '참된 아들' 디모데의 얼굴과 눈물이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라." (딤후 1:4)
바울이 이 고백 속에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랑의 현재가 있었다. 차가운 감옥 어둠 속에서 그의 영혼을 따뜻하게 한 것은 한 사람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었다. 이 그리움이야말로 신앙의 가장 순수한 심장이었다.
1. 복음으로 맺어진 '피보다 진한 관계’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 1:2)이라 불렀다. 이는 혈연이 아닌 복음으로 낳은 아들의 관계, 즉 영적 부성이다. 그리움이 없는 복음은 차가운 '지식'이지만, 그리움이 있는 복음은 따뜻한 '생명'이다. 바울이 보고 싶어 한 것은 단지 인간적 정(情)이 아니었다. 그는 디모데 안에서 살아 쉼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복음은 관계의 언어 안에서 피어난다. 이 관계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야말로 복음의 본질적 생명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2. 그리움을 통해 과거를 현재로!
바울의 기억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었다. 히브리 신앙에서 '기억'(zakar)은 과거 사건을 현재에 구현하고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사건으로 만든다. 바울은 감옥 속에서 디모데의 눈물을 기억함으로써 그를 영적 임재 속에 불러들였다.
그리움의 힘이 무엇일까? 그리움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며,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긴다.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느끼게 하며, 부재(不在)를 존재로 변화시킨다. 그리움의 신앙은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게 한다. 사랑은 멀리 있어도 가깝게 느끼고, 그리움을 동반한 기도는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이다.
3. 세대를 가로지르는 그리움
바울의 그리움은 한 개인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디모데의 눈물을 기억하다가 더 깊은 신앙의 뿌리를 발견한다.
"네 속에 거짓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디모데의 현재 믿음 속에는 그 외조모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의 간절한 기도와 따뜻한 손길이 녹아 있었다. 그 기도와 사랑이 디모데라는 청년 속에서 살아 있는 믿음으로 곷피었다. 디모데에 대한 그리움은 개인을 넘어 세대의 신앙을 호출했다.
오늘날 신앙 전승이 무너지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이 '그리움의 언어'가 '시스템과 프로그램의 언어'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신앙은 교재나 커리큘럼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신앙은 따뜻한 관계의 기억을 통해 흐른다. 부모의 눈물, 스승의 헌신적 기도, 격려의 말 한마디, 이 모든 것이 복음의 씨앗이 되어 다음 세대 마음에 심기며, 영적 유산이 된다.
4. 기쁨으로 완성되는 그리움
바울은 그리움의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라.“
그의 그리움은 무기력한 절망이 아니라 기쁨으로 나아가는 능동적 사랑의 통로였다. 디모데 없이는 바울의 기쁨이 완성되지 않는다. 바울의 기쁨은 환경의 안락함이 아니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인격적 관계에서 흘러나왔다. 기쁨은 사랑을 기억할 때 영혼 깊은 곳에서 샘솟는 은혜의 열매이다. 바울에게 감옥은 이제 외로움의 장소가 아니라, 사랑의 기억이 '충만한 기쁨'으로 변모하는 거룩한 자리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바울은 디모데의 눈물과 믿음 속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역사함을 알았다. 생명을 향한 그리움은 복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더 큰 열심도 아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람을 향하는 '거룩한 그리움'이다.
우리에게 어떤 영적 그리움이 있는가? 신앙 안에서 나에게 영향을 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보고 싶은 그리움이 있는가? 잠깐 쉼호흡을 하면서 신앙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그리움 없는 믿음은 사랑이 아니라, 생명 없는 기억일 뿐이다.”(Faith without longing is not love, but a remembrance that has lost its breath)
기도문
우리를 기억하며 그리워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신앙이 메마른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그리움이 우리 믿음이 되고,
기억이 우리 기쁨이 되게 하소서.
사람을 사랑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 안에 심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