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의 마성(魔性)!
* 말씀: 디모데전서 6장 10절
우리는 흔히 “돈은 선도 악도 아닌 중립적 도구”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관점에서 이 말은 절반의 진실이자, 절반의 거짓이다. 돈이 ‘내 것이 아닐 때’는 단순한 사회 경제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돈이 ‘내 소유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 그 때에 우리는 돈 자체에 깃든 ‘마성’을 경험하게 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1. ‘맘몬’의 얼굴
예수님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Mammon)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 6:24)고 하셨다. 여기서 ‘맘몬’은 ‘하나님과 경쟁하는 영적 세력’으로 묘사된다. 비인격적인 재물이 인격적인 힘을 띠고 인간의 영혼을 유혹한다. J. 엘륄은 “돈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 자체로서 권력이다. 이 권세는 방향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W. 브루그만은 “돈과 소유는 우상숭배로 이끄는 유혹이다”이라 경고했다.
2. 돈을 열심히 버는 것이 죄악인가?
성경은 돈 버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지런함을 권면한다(잠 6:6-11: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미래를 위한 준비로서 지혜로운 행동이다(잠 6: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예수님도 달란트 비유에서 투자와 수익을 칭찬하셨다(마 25:14-30: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문제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우리를 소유하는 것이다. 문제는 저축 자체가 아니라, 돈에 우리 안전을 의탁하는 것이다. 투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돈이 우리의 신이 되는 것이다. 돈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가 될 수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인이 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망각하는 우상숭배에 빠진다.
3. 하나님 신뢰와 맘몬 신뢰 사이에서
돈의 마성은 소유하고 쌓아두려는 ‘폐쇄성’에서 비롯된다. 반면에 기독교적 ‘청지기 정신’은 돈을 나눔과 구제의 도구로 사용할 때, 그 마성적인 힘이 해체된다. ‘소유적 가치’를 ‘관계적 가치’로 전환시키는 영적 연금술과도 같다. 돈이 이웃 사랑의 통로가 될 때에 돈은 공동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축복의 통로가 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 역설적 진리를 확증한다. 예수님의 방식은 탁월하다. 하늘의 풍요함을 포기하고 가난하게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다.
4. 돈이 지닌 거짓 신성을 파괴하라
화폐 경제 속에서 돈이 얼마나 중요한가? 돈 없이는 우리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인들이 돈의 마성을 깨부수는 길은 단 두 가지다.
1) 돈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선언한다.
이것이 바로 십일조 정신이다. 십일조는 단순한 헌금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신앙 고백이다. 이 행위가 돈의 자기 절대성을 깨뜨린다.
2) 돈을 섬김과 나눔의 도구로 사용한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눅 16:9) 는 말씀처럼, 선한 목적으로 돈을 사용하라는 명령이다. 소유하려는 순간 돈은 나를 잡지만, 나누는 순간 우리는 돈의 권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J. 엘륄(『하나님이냐 돈이냐』)의 말이다.
"만약 주는 것에서 너무 큰 슬픔을 느낀다면, 찢기거나 짜증난다면, 차라리 주지 않는 것이 낫다...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맘몬의 권세 아래 있다는 뜻이다."
* 마무리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자기 비움’과 ‘사랑을 통한 나눔‘만이 돈의 마성을 해체하는 길이다. 그분의 가난은 우리의 부요함이 되었고(고후 8:9), 그분의 비움은 우리 안에 풍요의 생명을 심으셨다.
“가능한 한 많이 벌고, 가능한 한 많이 저축하고, 가능한 한 많이 주라.”(Earn all you can, save all you can, give all you can: J. 웨슬리).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세상은 소유를 성공이라 부르고,
축적을 안전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내 손에 쥔 돈이 아니라,
내 마음을 붙드신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자신을 주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예수님,
우리도 소유가 아니라 섬김으로, 축적이 아니라 나눔으로,
진정한 부요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아멘.
추기: 렘브란트의 [어리석은 부자](Parable of the Rich man). 1627, 32x42cm
어두운 방 안에서 금화를 세는 늙은 부자가 있습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놓인 금화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 눈빛이 심상치 않습니다. 수많은 장부(고리대금 문서들?)들이 널려 있습니다. 이 부자는 금화에 정신없이 몰입해 있습니다. 마치 연인을 바라보듯, 우상을 경배하듯 금화를 애무하며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듯 합니다.
“아! 금화야, 너 참 좋구나. 내가 너를 사랑한다. 이리 봐도, 저리 보아도 정말 좋구나!”
흥미로운 것은 탁자위에 저울도 탁자 위에 놓여져 있습니다. 금화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하나님의 심판의 저울로 오버랩됩니다. “얘야! 너는 평생 돈만 들여다 보고 거기에 집착하면서 살래?”라고 하나님께서 묻는 것 같습니다(누가복음 12장 16-21절: 어리석은 부자) - 김지철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