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영성

“내 이름,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 - 믿음과 양심의 항해에서 - * 말씀: 디모데전서 1장 18-20절 바울의 펜 끝에서 두 개의 이름이

ree610 2025. 10. 25. 09:20

“내 이름,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 - 믿음과 양심의 항해에서 -
* 말씀: 디모데전서 1장 18-20절

바울의 펜 끝에서 두 개의 이름이 새겨졌다: 후메내오, 알렉산더. 그 이름들이 한 번 기록되는 순간, 그들은 역사의 경고문이 되었다.
로마서 16장에서는 바울이
26명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적었다.
뵈뵈: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 브리스가와 아굴라: "내 생명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 내놓았다", 마리아: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자". 그 이름마다 칭찬과 감사가 이어졌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려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ㅅ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그들로 징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딤전 1:19-20)

오늘 본문에서는 단 두 사람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 옆에는 찬사가 아니라, 냉혹한 경고가 붙었다: "사탄에게 내어준 자." 바울은 칭찬에는 너그러웠지만, 경고에는 신중했다. 그러나 교회를 병들게 하는 거짓 교훈 앞에서는 마침내 그 이름을 적었다. 그것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사랑의 울타리였다.

1. 믿음과 착한 양심 - 진리의 두 기둥

믿음은 '무엇을 믿는가'의 문제이고, 양심은 '어떻게 믿는가'의 문제다. 둘은 분리될 수 없고, 방향과 항로처럼 서로를 돕고 완성한다. 믿음이 내용이라면, 양심은 그 믿음을 운반하는 그릇이다. '착한 양심'은 단순한 도덕 감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내적 진실성이며, 복음을 향한 충성의 자리이다. 양심이 무너지면 믿음은 형식만 남는다. 결국 하나님 없는 신념이 되고 만다.

2. 믿음을 버린 자들 - 파선의 끝에서

"이 양심을 버려." 여기서 동사 ‘버리다’는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거부'다. 항해 중인 선장이 나침반을 던져버리는 것과ㅅ 같다.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반역이다. 그 결과는 파국이다.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19절)
지중해의 폭풍을 여러 번 견뎌 본 바울 (고후 11:25)은 이 은유를 누구보다 실감나게 쓸 수 있었다. 파선은 서서히 오지 않는다. 양심을 버리는 순간, 믿음은 곧 난파한다. 그 끝은 신성모독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영적 법칙이다.

1) 후메내오는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가르쳤다(딤후 2:17-18). 그는 부활을 단순한 영적 은유로 축소시켰다. 종말의 소망을 현재의 체험으로 대체했다. 결국 그는 복음의 심장을 도려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다"(고전 15:14).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하나님을 해석하려다, 하나님을 대체했다. 그가 버린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진리' 자체였다.

2) 알렉산더는 "구리 세공업자"였다(딤후 4:14). 그는 바울에게 "많은 해"를 끼쳤다. 후메내오가 교리를 무너뜨렸다면, 알렉산더는 공동체를 무너뜨린 사람이었다. 그는 복음을 이용해 자신의 이름을 높였다. 그가 범한 '신성모독'은 하나님의 자리 찬탈이었다. 사랑을 가장한 교만한 자기 확신은 언제나 공동체를 파괴한다.

3. 이름의 무게 - 기록될 만한 인생

바울이 다루는 이름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 로마서 16장의 이름들은 칭찬의 노래이고, 디모데전서 1장의 이름들은 경고의 표지판이다. 선은 기억되어야 하고, 악은 경계되어야 한다. 칭찬의 이름은 많아도 좋지만, 경고의 이름은 반드시 명확해야 한다.
사랑은 때로 ‘아니오’, 곧 배제를 요구한다. 한 사람을 위한 감상적 용납보다 공동체의 거룩을 지키는 것이 더 큰 사랑이다.
"값싼 은혜는 은혜의 원수이다."(본회퍼).
사랑 없는 진리는 잔인하고, 진리 없는 사랑은 거짓일뿐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내 이름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진리를 지키는 이름인가, 아니면 진리를 이용하는 이름인가?  "믿음과 착한 양심"을 함께 붙들고 있는가, 아니면 그 양심을 버려 믿음이 파선되고 있는가?

”경계 없는 사랑은 방임이고, 진리 없는 관용은 배신이다.“(Love without boundaries is indulgence, and tolerance without truth is betrayal)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믿음의 항해에서,
양심의 나침반을 잃고 파선하지 않게 하소서.

사랑 속에 진리가 서게 하소서.
진리 안에 사랑이 자라게 하소서.

사람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 책에 우리의 이름을 새겨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