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포럼

국민들은 왜 분노하는가, 곽상도 아들

ree610 2021. 9. 30. 14:42
국민들은 왜 분노하는가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 교수] 
곽상도 의원 아들이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았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 후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국민들이 이토록 화가 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물론 아버지의 권력을 배경으로 과다한 퇴직금 보상을 받은 불공정 의혹 때문일 것이다.

이 불공정성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 지는 아래 간단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보면 명약관화하게 알 수 있다. '권력자 자녀가 아닌 일반 사회 초년생에게 과연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 말이다.  

필자는 이 불공정성을 규명하고 성토하기 보다는 다른 측면을 주목하고자 한다. 언어학자로서 담화분석적 시각에서 국민들의 분노 저변에 깔린 응어리를 찾아내고, 한국 정치의 고질적 폐해를 지적하고자 한다.

사실 국민들은 이 사건 자체의 불공정성 자체보다 그것이 표면화된 이후 곽상도 의원의 적반하장식 뻔뻔한 태도와 국민의 힘의 공당으로서의 부적절한 반응에 더욱 화가 난 듯하다.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곽상도 의원의 뻔뻔한 태도와 무감각한 언어다.

그의 후안무치한 태도가 국민들의 분노의 불에 기름을 붓고 있다. 그가 이 사건 직후 보인 반응은 이 건은 자신과 무관하며 아들 회사에서 정당한 퇴직금 집행을 했을 뿐이라는 자기 변호였다.

대화법으로 본 곽상도의 태도

국민들의 분노에 대한 그의 응답을 대화식으로 표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국민: 어떻게 사회 초년생이 6년간 대리로 일하고 퇴직금으로 50억을 받을 수 있 나? 권력을 이용한 도둑질 아닌가?

곽상도 의원: 나하고는 상관없다. 아들이 산재 위로금 성격으로 정당하게 받은 건데 왜 난리냐?

필자는 언어학자로서 그의 이런 반응을 보고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말싸움의 전형적인 패턴을 떠올리게 됐다. 사귀고 있는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전형적인 말싸움을 생각해 보자.

(2) 여: 친구들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정말 기분나빴어.

남: 뭘 그런 거로 그래? 웃자고 한 말인데.

곽상도 의원의 반응이 바로 저 무감하고 무례한 남자친구의 말을 그대로 닮았다. 여자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분명히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이 상황에서 여자의 마음은 어떨까? 더욱 속상하고 화날 것이며 그 이후의 대화는 갈등만 증폭될 것이다.

언어 현상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화자와 청자간 대화(conversation)를 들여다 보면 두 사람이 오랜 교류로 인해 쌓아 온 경험과 배경이 그 대화의 내용과 성격을 결정하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언어학의 담화분석(discourse analysis)분야에서는 이것을 '배경 지식과 공유된 믿음(background knowledge and shared belief)'이라고 부른다. 모든 대화의 이면에는 바로 이런 배경적 요인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2)에서 남자가 저런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뻔뻔한 태도의 이면에는 평소 그런 잘못을 해도 여자가 지적과 저항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반복된 패턴에서 생긴 공유된 믿음, 즉 남자가 잘못해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는 여자의 순종적인 태도가 미덕이라는 그릇된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파행이 지속되면서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약해지고 더욱 오만해지게 된 배경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만일 평소 여자가 남자의 잘못된 반응과 태도를 단호하게 지적하고 남자도 여자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꾸준히 성찰을 해왔다면 대화가 다음과 같이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다.

(3) 여: 친구들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정말 기분나빴어.

남: 앗.. 그랬구나? 또 실수했네~ ㅜㅜ. 정말 미안해.

여: 여자는 그럴 때 민감해져.

남: 난 웃자고 한 말인데 생각해 보니 기분이 나빴겠네. 앞으로는 친구들과 같이 만날 때 더 주의할게.

(3)에서처럼 일단 남자가 여자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부터 하고 난 후 여자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자기 변호를 한다면 갈등이 해결되고 화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분노해야할 것에 분노하자

이 관찰에 비추어 볼 때 곽상도 의원이 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그런 뻔뻔한 반응을 보인 이유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는 대화의 상대인 화자로서의 국민을 어려워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고 국민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이 사회에서 어려운 작업 환경에서 산재로 병들고 고생하고 심지어 안타까운 죽음에 이른 청년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과연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한 직장에서 수십 년을 온갖 고생을 했는데도 1억도 안 되는 퇴직금을 받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았을까?

이 사건이 발생한 지 거의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그의 뻔뻔한 태도는 전혀 변화가 없다. 그는 어떻게 이토록 국민을 철저히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와 모습을 보이게 되었을까? 바로 국민들 자신이 평소 정치인들이 이런 비리를 저질렀을 때 제대로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다음 선거 때 또 표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여자가 남자의 잘못을 보고도 제대로 화내고 단호한 지적을 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남자가 망가진 모습과 같다. 잘못을 저질렀는데 야단도 처벌도 안 받는데 누가 상대방을 무서워하고 자기 잘못을 성찰하겠는가?

갈등 요인이 있을 때 올바른 소통의 언어로 평화에 이르는 길은 갈등을 일으킨 당사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한국 사회의 정치인들은 인정과 사과에 인색하다. 국민이 큰 상처를 입고 분노하고 아파하는데도 변명에만 매달린다. 진정 국민을 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들 정치적 입지와 이익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온갖 궤변을 늘어놓고 정치적 지형 싸움에만 몰두한다. 사실로 잘못이 뻔히 밝혀졌는데도 변명으로 일관하고 의혹 제기와 정치적 언쟁만 난무하는 총체적 '케이오스(chaos)'를 만든다.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이 혼돈 속에 슬며시 숨어서 시간을 벌며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 일을 올곧게 해결하지 않고 묻고 넘어간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한국 정치판에는 의혹과 정쟁만 난무한다.

이 비생산적인 소용돌이에 휘둘려 정작 명확한 실체적 진실 규명 노력은 사라지고 심판과 처벌을 받아야 할 자들이 진정한 인정과 사과 없이 슬며시 도망가고 따라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치유 기회도 없어진다. 그래서 갈등과 한(恨)만 쌓여가고 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구체적인 개혁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곽상도 의원은 국민들에게 송구하다는 말을 정식으로 한 적이 없다. 소속 정당을 재빠르게 탈당한 후 여전히 자기 변명에만 급급하다. 그의 소속 정당인 국민의 힘도 진중한 사과도 없이 특검 수용 문제를 정쟁화해서 가장 강력한 정적인 이재명 경기지사 공격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곽상도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기는 했지만 일을 꼬리자르기식으로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조급함만 느껴질 뿐이다. 곽상도 의원도, 국민의 힘도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진정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곽상도 의원은 진정으로 사과하길

최소한의 진정성을 보고 싶다. 일단 곽상도 의원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공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국민의 힘은 정당한 수사 절차를 통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협조하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수사 형식과 방법이 왜 특검의 형식이 되어야 하는지를 놓고 정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곽상도 의원도 국민의 힘도 이런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할 것이고 상처받은 많은 국민들이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명심하자. 위에서 지적한 대화 모델에서 남자의 인정과 사과, 성숙한 성찰을 이끌어 낸 것은 여자의 무조건적인 인내가 아니라 분노 표출과 단호한 지적임을 명심하자.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는 뻔뻔한 저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끊임없이 퍼부어야 저들이 정신을 조금이라도 차릴 것이다. 동시에 정당한 수사 절차를 통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단호하게 요구하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야 한다.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 박사(화용론 전공). 언어와 문화의 밀접성 관련 주제를 주로 연구하며 영어교과서와 학습교재와 일반 인문 교양서 집필 활동도 하고 있음. 최근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사람in 출판) 책을 출간함 Facebook에서 언어학자로서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