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온한 시대의 동행 :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묻다 - 총평 축사 김민웅

- 불온한 시대의 동행이라...
정범구, 곽노현, 정철승, 박황희,
딱 이름만 들어도 벌써 기분이 마구 불온해지는 네 분의 불령선인 (不逞鮮人)들이 작당을 해 내놓은 <불온한 시대의 동행>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불온’으로 시작해서 ‘‘동행’이라는 단어로 끝나는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오늘, 살다 보면 난데없이 겪을지도 모를 임의동행 전문서적의 총평 축사를 임무로 부여받은 김민웅입니다. 임의동행 좋아하는 검찰들도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법조계 베스트 셀러가 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까? 해서 통상적인 축사보다 다소 길 수도 있다는 것을 즐겁게 각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에 그 명성이 자자한 이 네 불한당 비슷한 불온당들은 그렇지 않아도 매일 피곤하게들 사는 마당에 불온한 시대와 별로 동행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까지도 이렇게 죄다 모아놓고는, 이재명 정부가 있는 시절에 감히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묻겠다고 하니 그 질문 또한 불온하기 짝이 없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 자리가 알고 보면 그런 음흉한 자리올시다. 그런 자리인 줄 모르고 오셨다면 타짜계의 앗찔하도록 심오한 동시에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전문용어 “낙장불입(落張不入)”이라는 네 박자 말씀,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바입니다.
- 치안유지법 위반자들인가
오늘 여기서 자주 출몰하는 “불온(不穩)”이라는 단어는 옛날 고리짝 때부터 쓰였는지 어땠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일상적으로 쓰이기는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 때 치안유지법 위반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다음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총독부의 두 눈 부라린 감시 아래 무엇보다도 사상이 불순한 자들을 불온하다 했고, 해서 그건 남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우리 뇌 속의 꽁꽁 숨긴 생각마저도 버젓이 범죄목록에 집어넣은 희대의 관심술이 횡행하던 시대의 오싹한 유물입니다.
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씀에 따르면 이 네 저자들은 그 존재를 겉으로만 쓱 보기에도 정녕 수상할 뿐만 아니라 이런 책을 씀으로써 이 나라의 치안유지에 중대한 위협을 가할 자들이 아닌가 엄중히 사료되는 대목이 차고 넘치는 증거로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감연히 나서서 인간 존엄의 시대를 빈들의 외침처럼 거침없이 갈구하는 이 네 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 낭만자객 정범구의 단단한 희망
“자유의 값, 시대의 무게”라는 부제 아래 지식인 출신의 교수, 언론방송인, 정치인, 외교관으로 살아온 정범구의 글에는 빈한한 시절의 청년이 어떻게 한 시대의 모순과 마주하며 성장하고 치열한 시대정신을 몸에 새겨왔는가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는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홀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다가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최후방어선”이라며 이름하여 전장(戰場)의 철학을 스스로에게 일깨웁니다. 실로 비장한 밤이었을 겁니다. 낭만자객의 풍모입니다. 시대와 불화를 감수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전투를 멈추지 않고 살아온 그는 사상의 폭탄을 던진 리영희 선생을 떠올리고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하며 혹독한 국제정세 앞에서도 인류적 양심을 택한 독일 총리 메르켈을 환기시켜줍니다.
정범구는 소싯적부터 지금까지 남과 북의 평화와 통일의 길을 섬세하게 고민하고 세상은 잔치집 같아도 어느 곳인가에서 늘 울고 있는 이들을 잊지 않는 마음의 온도를 우리와 나눕니다. 민주주의는 결코 공짜가 될 수 없고 끊임없는 시민적각성과 실천을 통해 유지되고 발전된다고 강조합니다. 자기도 모를 팔자에 있었던 모양인지 어느날 갑자기 정치인으로 살다가 다시 시인으로 돌아온 친구 도종환의 시를 읽으면서 상처를 입었으되 꺾이지 않고 더럽혀졌다 한들 다시 푸르게 살아나는 길을 모색합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시대와 맞서서 “여전히 푸르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복수다”라는 도종환의 싯귀를 인용, 우리에게 남은 가장 단단한 희망을 노래합니다. 정범구는 불온한 시대의 동행에 인간의 온기를 담아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가슴 푸근한 불령선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온기를 버리고 살라는 유혹을 그치지 않는 이 시대에 불온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최후 방어선입니다.
- 나침반 항해사 곽노현의 설계도
“법의 함정, 진실의 기록”이라는 부제 아래 인권과 교육과 개혁과 법, 그리고 자신이 겪은 법의 폭력을 책에 담아낸 곽노현은 그가 얼마나 정교한 미래 설계자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사상과 관념의 맹렬한 훈련을 거쳐 무한대의 지적 항해에 나선 세월의 깊이를 우리와 나눕니다. 상상의 한계를 스스로에게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설계와 실천이 하나로 결합된 지식인의 모델은 드믈고 귀합니다. 그 자신이 나침반인 항해사 곽노현은 전차와 같은 추진력까지 장착되어 있는 자입니다. ‘자’라고 한 것은 그에게 지도자라는 호칭을 붙이기에 아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곽노현은 이렇게 말합니다.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두는 법치주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인권보장, 모든 이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경제민주주의, 이를 위해 모든 이의 잠재적 실현을 보장하는 공교육이라는 4개의 분야를 연구해오고 실천했다.” 그는 또한 말하기를 “리더십은 사람을 지키는 것이며 동시에 미래를 여는 것이다. 권력은 성과를 독점하는 장치가 아니라 성과를 가능하게 하는 책임구조여야 한다.” 그런 그가 교육감 선거 문제로 법정에 서게 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던 바 있습니다. 그가 행한 선의는 범죄로 둔갑되었고 법의 폭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진실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법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곽노현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법은 과연 인간의 행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과연 그는 불온한 자입니다. 진실은 언제나 기성질서 앞에서 불온하기 때문이며, 곽노현이 진력을 다해 투쟁한 것처럼 법은 그 불온함 앞에서 철저하게 해체되어 재구성될 때만이 우리의 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독립운동 가문 정철승의 악보
“망각의 늪, 정의의 연대”라는 부제 아래 글을 쓴 정철승은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듯이 법앞에서 무력해지는 이들을 지켜온 법조인입니다. 그런데 그는 곽노현이 오래 전 빠졌던, 법의 함정에 똑같이 빠질 위기에 처한 법조인입니다. 기가 막힐 일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렀어도 이 함정은 메워지지 않고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간 남들을 지켜온 그를 우리가 지켜내기 위해 함께 뭉쳤습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이 책은 정철승이 처한 구체적인 위기와 마주 싸우기 위해 펴낸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런 까닭에 우리 손에 들린 양심의 무기가 됩니다.
정철승은 자신의 외할아버지 윤기섭 선생을 그 정신에 오롯이 담고 살아온 독립투쟁가의 가문 그 자체입니다. 해서 그에게 역사는 지난 과거가 아니라 현실이며 정의를 위한 갑옷이자 창과 칼입니다. 그런 그가 맞닥뜨리는 현실의 법조 세상은 부정의가 군림하며 진실은 실종되고 특권이 득세합니다. 하여 정철승은 세익스피어의 작품 <헨리 6세>에 등장하는 대사 하나를 주목합니다.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은 모든 법률가들을 죽이는 일이요.” 작품 속의 맥락은 폭도들이 법을 공격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도 민중들을 폭도로 말아 처단하는 법, 판사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나올 법한 대사가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권력 카르텔의 괴물이 된 이른바 법조 엘리트에 대한 그의 비판은 그저 비판이 아니라 진실이 주인되는 법정을 향한 절규이자 투쟁입니다. 아직도 그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박원순 관련 사건에 대한 그의 실증적 논거는 이 시대가 경청해야 할 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친일매국노가 작곡한 악보로 노래하고 춤추는 세상에 대한 그의 태세는 단호합니다. 독립운동 가문의 기개(氣槪)가 역시입니다. “이제는 그들의 악보를 찢어버릴 때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노래가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반란을 꾀하는 그의 말대로 이제는 우리 자신이 작곡자가 될 시간입니다. 우리의 자유를 노래할 불온한 악보를 위해.
- 세기적 구랏발 박황희의 잠언
“언어의 그림자, 제도의 얼굴”이라는 부제 아래 글을 쓴 박황희는 어디 하나 솔기가 보이지 않고 실밥 한치 없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달필이요, 한번 읽기 시작하면 도무지 빠져나올 방법이 보이지 않는 매혹적인 문장을 펼치는 한문학자입니다. 그가 쓴 글을 재미삼아 약간 과장해보자면 소년 시절에 이미 세익스피어의 구랏발을 득음하겠다고 폭포 아래에서 목에 핏발이 터질 때까지 단련했고 괴테의 한숨소리마저 놓치지 않고 단숨에 손으로 움켜쥐었다는 황당한 전설을 스스로 거리낌없이 유포하는 서당 훈장님입니다. 알고 보면 그럴 만 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가 기록한 어록들은 잠언의 수준에 이르러 있고 인생독본을 남긴 톨스토이도 울고 갔다는 믿거나 말거나 소문이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기적 구랏발 박황희의 복음전서 몇 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시간을 저축하는 삶보다 시간을 사용하는 삶을 택했다.” “경험은 모아 두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삶은 준비된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면서 준비되는 것이다.” “나는 ‘부를 축적’하는 삶보다 ‘관계를 축적’하는 삶을 택하고 싶다.” “평화는 바람이 멈춘 정적이 아니라 폭풍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현란한 인생독본을 쏟아내는 박황희는 성찰의 깊이를 한껏 담은 한문 고서와 문자 속에 우리를 안내해주고 그걸 토대로 현실의 타격점까지 정확히 짚어냅니다. 그러기에 그는 내란을 겪은 시대가 개혁에 멈칫거리자 “이상주의자의 실패가 역사를 움직인다”고 자칫 설득력없을 법한 이야기를 매우 설득력있게 외치면서 “개혁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은 자신이 산화한 뒤에 이루어질 다음의 세상이다”라고 결연히 못박는 것입니다. 이는 불온한 표정을 엄숙하게 짓는 서당 훈장의 서릿발 같은 회초리입니다. 시대의 죽비를 철퇴처럼 내리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가 건강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다가 하염없이 길어질지도 모를 축사를, 할 말은 아직 차고도 넘치는데 물론 더 듣고 싶으시겠으나 안타깝게도 여기서 마칩니다. 정범구, 곽노현, 정철승, 박황희, 딱 이름만 들어도 벌써 기분이 마구 유쾌해지는 네 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이 분들과 함께 하는 불온한 시대의 동행은 축복입니다.

이 동행에 우리 모두 길벗들입니다. 우리 자신과 이 시대를 위해 따뜻한 박수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불온한 시대의 동행 - 북콘서트 후기]
불온한 시대의 저녁이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많이 웃었다. 원래 ‘불온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라면 음산한 분위기와 음모론적 속삭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날의 불온함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정의에 대한 희망이 넘쳐나는, 매우 수상한(?) 불온함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기묘한 풍경이었다. 책 제목은 『불온한 시대의 동행』. 행사 이름은 북토크. 그런데 무대 위에 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대를 향해 질문을 던져 온 사람들이었다.
불온한 시대에 질문하는 사람.
불온한 시대에 침묵하지 않는 사람.
불온한 시대에 사람을 믿는 사람.
어쩌면 이 시대가 가장 경계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행사장에 들어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상적인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그 시대는 그들을 불온하다고 부르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이날의 참석자들은 참으로 위험해 보였다. 정의를 이야기하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손을 놓지 말자고 이야기했으니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사람들인가.
축사를 맡은 함세웅 신부님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 속에서 시대를 향한 단호함을 보여 주셨다. 김민웅 목사님 역시 양심이 살아 있는 사회를 위해 시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 사이를 가르며 등장한 마사회 우희종 회장님은 마치 서부영화의 석양을 등지고 말을 타고 들어오는 주인공처럼 나타나 격려의 말을 건넸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쯤 되면 북콘서트가 아니라 정의 구현 어벤져스 출정식이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한 박석무 선생님은 역시 시대의 현자이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다산의 정신을 품고 있었고, 좌중은 마치 오래된 나무 아래서 시원한 그늘을 만난 사람들처럼 깊은 울림에 잠겼다.
이날 무대 위의 필진 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시대를 향해 질문하는 사람들. 삶의 현장과 살아온 이력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정의와 인간에 대한 믿음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사람들. 그래서 책 제목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불온한 시대의 동행』
사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정답’을 찾으려 했다. 누가 옳은가, 누가 이기는가, 누가 권력을 갖는가를 따져 왔다. 그러나 역사는 늘 다른 사실을 보여 준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완벽한 리더가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들이다. 혼자서는 버틸 수 없는 길도 동행이 있으면 걸을 수 있다. 혼자서는 두려운 시대도 손을 맞잡으면 견딜 수 있다. 그래서 불온한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라 ‘동행’이다.
양심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동행. 상식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동행. 정의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동행.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더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잃지 않는 시민들의 동행이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위험을 경고했고,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한 시대일수록 연대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이날 북콘서트는 바로 그 두 사람의 메시지를 현실 속에서 보여 주는 자리였다. 생각하는 시민들이 모였고, 서로를 격려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끝까지 인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나는 오늘 행사장을 나서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진짜 불온한 것은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을 불온하다고 부르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시민 여러분. 만약 누군가 당신을 향해 “왜 그렇게 불편한 질문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만약 누군가 당신을 향해 “왜 아직도 양심 같은 것을 이야기하느냐”고 비웃는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당신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서로의 곁을 지켜 줄 때, 불온한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역사는 언제나 동행하는 사람들의 발자국 위에서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 霞田 박황희 拜拜

落穗 ;
경향 각처, 원근 각지에서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 주신 ‘동행’의 독자 제현께 북향 사배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餘滴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으로 양으로 협조해 주신 따듯한 손길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사는 동안 반드시 ‘餘慶’의 복을 기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