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온한 시대의 동행: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묻다.
- 불온한 시대에 말을 건다는 것!

시대는 언제나 조용히 무너진다. 국가가 무너질 때조차도 요란한 붕괴의 굉음보다는 제도와 정의가, 언어와 양심이 조금씩 변형되어 마모되는 소리가 먼저 들린다. 정의라는 말은 공허한 수사로 남고, 공정이라는 저울은 특정인의 손에 의해 기울어진다. 법은 더 이상 인권과 정의에 대한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권력에 종속되는 기술이 되고 만다. 우리는 지금 그런 불온한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 책은 사회 정의의 법 왜곡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했다. 단지 한 사람의 개인적 분노에 머물지 않기 위해 의기투합하는 일군이 작당하였다. 이 불온한 연대는 정의를 걱정하는 평범한 용기들의 집합체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로 내란을 선동하여 헌정 질서를 위협하고, 검찰과 사법부가 공권력을 사유화하여 스스로 자신의 성채를 쌓는 현실 앞에서, 침묵은 더 이상 중립이 아니었다. 침묵과 방관은 공범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언어로, 그러나 같은 방향을 향해.
이 글을 쓴 필자들은 하나의 직업군도, 하나의 이념적 진영도 아니다. 서로 다른 현장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외교와 정치, 법률과 인권, 교육과 시민사회, 문화와 종교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걸어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공통 분모는 분명하다. 국가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염려, 그리고 사법 정의가 무너진 사회는 결국 공동체 전체를 파괴한다는 확신이다. 권력은 책임지지 않고, 그 비용은 언제나 시민에게 전가된다. 이 책은 그 경험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공동의 문제의식으로 묶인 증언의 집합이다.




이 책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또한 취미나 지적 유희의 결과물도 아니다. 우리는 이 원고들을 모으며, 이것이 불편한 책이 될 것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간을 결정했다. 지금 시대에 침묵하는 편집은 또 하나의 방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편집자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통념을 거부한다. 불의 앞에서의 중립은 균형이 아니라 기울어진 편들기다. 이 책을 엮으며 우리는 선택했다. ‘질서의 언어’보다 ‘진실의 언어’를, ‘안정의 수사(修辭)’보다 ‘위험한 질문’을 택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이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이 정답을 제시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거짓된 정상성에 균열을 내기를 바란다. ‘아직 법치 국가다.’, ‘제도는 살아 있다’라는 안일한 자기최면을 흔들고자 한다.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법은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정의는 왜 늘 가장 늦게 도착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 이 상태를 용인할 것인가.
우리는 영웅을 자처하지 않는다. 다만 경험이 말하게 하고자 했다. 제도의 빈틈을 몸으로 겪은 사람, 권력의 언어가 어떻게 법을 오염시키는지를 가까이서 본 사람, 시민의 신뢰가 어떻게 소진되는지를 현장에서 목도한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사유를 내놓는다. 이 글들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던진다. 개혁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정의는 누구의 이름으로 말해지는가. 사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책은 선언문이 아니다. 또한 특정 진영의 선동서도 아니다. 더욱이 이 책은 합의의 산물도 아니다. 이견과 충돌, 때로는 분노가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독자에게 복종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동행을 청한다. 생각의 불편함을 견디며, 서로 다른 경험과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질문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시대에 무엇을 묵인하고 있었던가.”
이 불온한 시대에 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말하지 않겠다는 것은 더욱 위험한 생각이다. 이 책이 완성된 이유는 단 하나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사법 개혁은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사회 정의는 책 한 권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 최소한의 시작을 위해 우리는 이 책을 엮었다.





정의는 ‘제도’ 이전에 ‘양심’에서 시작된다는 오래된 진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
- 양산박 구도자 일동

落張 ;
마침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부제는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묻다.’입니다. 4인 4색의 매우 재미있는 좌담회가 될 것입니다.
不入 ;
북 콘서트에 강호의 페친 제현을 정중히 모시고자 합니다. 일정을 미루고 시간을 내 주실 분은 메신저로 문자 주시길 바랍니다.
一手 ;
6월 19일 저녁 7시 30분
청년 문화공간 JU – 홍대역 2번 출구


不退 ;
3333 – 31 – 8986998 카카오뱅크 박황희 (참가비 1만 원)

[불온한 시대의 동행 - 북콘서트 후기]
불온한 시대의 저녁이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많이 웃었다. 원래 ‘불온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라면 음산한 분위기와 음모론적 속삭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날의 불온함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정의에 대한 희망이 넘쳐나는, 매우 수상한(?) 불온함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기묘한 풍경이었다. 책 제목은 『불온한 시대의 동행』. 행사 이름은 북토크. 그런데 무대 위에 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대를 향해 질문을 던져 온 사람들이었다.
불온한 시대에 질문하는 사람.
불온한 시대에 침묵하지 않는 사람.
불온한 시대에 사람을 믿는 사람.
어쩌면 이 시대가 가장 경계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행사장에 들어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상적인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그 시대는 그들을 불온하다고 부르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이날의 참석자들은 참으로 위험해 보였다. 정의를 이야기하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손을 놓지 말자고 이야기했으니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사람들인가.
축사를 맡은 함세웅 신부님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 속에서 시대를 향한 단호함을 보여 주셨다. 김민웅 목사님 역시 양심이 살아 있는 사회를 위해 시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 사이를 가르며 등장한 마사회 우희종 회장님은 마치 서부영화의 석양을 등지고 말을 타고 들어오는 주인공처럼 나타나 격려의 말을 건넸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쯤 되면 북콘서트가 아니라 정의 구현 어벤져스 출정식이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한 박석무 선생님은 역시 시대의 현자이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다산의 정신을 품고 있었고, 좌중은 마치 오래된 나무 아래서 시원한 그늘을 만난 사람들처럼 깊은 울림에 잠겼다.
이날 무대 위의 필진 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시대를 향해 질문하는 사람들. 삶의 현장과 살아온 이력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정의와 인간에 대한 믿음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사람들. 그래서 책 제목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불온한 시대의 동행』
사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정답’을 찾으려 했다. 누가 옳은가, 누가 이기는가, 누가 권력을 갖는가를 따져 왔다. 그러나 역사는 늘 다른 사실을 보여 준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완벽한 리더가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들이다. 혼자서는 버틸 수 없는 길도 동행이 있으면 걸을 수 있다. 혼자서는 두려운 시대도 손을 맞잡으면 견딜 수 있다. 그래서 불온한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라 ‘동행’이다.
양심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동행. 상식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동행. 정의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동행.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더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잃지 않는 시민들의 동행이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위험을 경고했고,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한 시대일수록 연대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이날 북콘서트는 바로 그 두 사람의 메시지를 현실 속에서 보여 주는 자리였다. 생각하는 시민들이 모였고, 서로를 격려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끝까지 인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나는 오늘 행사장을 나서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진짜 불온한 것은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을 불온하다고 부르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시민 여러분. 만약 누군가 당신을 향해 “왜 그렇게 불편한 질문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만약 누군가 당신을 향해 “왜 아직도 양심 같은 것을 이야기하느냐”고 비웃는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당신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서로의 곁을 지켜 줄 때, 불온한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역사는 언제나 동행하는 사람들의 발자국 위에서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 霞田 박황희 拜拜


落穗 ;
경향 각처, 원근 각지에서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 주신 ‘동행’의 독자 제현께 북향 사배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餘滴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으로 양으로 협조해 주신 따듯한 손길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사는 동안 반드시 ‘餘慶’의 복을 기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