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를 즐겁게 하라”: 사랑할 시간이 모자란다
* 말씀: 신명기 24장 5절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서로의 하루를 묻지 못할 때가 있다. 같은 식탁에 앉아도 마음은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 속을 떠돈다. 오늘 한국 사회의 저출산, 이혼, 핵개인, 관계의 단절, 가족 해체의 아픔은 어쩌면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사랑은 있는데, 시간이 없다.”
그런데 모세를 통해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은 오늘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하나님은 한 부부의 신혼을 국가의 전쟁보다 소중하게 여기신다. 공적 성과보다 가정의 기쁨을, 사회적 의무보다 사랑의 시간을 먼저 세우신다.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신 24:5)
1. 면제의 신학: “그를 내보내지 말라”
신명기 24장 5절의 배경에는 전쟁과 공적 동원이 있다. 신명기 20:5-7은 이미 새 집을 지은 자, 포도원을 가꾼 자, 약혼한 자에게 전쟁 면제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신명기 24장 5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약혼한 자가 아니라 이미 결혼한 사람에게 단순한 전쟁 면제가 아니라 모든 공적 직무로부터의 면제를 명한다.
새신랑은 공동체적 의무로부터 거룩하게 풀려난 자다.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자유다. 무책임한 여가가 아니라 가정을 세우기 위한 거룩한 여백이다. 부부의 사랑은 생산성의 효율로도 환산될 수 없다. 하나님은 한 부부의 사랑을 국가의 안보보다 먼저 보호하신다.
2. 시간의 신학: “일 년 동안”
“일 년 동안”은 사계절을 통과하며 사랑이 뿌리내리는 시간이다. 봄의 파종, 여름의 수고, 가을의 추수, 겨울의 기다림을 함께 겪으며 두 사람은 삶을 함께 짊어지는 부부가 된다. 노동도 전쟁도 강요되지 않는 이 한 해 동안, 신랑은 오직 한 사람 신부를 알아가는 일에만 헌신한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동시에 시간이다. 사랑은 고백이지만 동시에 체류다. 사랑은 함께 견딘 시간의 두께다.
3. 기쁨의 신학: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즐겁게 하라”는 “기쁨을 적극적으로 창출하라”는 뜻이다(시 104:15 참조). 고대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이 명령은 파격적이다.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이 자연스럽던 시대에, 하나님은 남편에게 아내의 기쁨을 책임지라고 명하신다. 아내는 남편의 소유물이 아니라 언약의 동반자다. 하나님은 새신랑을 국가의 병사로만 보지 않으시고 한 여인의 남편으로 부르신다. 하나님은 이미 토라에서 “기쁨의 의무”를 가정의 법으로 새겨두셨다. 이 얼마나 멋지고 자상한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예배의 하나님이실뿐 아니라 밥상과 대화와 웃음의 하나님이시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로 부르며 그 기쁨을 고백한다(요 3:29). 바울은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교회를 신부로 사랑하신 참 신랑이시다. 그분은 신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주셨다. 십자가는 사랑의 최종 언어이며, 부활은 그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하나님의 응답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성령으로 우리와 동행하시며(요 14:16-18), 마지막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우리를 영원히 기쁨으로 초대하신다(계 19:7).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늘 많은 가정의 아픔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랑은 있지만 시간이 없다. 마음은 있지만 대화가 없다. 책임은 있지만 기쁨이 없다.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너무 바빠서 낯선 사람이 되어 간다. 가족은 늘 “나중에”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신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우리는 시간을 내고 있는가? 우리의 사역과 일은 가정을 살리고 있는가, 아니면 소모시키고 있는가? 가정은 하나님 나라의 첫 학교이며, 사랑을 배우는 첫 교실이고, 기쁨을 훈련하는 작은 성소다.
우리 남편들이여,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이니셔티브를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발휘하라. 그리고 우리 모두, 가장 가까운 사람을 “나중에”라고 미루지 말라. 아내의 기쁨은 곧 남편의 기쁨이다. 마치 우리의 기쁨이 곧 하나님의 기쁨인 것처럼.
**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우리는 “나중에”라는 말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멀리 두었나이다.
이제 시간이 곧 사랑임을, 머무름이 곧 헌신임을 깨닫게 하소서.
성과와 바쁨에 사랑하는 사람을 외롭지 않게 하소서.
우리 가정이 기쁨이 자라는 작은 성소가 되게 하소서.
참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가정을 이루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