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 본 체하지 말라”
- 거룩은 길 위에서 시작된다 -
* 말씀: 신명기 22장 1-4절
신앙은 눈을 감는 일이 아니라 눈을 뜨는 일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동시에, 눈앞에 있는 이웃의 곤경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다.
신명기 22장 1절은 아주 소박한 생활 규례처럼 보인다. 길 잃은 소나 양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주인에게 돌려주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짧은 규례 안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영적 통찰이 담겨 있다.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신 22:1)
1. 신앙은 외면하지 않는 눈이다.
“못 본 체하지 말라”(3번 반복: 1,3,4절)는 표현은 단순한 무관심을 넘어선다. 못 본 척 몸을 피하고, 마음을 닫고,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음의 도피에 대한 경고이다. 이어지는 “반드시 돌려주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강조형이다. 곧 “돌려주고 또 돌려주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단순한 감정적 동정이 아니라, 실제적인 책임을 요구하신다. 사람은 보았기에 책임을 느끼는 존재다. 그래서 보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종종 “못 봤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안 보려고” 한다.
2. 거룩은 작은 책임에서 드러난다.
“네 형제”는 단순히 혈연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출애굽기 23장 4절은 “네 원수의 소나 나귀”라고 말한다. 신명기는 그것을 “네 형제의 소나 양”으로 바꾼다. 원수조차 형제로 보는 시선, 이것이 토라가 제시하는 새로운 인간학이다.
거룩은 거창한 종교적 언어에만 있지 않다. 거룩은 길 잃은 소를 돌려주는 손에 있고, 넘어진 짐승을 일으켜 세우는 수고에 있다. 남의 어려움을 내 책임의 자리로 받아들이는 마음에 있다. 곧 거룩은 일상 속 책임이다.
3. 돌려주는 삶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는 삶이다
“돌려주라”는 말은 신명기 전체의 신학과 연결된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것을 찾으시는 분이다. 애굽에서 잃어버린 백성을 찾아내시고, 광야에서 방황하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신다. 마침내 약속의 땅으로 돌려보내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길 잃은 소와 양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행위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미시적으로 재연하는 일이다.
예수님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목자로 자신을 드러내셨다(눅 15장). 인간은 하나님을 잃어버렸으나,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우리를 찾아 십자가의 길로 오셨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끌어 올려놓으신 궁극의 “돌려주심”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못 본 체하지 말고.” 이 한마디가 오늘 우리의 눈과 마음을 흔든다. 길 잃은 것은 더 이상 소와 양만이 아니다. 길 잃은 청년, 길 잃은 가정, 길 잃은 교회, 그리고 길 잃은 시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도 “내 일이 아니다”라고 지나칠 것인가.
신앙은 큰 구호보다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지나치지 않는 눈, 피하지 않는 마음, 돌려주려는 손, 그것이 거룩한 삶의 첫걸음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못 본 체하지 말라.”
거룩은 예배이기 전에 이웃을 향한 눈뜸이다. 복음은 잃어버린 자를 끝까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집념이다. 못 본 체하지 않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도 새롭게 시작된다.
**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보아야 할 것을 외면하지 않는
믿음의 눈을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잃어버린 것을 찾아 돌이키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의 손과 발, 그리고 우리의 말에 스며들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의 작은 순종 하나로
하나님 나라를 밝히 드러내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