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되, 담지 말라":
필요와 탐욕, 그 거룩한 경계선
* 말씀: 신명기 23장 24–25절
우리는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먹을 것은 넘쳐나고, 소비는 빨라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은 더 가난해졌다. 한쪽에서는 남아도는 것이 버려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하루의 끼니를 걱정한다.
하나님은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이 포도를 배불리 먹는 것을 허락하신다. 곡식밭에 들어간 사람이 손으로 이삭을 따는 것도 허락하신다.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고, 낫을 대지는 말라 하신다. 이 짧은 말씀 안에는 자비와 절제, 환대와 경계라는 하나님의 경제학이 담겨 있다.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신 23:24)
1. 배고픔 앞에 열린 포도원
하나님은 배고픈 사람에게 인색하지 않으시다. “마음껏...배불리 먹으라”는 적극적 환대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최소 단위가 “한 입”이 아니라 “배부름”이다. 포도원은 주인이 소유한 노동의 열매이다. 그러나 그 땅과 햇빛과 비와 씨앗의 생명력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소유는 본질상 위탁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울타리 안에 이웃의 생명을 위한 여백을 남겨 두어야 한다. 곧 배고픈 이웃을 위한 하나님의 몫이다.
2. 그릇과 낫 앞에서 멈추는 절제
“네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23절). 또 “네 손으로 이삭을 따도 되지만 낫을 대지는 말라”(24절)고 한다. 손은 일시적 필요를 상징하고, 낫은 본격적 수확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배고픈 손은 허락하시지만, 탐욕의 낫은 금하신다. 먹는 것은 필요이지만, 담는 것은 축적이다. 손으로 따는 것은 생존이지만, 낫을 대는 것은 주인의 수확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신앙은 더 많이 갖는 능력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멈출 줄 아는 능력이다.
3. 은혜의 밭에서 함께 사는 공동체
오늘 말씀은 굶주린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지 않고, 탐욕스러운 사람을 방치하지 않는 공동체를 꿈꾼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문을 열고, 욕심 많은 사람에게는 선을 긋는다. 배고픈 손은 품고, 탐욕의 낫은 멈추게 하라, 이것이 성경적 공동체의 품격이다. 하나님의 법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지, 배고픈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며 이삭을 잘라 먹었다. 이 때 바리새인들은 도둑질을 문제 삼지 않고 안식일 규정을 문제 삼았다. 이는 배고픈 사람이 손으로 이삭을 따 먹는 일이 율법 안에서 허용된 일이었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그 사건 속에서 율법의 심장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활짝 여신 영원한 포도원이다. 그 곳에서 굶주린 영혼은 배부름을 얻는다. 탐욕에 사로잡혔던 자는 그릇과 낫을 내려놓는 회개를 배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늘 이 말씀은 우리 가슴을 두드린다. 우리의 밭에는 이웃을 위한 여백이 있는가. 우리의 식탁에는 한 사람 더 앉을 자리가 있는가. 우리의 교회는 지친 사람들이 와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열린 포도원인가. 동시에 우리는 자신을 향해 더 깊이 물어야 한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욕망의 그릇에 담고 있지는 않은가? 이웃의 호의를 탐욕의 낫으로 베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우리 교회가 배고픈 손은 따뜻하게 품고, 탐욕의 낫은 단호히 멈추게 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한다.
**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소유한 밭과 포도원이
내 것이라는 착각에서 우리를 깨워 주소서.
필요와 탐욕을 분별하는 거룩한 지혜를 주셔서,
우리의 가정, 교회가 지친 이들에게 열린 포도원이 되게 하옵소서.
생명의 양식이 되신 예수님과 함께
열린 손과 절제하는 손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