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영성

말이 먼저, 칼은 그 다음 -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 * 말씀: 신명기 20장 10절 세계는 지금도 전쟁중이다. 우크라이나 평원에서, 중동

ree610 2026. 6. 15. 08:37

말이 먼저, 칼은 그 다음  -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
* 말씀: 신명기 20장 10절

세계는 지금도 전쟁중이다. 우크라이나 평원에서, 중동의 도시에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 사회의 여러 공동체 안에서도 갈등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고대 근동에서도 전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힘이 정의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력으로 상대를 압박한 뒤 협상을 시도했다. 칼이 먼저였고 말은 나중이었다.
그런데 신명기 20장은 뜻밖의 명령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그 성읍을 향해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고 말씀하신다. 말이 먼저이고 칼은 그 다음이다. 그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먼저 그 성읍에 화평을 선언하라"(신 20:10)

1. 하나님은 먼저 샬롬을 제안하신다

"화평"은 히브리어 샬롬(shalom)이다. 샬롬은 단순히 싸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온전함, 회복, 조화, 번영을 포함하는 풍성한 생명의 상태를 의미한다. 신명기 20장은 이스라엘의 전쟁법을 다룬다. 이 법은 두가지 상황을 구분한다. 원거리의 성읍(10-15절)에는 먼저 화평을 선언하도록 명하신다. 하지만 가나안 안의 성읍들(16-18절)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둔다.
물론 이 화평은 오늘날의 평등한 평화협정과는 다르다. 그 성읍이 화평을 받아들일 경우 조공을 바치고 섬기는 관계가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항복 권고에 가까운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샬롬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평화의 가능성을 먼저 열어 두셨다는 사실이다.

2. 샬롬은 강요가 아니라 초청이다

신명기 20장의 샬롬은 강요가 아니다. 상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자유롭게 응답할 여지를 남겨 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금하지는 않으셨지만,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화평을 먼저 제안하게 하셨다. 칼보다 말이 먼저였고, 심판보다 기회가 먼저였다. 하나님의 평화는 폭력보다 초청이 먼저이다. 이것이 신명기 20장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다.

3. 평화를 선포하는 공동체

이 흐름은 예수님의 제자 파송에서도 분명히 이어진다.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눅 10:5). 만일 그 평안을 받을 사람이 있으면 평안이 머물고, 그렇지 않으면 돌아온다. 샬롬은 강제로 심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먼저 선포해야 한다. 제자 공동체는 먼저 샬롬을 선언하는 공동체다.

신명기의 샬롬은 전쟁을 피할 기회였다. 그러나 신약에서 샬롬은 한 인격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 바울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엡 2:14)라고 선언한다. 예수님은 단순히 평화를 가르치신 분이 아니라 한 인격으로 평화 자체가 되신 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해 보내신 최종적인 화평 선언이다. 인간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지만 하나님은 먼저 다가오셨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늘날 세상은 여전히 칼이 먼저인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상대가 먼저 따뜻한 손을 내밀기를 기다린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회는 세상의 적대감을 확대 재생산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먼저 말을 거는 공동체, 먼저 손을 내미는 공동체, 먼저 샬롬을 선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도 누군가에게 먼저 샬롬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먼저 손 내미는 한 사람이 있을 때,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조용히 시작된다.

** 기도문

평화의 하나님
갈등과 분열의 시대에
먼저 손을 내미는 샬롬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상대를 힘으로 이기려 하기보다
심판보다 회복을, 정죄보다 화해를 먼저 선택하게 하소서.

십자가로 화평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오늘도 먼저 샬롬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