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아래 머무는 권력 – 신명기의 정치신학
* 말씀: 신명기 17장 20절
사람은 낮을 때보다 높아졌을 때 더 위험해진다. 권력은 사람을 새롭게 만들기보다 숨어 있던 욕망을 확대한다. 그러므로 권력의 가장 큰 시험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교만이다.
신명기 17장은 이스라엘 왕에게 네가지를 명한다.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16절),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17절), “은금을 많이 쌓지 말라”(17절), “그리고 율법책을 곁에 두고 평생 읽으라”(18-19절).
여기에 클라이맥스가 바로 20절 (“그리하면...)이다.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신 17:20)
1. 형제 옆에 서는 권력
본문은 왕에게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않게 하라”고 명령한다. 왕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마음이 높아지면 시선이 낮아진다. 사람을 섬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관리의 대상으로 본다. 그러나 왕조차도 말씀 아래 있는 형제다. 이것이 신명기적 정치신학의 놀라운 통찰이다. 권력의 타락은 마음의 고도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너무 높아지면, 형제가 보이지 않는다. 참된 왕은 형제 위가 아니라 형제 옆에 서는 사람이다.
2. 말씀 곁에 두는 권력
왕의 손에는 칼이 있다. 그러나 그 칼보다 먼저 말씀 두루마리가 있어야 한다. 말씀은 권력을 약화시키지 않고 정화한다. 말씀 없는 권력은 자기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말씀 아래 있는 권력은 자기 한계를 기억한다. 말씀은 권력의 교만을 멈추게 하는 거룩한 브레이크다. 말씀은 왕좌를 없애지 않는다. 다만 왕좌가 우상이 되지 않게 한다.
3. 좁은 길을 걷는 권력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은 길의 은유다. 권력자는 쉽게 두 극단에 쉽게 빠진다. 하나는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처럼 밀어붙이는 강압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명령보다 사람들의 눈치 앞에 무릎 꿇는 타협이다. 신명기 17장 20절은 이 두 길을 모두 경계한다.
공의가 있되 잔혹하지 말고, 사랑이 있되 무질서하지 않기를 요청한다. 이것이 영적 균형이다. 신앙의 성숙은 자기 확신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계속 조정받는 일이다.
예수님은 참된 왕이시지만 형제들 위에 교만하게 서지 않으셨다. 세상의 왕은 높아짐으로 왕이 되지만, 예수님은 낮아지심으로 참된 왕이 되셨다(빌 2:8). 예수님은 좁은 길(마 7:14)을 친히 걸으셨다. 좌편의 열심당의 폭력도, 우편의 헤롯당의 타협도 거부하셨다. 십자가라는 좁은 길을 걸으셨다. 그 길 끝에서 부활의 왕이 되셨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래 가는 지도력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말씀에 붙들린 인격이다. 사람 위에 높아지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서 떠나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다.
오늘 우리에게도 작은 왕좌들이 있다. 그 왕좌가 위험한 것이 아니다. 위험한 것은 그 왕좌가 말씀보다 높아지는 것이다. 왕좌가 말씀 아래 있을 때에, 모든 권력은 진정한 섬김이 된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겸손한 자유, 그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마음이 형제 위에 높아지지 않게 하소서.
직분이 커질수록 더 깊이 말씀 앞에 엎드리게 하소서.
사람을 도구로 보지 않고 형제로 보게 하소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우리의 발걸음을 붙드소서.
낮아지신 왕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말씀 아래 머물며 겸손한 자유를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