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33:1~20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찬송가 327장 주님 주실 화평
I. 야곱과 에서의 상면 (창 33:1-4)
(1) 야곱은 에서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1절). `눈을 들어 보았다`는 표현에 대핸 어떤 학자들은 그가 낙심과는 정반대인 즐거움과 확신하는 표정을 지었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야곱은 자신의 사정을 기도로써 하나님께 맡겼으므로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이`(삼하 1;18) 자기 길을 갔다.
(2) 그는 에서를 영접하기 위하여 자신의 가족을 가장 잘 배열하였다. 이 두 형제가 얼마나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가 살펴보자. 에서는 400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므로 대단해 보였다.
(3) 그들은 서로 만나 그들 사이에 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로 애정을 주고 받았다.
1)야곱은 에서에게 절하였다(3절). 비록 에서를 적으로 두려워하였지만 그를 형으로 맞아 경의를 표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겸손함으로써 목숨을 보존한다. 총알은 고개를 숙인 사람 위로 날아가는 법이다.
2)에서는 야곱을 포옹했다(4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이는 격분한 상태가 아닌, 사랑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야곱과 화해하였던 것이다. 만일 이 때에 에서의 영혼에 어떤 놀라운 변화가 임한 것이 아니라면 야곱이 사람들에게서 방백이라고 불리울 만한 능력을 얻은 사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손 안에 갖고 계시므로 언제나 그가 원하는 대로 아무도 모르게 아무 소리도 없이,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바꾸어 놓으실 수 있다.

Ⅱ. 야곱과 에서의 대화 (창 33:5-15)
(1) 그들은 야곱의 일행에 관하여 이야기였다(5-7절). 가장 큰 아이라고 해야 14살을 넘기지 안았을 열 하나 내지 열 둘 정도의 작은 아이들이 야곱을 가까이 좇고 있었다. 너와 함께한 이들은 누구냐 (5절).
에서가 묻자 야곱은 엄숙하게 대답하였다.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 야곱은 자기 자녀들을 하나님께 주신 선물이라고 말한다.
(2) 그들은 야곱이 에서에게 보낸 선물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1)에서는 그것들이 자신에게 넉넉히 있고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점잖게 거절하였다(9절). 비록 자신이 남들처럼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더라도 자기의 소유가 넉넉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2)야곱은 에서가 이 선물을 받도록 애정어린 태도로 강권하여 마침내 받도록 한다(10:11절). 야곱은 두려움 때문에 그것들을 보내었다(32:20).그는 에서에게 큰 찬사를 보내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10절). 이 말의 의미는 야곱에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기도를 들어주신 훌륭한 징표였다.
(3) 그들은 앞으로의 여행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1)에서는 진정한 화해의 징표로 자신이 야곱의 안내자와 동무가 되겠다고 제의한다(12절). 에서는 야곱의 일행을 좋아하게 되어 그에게 세일 산으로 가자고 권한다.그렇지만 야곱에게는 이 제안을 조심성 있게 거절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13,14절). 즉 그는 선한 목자와 훌륭한 아버지로서 자신의 가족과 가축들에 대하여 세심하게 염려하면서 거절하였다. 그는 자녀들을 빨리 가게 하거나 가축들을 급히 몰기에는 그들이 너무 유약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
2)에서는 그의 부하 몇 명으로 하여금 야곱을 보호하고 호위하게 할 것을 제의했다(15절). 야곱은 겸손한 사람이므로 위엄을 세우기 위한 호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므로 안전을 위해 경호를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Ⅲ. 야곱의 정착 (창 33:16-20)
(1)서로 우애를 나눈 후에 에서는 자기 땅으로 돌아가고 야곱은 얼마 동안 머무를 곳에 이르렀다. 그곳은 후에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갓 지파의 성읍이 되어 숙곳(움막이라는 뜻)이라고 불리워 졌다. 그의 후손들은 후에 돌로 지은 집에서 살면서도, 움막조차 감사하게 여겼던 `유리하는 아람 사람이`바로 자기들의 조상이었음을 상기할 수 있도록 그런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신 26:5).
(2)그는 세겜에 이른다. 본문은 `세겜의 성읍 곧 살렘`으로 읽을 수 있다(한글 개역에는 살렘이 없음-역주). 많은 역경을 겪은 위험스러운 여행 끝에 그는 마침내 안전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는 밭을 샀다(19절). 가나안 땅은 그의 것으로 약속되어 있었지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으므로 그는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는 단을 쌓았다(20절).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로 쌓은 것이었다. 야곱은 `엘엘로헤이스라엘` 곧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이 단을 봉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최근에 그에게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그러자 이제는 그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비록 그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칭함 받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그와 겨루어 이기시는 분 곧 그의 여호와요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창세기 33:4)
** 에서와 야곱의 화해
* 야곱과 에서의 상봉(33:1-11)
야곱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자, 형제의 복수심과 미움은 죽시 형제간의 사랑으로 바뀌었습니다. 야곱이 겸손한 태도를 취하자 에서는 달려와 그를 맞았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존경심으로 대하자 에서는 그를 용서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책임적 위치에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회복하면 다른 모든 관계도 회복됩니다(잠16:7). 성도가 먼저 변화되어야 다른 모든 관계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 숙곳과 세겜에 안주한 야곱(33:16-20)
숙곳은 ‘장막들’, ‘우리들’이라는 뜻의 지명입니다. 이는 야곱이 여기서 집을 짓고 짐승 우릿간을 지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10여 년을 머물렀습니다. 또한 세겜에서는 장막을 치고 밭을 사고 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은 일견 신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은 분명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린 배도의 행위였습니다. 즉, 아비 집을 떠나 벧엘에서 행한 맹세를 잊은 처사였습니다. 순종 없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성도의 머물 곳은 세상의 안일함이 아니라 주님의 집이어야 합니다.
주님!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주님께서 화해의 제물이 되어주신 것을 기억하고 용서를 선포하게 하옵소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