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상 - 고흐의 37년과 테오의 33년: 차정식 교수
금오도 밭에 어린 귤나무 세 개를 심었다. 농업경영체에 정식 등록돼 퇴비 한 포대를 시장가의 절반인 2천원에 10포대 구입해 봄농사를 준비해놓았다.
함께 오신 오 집사님은 집의 도어락과 썩은 걸레받이 일부를 교체하고 낡아빠진 바깥 수도 호스와 물뿌리개도 교체, 수리해 주셨다.
너무 일찍 깨어나 기도하거나 묵상을 하다 뜬금없이 37년을 살다간 먼 나라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주의 집중해 생각한다. 10년간 혼신의 힘으로 2천 점의 그림을 그렸으나 딱 한 점이 팔렸을 뿐 살아생전 화가로 푸대접 받고 미치광이 취급 당하면서도 불멸의 예술혼을 불태우다 스러진 고독한 예술가의 외길 인생에 경의를 표한다.
한 명의 여자를 사랑해보려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며 구애했지만 세 번이나 퇴짜받고, 목사가 되어보려 신학 공부도 해보고 전도자로 살아보려 열심히 밑바닥에서 노력했지만, 헬라어 라틴어 문법이 어려워 포기하고, 또 너무 치열하게 가난한 광부들을 사랑한 나머지 성직자 후보로 품위 없어 보인다고 해고당한 그 사람,
그러나 목사 부친과 어미도 부끄러워하며 포기한 그를 지탱해준 의리의 동생이 있었다. 고흐가 11살 때 헤어져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 그때부터 동생 테오는 그를 형으로 존경하여 33세에 죽을 때까지 그림 장사로 번 돈을 꾸준히 보내주며 22년간 뒷바라지 해주었다. 그 동생 테오의 선한 성실함이 있었기에 고흐가 10년간 버티며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역사의 망각에서 그가 부활할 수 있었다.
형의 권총 자살로 동생 테오도 상심이 커 몇 개월 지나 33세에 죽었지만, 그의 아내 조앤은 70세 넘도록 살면서 이 두 형제의 편지들을 모아 읽으면서 아름다운 의리를 발견했고 그걸 정리해 책으로 내주었다.
또 아주버니 고흐의 작품들도 모아 파리 뮌헨 암스테르담 등지에서 전시회를 열어 그의 천재적 예술혼을 만방에 전파하는 데 혼심의 힘을 기울였다. 그렇게 그녀는 고흐를 창조적인 색체의 마법사로 부활시키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조앤의 아들들 역시 1970년대 암스테르담에 고흐의 박물관을 짓는 데 기여하는 등 아내도 자식도 없이 죽은 삼촌의 유산을 영구 보존하는 일에 앞장섰다.
나이 들수록 내 옆에 있는 한 사람을 제대로 끝까지 사랑하는 일조차 쉽지 않은 인생의 사명임을 고흐와 테오 형제, 조앤과 그 아들들이 깨우쳐준다.
나 역시 죽은 나무 뽑어내고 봄마다 새 나무 하나 또 심어 책임있게 돌보는 일이 슬슬 버거워진다.
몸과 시간과 돈과 지극한 정성이 투여되는 구체적인 참여와 꾸준한 돌봄 없이 사랑도 정의도 한갓 클리셰에 불과한 것 같다.
잠들 때마다, 잠 깰 적마다 한 가지씩 배우며 탄식한다. 평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