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글

봄의 저울 - 김수우 종이봉투가 되어버린 내 머리통에서 푸른 사내는 뭔가 끄집어내 투덜투덜 내던진다 눈만 끔벅였다 난처했다

ree610 2026. 1. 29. 08:40

봄의 저울  

     - 김수우

종이봉투가 되어버린 내 머리통에서
푸른 사내는 뭔가 끄집어내 투덜투덜 내던진다
눈만 끔벅였다 난처했다
한 짝 슬리퍼나 사과 꼭지, 빨래판, 녹슨 화살촉도 보인다.
전갈이나 지네도 허우적 떨어진다

내 속에 더런 게 있었다니
점점 난처하다
배고픈 늑대를 화분에 심는 일만큼이나 난처하다
전혀 모른다고 내가 키운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입술은 암모나이트 화석이다

뚜겅을 잃어버린 만년필 까닭이 분명하지만
시체들 각막을 모아놓은 시 때문이 틀림없지만

머리 뚜껑이 열린 채 눈동자 굴릴 때마다
저울추가 평평해진다
고대 벽화 속 토우가 햇살을 게우 듯
갈고랑이 손을 가진 사내가 추썩거릴 때마다
하늘에 연두가 번져간다

울경불경 잡동사니 도깨비들, 바다로 가는 모양이다
전갈이나 지네를 차라리 따라갈까
큰 집게나 많은 발이 아니라
그들의 독이 절실했던 시대가 좀 많았으니
난처한 밥, 난처한 무릎, 난처한 자살, 난처한 위정자까지

보도블록 촘촘촘 봄을 세우는 연두의 저울눈들
빈 봉투가 되는 동안
점점 난처한, 점점 뻔뻔한, 점점 그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