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기다렸던 그런 판결...한덕수 재판...촌평]
1. 이진관 재판장이 낭독한 판결문. 마디마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명판결이지요. 그동안 내란불면증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청량제, 소화제가 되었습니다. 2025.4.4. 헌법재판소의 파면결정 후, 지리한 진행 끝에 마침내 죽비를 내리치는 판결을 만났습니다. 내용은 부연설명, 요약 필요없이 그냥 읽으면 되고, 읽으면서 맘에 드는 부분을 줄쳐서 활용해도 될 것입니다.
2. 사실관계, 법논리는 직전의 윤석열재판, 한덕수재판 모두 일관됩니다. 서울지법 이후 전개될 재판부 판결도 그 궤도에 따라 죽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실히 섭니다.
3. 한덕수 총리는 자기가 별로 한게 없다고 주장하고, 우길게 뻔합니다. 그러나 계엄의 합헌성, 적법성 여부를 대하여 국무총리의 책임 역시 막중합니다. 한총리는 국무회의 심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했고, 부서 요건도 갖추지 않았는데 사후에 문서를 만들어 끼워넣으려고 하는 등, 전후 모두 총리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총리의 "부작위로 인한 법익침해는 그 자체 내란주요임무종사자"의 실행행위로 평가했습니다. 공직자들이 단순 부작위 주장으로 면책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앞으로 공직자들에게 지위에 걸맞는 책임을 지는 시기가 확실히 도래할 것입니다.
4.단전단수조치의 평가: 언론사 세 곳에 단전단수한다는 것은, 그냥 물과 전기의 공급을 끊는 물리적 조치가 아닙니다. 단전단수는 언론사를 물리적으로 봉쇄함으로써, 그 언론업무수행을 불능케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두개 기사에 대한 탄압이 아니라, 언론출판의 전면 금지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특정언론에 대해 전면금지를 하게 되면, 전체 언론에 대한 허가 검열을 시행한다는 것입니다. 그에 협력한 한덕수, 이상민은 내란주요임무종사의 고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민 재판 결과를 예고한 것이나 다름 없네요. - 한인섭 명예교수
** 양형 설명:
이미 많은 언론, 유튜브에서 핵심적 내용을 실시간으로 전파, 소화, 해설까지 했습니다. 해설 없이 그냥 인용만 하고 읽어도 저절로 뜻이 전달되어 옵니다.
1. 친위쿠데타(위로부터의 내란).
"12.3 내란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추정 세력에 의한 것으로서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형태의 내란은 이른바 친위 쿠데타라고도 불립니다.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친위 쿠데타는 많은 경우 성공하여 권력자는 독재자가 되었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같은 기본권은 본질적으로 침해되었으며, 국가의 경제와 외교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독재자의 권력이 약해지는 시기가 되면 내전과 같은 전쟁이나 정치 투쟁으로 국가와 사회 전반이 회복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지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2.3 내란은 이러한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되는 점에서 그 위험성의 정도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고 이를 위반하는 내란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이 가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 자체를 뿌리째 흔들기 때문입니다."
2. 소위 계몽령, 저항권 비판:
"현재 우리 주위에는 민주적 기본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있거나 이를 파괴하는 시도가 있고, 이미 유효한 구제 수단이 남아있지 않는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논의되는 저항권을 평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하는 사람들. 헌법과 법률에 정한 바 없어 위헌, 위법한 주장에 불과한 계몽적 경험, 잠정적 경험, 경고성 경험을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지난 2025년 1월 19일 발생한 서울지방법원 폭동 사건과 같이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을 쉽사리 위반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는 선거 제도를 정당한 근거 없이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2.3 내란은 이와 같이 잘못된 주장이나 생각을 양산하거나 그 상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3. 전.노 재판의 양형은 참고대상이 아니다. 전.노의 경우 늘 계엄을 구사하던 권위주의 군사독재하에서 일어난 내란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계엄이후 45년이 지난 2024년의 시점에서, 1979-80년도의 내란죄와 그 재판(1996-1997)의 양형을 선례로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존 내란 사건이 발생했던 시기와 12.3 내란이 발생한 시기에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고, 이에 따라 국제 무역과 국제 정치 등에 있어서 그 위상도 기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대한민국에서 친위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사실로 인해 생긴 경제적, 정치적 충격은 기존 내란 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른다고 보입니다. 이러한 점에서도 기존 내란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은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4. 몇시간 만에 끝났고,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고성 계엄이라는 윤석열측의 줄기찬 주장에 대한 뼈때리는 반박 부분입니다. 하도 이런 주장을 펼치다보니, 피고인 양형의 주요 참작사유가 되지 않을까 걱정될 수도 있었는데, 확실한 반박을 했습니다. 재판부가 고심하여 만들어낸 작품이지요.
"12.3 내란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내란 행위 자체는 몇 시간 만에 종료되긴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무엇보다도 무장한 군인에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에 의한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이런 국민의 저항을 바탕으로 신속히 국회에 진입하여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한 일부 정치인들의 노력, 대한민국 역사에 있었던 내란의 암울한 기억을 상기하면서 위법한 지시와 명령에 저항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더라도 소극적으로 참여한 일부 군인과 경찰 공무원의 행동에 의한 것입니다. 결코 12·3 내란 가담자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12·3 내란 가담자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피해 발생이 경미하였다거나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는 사정을 깊이 고려할 수는 없습니다."
헌재의 2025.4.4.의 연속이지요. 그때 국민들의 저항과 군인들의 소극적 대응 덕분에 계엄이 해제된 것이지, 윤석열측이 자의로 해제한 게 아니다라는 점을 더 구체적으로 짚었습니다. 누가 계엄의 추진자였고, 누가 계엄의 저지자였는지를 분명히 하면서, "덕분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확연히 구별해냈습니다.
5. 한덕수 총리의 처신: 한덕수는 대한민국 역사상 관료로서 가장 출세한 인물, 장기간 재직한 인물, 매끄러운 처신으로 여러 정부의 줄을 잘 탄 인물입니다. 이런 인물이 그대로 공직생활을 잘 마무리한다면, 성공한 공직자모델로서 연구되고 추종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12.3내란에 주요임무종사를 하고, 상황에 따라 거짓말과 위증을 거듭하고, 자기보신을 위한 반헌법적 책동을 끊임없이 감행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어떤 국면이든지 국민이 아니라 자신을 어떡하면 가장 잘 높일수 있을까에 비상하게 잔꾀가 돌아가는 그런 유형이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국민은 계엄하에 살 뻔도 했고, 탄핵도 안될 뻔했고, 대선 투표명부에서 그의 이름을 볼 뻔도 했습니다. 그 점을 판결에서는 곳곳에서 질타하고 있습니다.
(1) 내란이 성공할지모른다는 생각에서: "피고인은 간접적으로나마 민주적 정당성과 그에 합당한 책임을 부여 받은 국무총리로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헌법적 의무를 부담합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러한 의무와 책임을 끝내 외면하고, 오히려 그 일원으로서 가담하기로 선택하였습니다."
(2)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피고인은 국무총리로서 12.3 내란의 진실을 밝히고 그의 합당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사후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이 사건 비상계엄 관련 문구를 은닉하고 비상계엄 선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였다가 폐기하였으며, 헌법재판소에서 위증하였습니다. 피고인 재판 과정에서도 허위로 진술을 번복하고, 대통령실 CCTV와 같은 객관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는 등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벗어나고자 할 뿐입니다."
(3)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피고인 제2회 공판기일에서 12·3 내란에 관하여 여러 가지 법적인 검토가 필요하여 공개적으로 제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만 진술하였다가, 이 법원의 요구에 따라 내란 중요 임무 종사 공소사실이 추가되고 대통령실 CCTV 영상 재생 및 증인 신문 등 증거 조사를 거쳐 자신의 범죄 사실이 탄로 나 형사 처벌의 기로에 서자 마지못해 최후 진술에 이르러서야 국민이 겪은 고통과 혼란에 대해 가슴 깊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지만,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달리 피고인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거나 자신의 범죄 행위로 인하여 국가와 국민이 입은 피해를 회복시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을 하였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습니다."
6. 한덕수의 출세, 관운의 끝은?
그의 평생은 공직자로서, 참으로 유능하고 매끄럽게 민주-보수 두 정부의 국무총리를 역임했습니다. 모든 국가와 국민이 부여한 자리, 명예, 혜택을 다 누린 사람입니다. 그는 대통령을 잘 모시는데 최고도의 수완을 가진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전에는 No가 없었습니다. 윗 분의 심기에 맞춰, 자신을 맞추려다 보니, 그렇게 수십년을 살아가면서, 그는 민주주의, 국민주권과 관계없이, 윗 분을 잘 모시면서 "자신의 안위"를 실제로 지상가치로 알고 실천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늘 성공했습니다. 심지어 내란 수사에서도 주요임무종사자가 아닌 내란방조죄로,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자유로운 입장에서, 재판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추상같은 재판부를 만나서, '하늘의 그물은 성긴 것 같아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그 천망(天網)에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그의 삶과 처신은 공직자의 모델이 아니라 반면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7. 이 판결을 내린 분은 이진관 재판장 한 분이 아니고, 3인 합의부입니다. 2인의 이름은 거의 거론되고 있지 않는데, 판결문에는 3인은 대등한 위치에서 심리하고 판결합니다. 그러니 다른 두 분 이름도 기억해서 불러봅니다.
판결문 끝에는 이렇게 될 것입니다.
"재판장 판사 이진관 (인)
판사 윤이환 (인)
판사 이재준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