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한국교회가 사는 길 1 오래 전에 정리한 글이지만 올립니다. 신학교 석박사 시절 부전공에 가까운 것이 종교개혁사였기에. - 옥성득 교수

ree610 2026. 1. 10. 22:48

한국교회가 사는 길 1

오래 전에 정리한 글이지만 올립니다.
신학교 석박사 시절 부전공에 가까운 것이 종교개혁사였기에. - 옥성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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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개신교의 과제 1

lutheroak 2026. 1. 10. 02:57
"루터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개신교의 과제,"   <신학논단> 110 (2022. 12): 75-118.

종교개혁은 유럽에서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의 문을 연 획기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마찬가지로 한국 개신교는 전근대적 조선 왕국을 근대 한국, 곧 정교분리 원칙에 기초한 종교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경제 성장의 자본주의, 독립 민족국가 형성을 위한 민족주의 등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 국가로 전환하는 데 이바지한 신종교로 서술되었다. 
최근 세계기독교 역사가들은 전자의 거대 서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데 반하여, 한국 기독교사는 아직 민족주의 근대화 서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개신교 역사의 거대 서사를 재검토함으로써 프로테스탄티즘이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와 개혁 과제를 탐구하려고 한다.
종교개혁이 쏜 화살의 최종 목표는 한국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이다. 루터가 교회 개혁을 위해 면벌부와 교황을 비판한 95개 조항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대개혁을 가져왔다. 문제는 신학과 교회 개혁을 위해 그가 내세운 원리들의 사회적 결과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한국 개신교를 개혁하는 참고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재해석하고 재적용할 모형이 될 수 있는가에 있다. 개신교는 죽은 자의 살아 있는 신앙인 전통은 수용하지만, 산 자의 죽은 신앙인 전통주의는 배격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개혁 신학과 개혁 운동에 관한 문헌적 공부를 통해 역사적 영감을 얻는 것도 필요하지만, ‘오직 그리스도만’의 원리를 따라 그 길을 따라가는 실천적 경건인 도학으로 새로운 개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글은 루터 종교개혁의 유산과 그것이 한국 개신교 개혁을 위한 함의를 다음 여섯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본다. 첫 세 가지는 종교개혁의 신학적 원리이며, 나머지 셋은 종교개혁의 신화와 관련된 사회적 주제들이다. 곧 4절부터는 종교개혁의 신화들을 다룬다. 기존에 알려진 명제와 유산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한국 교회에 주는 현재적 의미를 찾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1) 개인: 이신칭의 대 사적 칭의, 2) 교회: 오직 성경 대 교파형 기업교회, 3) 목회: 만인제사장 대 가부장적 성직신분주의,
4) 정치: 두 왕국론 대 민족국가주의, 5) 경제: 디아코니아 윤리 대 맘몬주의, 6) 학문: 기독교 집단 지성 대 마술주의의 순서이다.
 곧 교리나 교회 개혁(reformation)을 넘어 사회 총체적인 대개혁 (Reformation)을 위해 한국교회가 숙고할 과제를 정리한다.
 이들 주제를 통해 1) 주체적 자아와 탈서구신학(한국적 신학), 2) 탈기업교회(선교적 교회), 3) 탈가부장적 성직주의(경건한 작은 공동체의 목회), 4) 탈민족교회(하나님 나라), 5) 탈맘몬주의와 탈자선주의(사회자본)를 화두로 제시하려고 한다.
 각 항은 루터와 종교개혁의 원리가 가진 긍정적 유산을 서술하고, 문제가 되는 부정적 유산들을 지적한 후, 한국 교회를 위한 과제와 토론점을 제시하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1. 개인: Sola Fide--脫사적 칭의와 脫서구 신학
종교개혁의 핵심 동력은 루터의 3대 솔라 원칙인 sola fide(사람은 그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롤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다), sola gratia(이 믿음은 오직 은혜로 주어지며 다른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다), sola scriptura(전통이나 교회의 권위보다 성경의 권위가 우선이다)이며, 여기에서 나온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개신교와 근대 세계를 만들었다.

긍정적 유산 1. 자유로운 개인의 발견: 이 중에서 솔라피데(이신칭의)는 모든 개신교 신학의 기초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선언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의 주인이요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동시에 그는 종으로, 모든 이들의 필요에 수종 들어야 한다.”고 말한 루터의 선언처럼, 그리스도의 은혜로 선물로 외부에서 주어진 의를 믿는 믿음으로 중생된 개인은 내적으로 자유인인 동시에, 외적으로는 이웃을 섬기는 종으로 산다. 바르트는 전자가 믿음과 자유의 결합이라면, 후자는 기쁨의 섬김과 책임 있는 반응이라고 <바르멘 선언>(1935)에서 표현했다. 본회퍼도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한다고 고백했다.
루터는 수도사였다. 그는 모든 것을 버렸으며, 그리스도를 완전히 순종하면서 따르기를 원하였다. 수도원으로의 부름은 루터에게 그의 전 생명을 걸게 하였다. 그런데 루터는 하나님 자신에게로 가는 길에서 실패하였다. 하나님이 성서를 통해 그에게 보여주신 것은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이 특별한 개인의 공로적인 행위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따라감의 겸손한 활동이 수도원에서는 특별한 자들의 공로 행위로 변질되었다. 여기서는 따라감이라는 자기 부정이 경건한 자들의 영적인 자기 드러냄으로 변질되었다. 이를 통해 세상이 바로 수도 생활의 중심으로 파고들었고, 가장 위험한 방법으로 수도 생활을 움직이게 되었다. 수도사의 세상 도피는 오히려 가장 정교한 세상 사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또다시 자신의 그물을 버리고 따라야 했다. 그가 수도원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버렸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은, 스스로 경건하려고 하는 자아만은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이것까지도 버려야 했다.
루터는 수도원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세상 자체가 선하고 거룩해서가 아니라, 수도원도 세상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도원을 떠나 세상으로 되돌아와야 했던 루터의 발걸음은 성서 시대의 기독교 이래 세상에 가해진 가장 강력한 공격이었다. 수도사가 세상을 향해 던졌던 거부는 세상이 자기 속으로 되돌아온 자를 통해 경험한 거부에 비하면 어린아이의 놀이에 불과했다. 이제 공격은 전면적으로 개시되었다. 예수를 뒤따름은 이제 세상 한복판에서 실천되어야 했다. 수도원적 삶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행해지고, 수도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나마 좀 쉽게 행해질 수 있었던 특별한 행위가 이제는 세상 속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요청이요, 계명이 되었다. 예수의 계명에 대한 철저한 순종은 일상의 직업적 삶에서 행해져야 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과 세상의 삶 사이의 갈등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깊어졌다. 그리스도인은 몸으로 세상과 부딪치게 되었다. 이것은 백병전이었다.
‘자신의 의로움을 위한 일’에서 자유롭게 된 개인은 ‘세상의 정의를 위한 일’에 종이 된다.

긍정적 유산 2.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성의 전적 회복: 구원에 대해 전적으로 무능한 인간의 죄성과 타락을 강조한 종교개혁이 오히려 인간성 회복에 기여했다. 중세 후기부터 유행하여 트렌트공의회 (1545)에서 정점에 이른 근대적 방법(via moderna)이 인간을 긍정적으로 보았다면, 개신교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1563)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8) 등은 의롭게 되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전무하다는 전적타락을 강조했다. 믿음으로 주어지는 칭의는 가톨릭이 주장하는 점진적이고 미래적인 것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단번에 주어진 현재적 실재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루터의 표현대로라면 죄에 ‘포로된 의지’ (1525)뿐인 전적으로 무능한 인간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적 (irresistible)이며,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불가피탈적 (indeprivable)이다. “우리는 의로운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의로운 행동을 한다.”(LW 31:11)는 루터의 신학은, 죄로 타락한 정서(affections)의 종인 인간의 의지를 이웃에 대해 자발적으로 종이 되는 자유 의지로 변혁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은 “전적 죄인인 동시에 전적 의인”이라는 루터의 말은 명사로서의 의인이 아니라 동사로서의 의인을 말하며, 개인적 의인이 아니라 공동체적 의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한 것이다.

부정적 유산 1. 私적인 칭의: 내적 믿음과 외적 정의라는 양면성의 긴장을 놓쳤을 때, 솔라 피데는 개인주의적이고 내면적인 문제로 후퇴하는 교리로 변질된다. 구원과 의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므로, 내가 일할 필요나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없어진 대신,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만 집중하면 되면, 이신칭의는 내면의 불안과 근심을 해소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기독교인이 세상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하나님은 '세계'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그렇다면 과연 이신칭의라는 복음이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를 향유하도록 하고, 양심의 자유로 세계 시민적 삶에 공적으로 참여하여 세상을 정의롭게 하는 일에 헌신하도록 할까? 나라를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죄와 맞서 싸우고, 고문을 달게 받고, 감옥에 갇히고, 순교까지 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면(히 11:33~38), 믿음이 가져오는 의는 약자와 소외된 자를 돌보는 공적 정의를 포함한다.
 이신칭의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구약과 복음서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총체적 정의 회복에 헌신한다.

부정적 유산 2. 가톨릭교회와의 불화: 한스 큉은 1957년 가톨릭과 개신교의 칭의 이해는 두 교회를 분리할 정도로 다른 면은 없다고 주장했다. 1973년 루터교회와 가톨릭교회는 “이신칭의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개인의 죄 용서에 머물지 않고, 기독인의 자유의 기초가 된다.”고 공동으로 선언했다. 루터교회의 기초가 된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1530)을 발표한 바로 그 도시에서 1999년 가톨릭교회와 루터교회가 만나 <칭의 교리에 대한 공동 선언>을 발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다는 공동 이해”를 공유했다. 이후에도 감리회의 서울 선언 (2006년)과 개혁교회 선언(2017년)이 있었다. 그러나 바티칸과 한국 개신교에는 여전히 강경파가 존재하고, 칭의 교리를 두 교회를 가르는 시금석으로 여긴다. 이신칭의가 신구교간 협력의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정적 유산 3. 세속화의 자유: 기독교인이 되는 개인의 자유는 기독교로부터의 자유도 허용했다. 본회퍼는 ‘종교 없는 기독교’를 질문했지만, 사람들은 이제 ‘기독교 없는 영성’을 질문하고 그 영성을 체험하기를 원한다. 동시에 현대는 신앙이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되면서 비기독교인이 되는 자유, 곧 세속화의 자유가 주어졌다. 지난 10년간 한국 개신교에서 발생한 ‘가나안 성도’ 현상은 바로 제도 종교에 대한 세속화 현상으로서, 종교 없는 종교성이 드러난 하나의 거대한 운동이었다. 기독교 영성으로 어떻게 이 교회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는 유동하는 세대를 비세속화할 것인가가 화두이다.

한국 교회에 주는 의미
1. 脫사적 자아 入공적 자아: 솔라 피데는 한국에서 탈 가족 자아, 탈 착한아이 신드롬, 탈 메시아 콤플렉스라는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한다.
 첫째, 이신칭의의 사람 만들기 없이는 교회 개혁은 불가능하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유로운 단독자의 입장에서, 데카르트 이후 근대 서구의 이성적인 백인 남성의 이기적 자아 (rational-white male-selfish self)나 신유교의 영향 하에서 효를 최대 도덕적 가치로 여기는 가족적 자아(family self)나 몰주체적 자아(subjectless self)를 극복한 신앙적 개인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일제 총독부와 군사 독재 정권이 이용한 순종적이고 동화적인 자아와 현대 교육과 대형 교회가 발전시킨 두 부류의 교인— 곧 권위주의에 순응하는 착한아이 신드롬(good child syndrome)에 나약해진 교인들과 자신이 아니면 세상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늘 분주하고 강해 보이지만 피곤하여 내면에 평화가 없는 메시아 콤플렉스(messiah complex)에 빠진 목회자들을 치유하여, 불의와 싸우는 전투적 자아(justice-seeking–militant self)를 계발하도록 돕는 솔라 피데의 한국적 신학이 필요하다. 교회와 사회에 건전한 개인주의를 심는 것이 한국 개신교의 첫째 과제이다.

둘째, 이신칭의에서 개인주의에 물든 신학을 극복하고 믿음의 공적 차원을 회복시키는 신학이 필요하다. 바울의 새 관점론 칭의 논쟁에서 칭의의 공공성 검토가 필요하다. 평화를 만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을 구할 때이다.

셋째, 이신칭의 교리가 신구교간 협력의 장애 요인이 될 수 없다. 한국에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다른 두 개의 종교로 존재한다. 1900년경부터 서로 경쟁, 갈등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1911년 개신교 탄압 사건인 105인 사건은 천주교 주교 뮈텔의 밀고에 따른 1910년 안악사건에서 비롯되었다. 1919년 삼일운동 때에도 협력은 없었다. 1930년대 천주교의 신사참배 허용으로 개신교의 입지가 좁아졌다. 1960년 부대통령 선거 때 개신교인들은 이기붕과 장면의 대결을 신교와 구교의 경쟁으로 보고 부정을 동원해 감리교인 이기붕을 당선시켰다. 1970년대 공동번역 성서로 연합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1990년대 통일 운동에 상호 협력했으나 미약했다. 이러한 갈등의 역사를 청산하고, 교리, 예전, 교직의 상호이해와 연합운동을 지속해야 한다.

넷째, 비종교인이 급증하고 세속화가 가속되는 한국과 미국에서 신앙 양심의 자유의 재발견은 세속화와 도덕적 상대주의가 일으키는 인종주의, 여성 차별, 소수자 차별 등의 문제를 비판하고 인권 신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이신칭의가 복음이 아닌 교리로 존재할 때, 이신칭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주의로 변질할 수 있다. 즉 교리를 믿는 나의 행위가 공적이 된다. 나아가 교리주의는 특정 교리를 수용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낙인을 찍는 배타주의를 초래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단을 처형하는 권리를 국가에 주면서 교회가 국가에 종속되는 종교 분리 정책으로 나아갔다. 유사하게 한국 교회는 교회 분쟁과 이단 시비를 자체 해결 능력이 부족으로 세속 법정에 넘겨주고 있다. 교리주의가 배타주의를 낳고, 교회 분열과 교회의 국가 종속을 가속하고 있다.

한국 교회에 주는 의미 2. 脫교리주의 入신용교회: Sola fide(이신칭의)가 복음이 아닌 교리로 존재할 때, 이신칭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즉 교리를 믿는 나의 행위가 공적이 된다. 나아가 교리주의는 특정 교리를 수용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낙인을 찍는 배타주의를 낳는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단을 처형하는 권리를 국가에 주면서 교회가 국가에 종속되는 종교 분리로 갔다. 유사하게 한국 교회는 교회 분쟁과 이단 시비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세속 법정으로 넘겨주고 있다. 교리주의가 배타주의를 낳고 결국 세속 법정에 호소하는 무력한 교회를 만들고 있다. 질서 있는 교회, 대사회적 신용도가 회복된 교회를 위해서 솔라 피데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 교회에 주는 의미 3. 脫서구 신학 入한국 신학: 루터가 이신칭의 교리를 재발견하고 중세 가톨릭 신학에서 독립했듯이, 한국 그리스도인은 1세기 예수의 복음과 바울의 신학을 깊이 공부하고 21세기 한국 교회 상황과 연결하는 연구심을 통해 서구신학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서와 현 상황 사이에 존재하는 2,000년 기독교 신학이나 개신교 500년 동안 이루어진 서구와 아시아 신학을 참고하되, 그 안에 들어 있는 비복음적 요소를 극복하는 재복음화 작업이 필요하다.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게 대략 479년이요, 이차돈이 순교한 때가 527년이다. 그 후 123년이 지난 650년 45세의 원효(617~686)는 의상과 함께 중국에 가던 길에 무덤 굴에서 자면서 해골 물을 마신 후 모든 것이 오직 마음(唯心 sola cordi)에 달렸다고 깨닫고, 유학을 가지 않고 불경 연구와 명상에 열중하여 아시아 최고의 불교학자가 되었다. 불교 전래 200년이 되기 전에 세계 불교학과 타종교학을 섭렵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불교학을 수립했다. 원천으로 돌아가는 Ad fontes의 정신을 따라, 성경을 들고 주 앞에 나아가 가슴을 치며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겸비한 죄인 신학자들이 나와서, 어떤 권위나 조직이나 서구 대가의 이론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을 향해 나아가, 십자가의 신학을 새롭게 발견하고 망하지 않는 공의의 신학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이와 같이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했던 예수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자세와 전통을 극복하는 주체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십자가를 구하는 개신교 신학의 독특한 유산에 탈서구 신학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