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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손양원, 정병욱과 손동길(손양원 막내 아들) - 박대영 목사 소명 선교부의 선교지 방문에 동행. 여수애양원과 정병욱 박사의 광야 집

ree610 2025. 11. 17. 11:09

윤동주와 손양원,
정병욱과 손동길(손양원 막내 아들)
- 박대영 목사

2025년 소명 선교부의 선교지 방문에 동행했다.
행선지는 여수애양원과 정병욱 박사의 광야 집이었다.

새벽예배를 끝내고 나는 일찍 출발하여
나의 멘토 황정길 목사님(광명의 서울 반석교회)이 은퇴 후 머무시는 여수에 가서
신간 <하나님 나라와 사도행전>과 <김북경> 목사님에 관한 책을전해 드렸다.
이 순간에 나에게는 큰 기쁨이다.
스승에게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요?' 하고
숙제 검사 받는 느낌이랄까...
한국 교회 상황을 보니
올해는 이런저런 연구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조언해주신 거 마음에 새긴다.
여든이 넘으셨는데, 오래오래 숙제 검사를 주셨으면 좋겠다.

손양원 목사님과 함께 약 200여명이 순교한 자리(여수새중앙교회)를 지나 선교부원들이 기다리는 애양원교회로 갔다.


이미 기념관을 다 둘러본 후였다.
오랜만에 온 기념관은 더 잘 단장되어 있었다.

거기서 800여미터 걸어서 내려가면
손양원 목사님 기념관이 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너무 유명한 분이다.
하지만 애양원교회 전임 '정종원' 목사로 부터 손양원 목사님의 유족들과의 갈등 이야기를 자세히 들은 터라
흔쾌하지 않은 마음으로 찾아갔다.

역시나 유복자로 태어난 손동길 목사가
우리를 금방 알아보고 맞이했다.
먼저 교단을 확인하더라.


"통합"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WCC를 지지하는 통합교단이 기념관을 망쳤고
기념관이 사실 아닌 것을 안내하고 있고
천주교 십자가를 여기저기에 많이 장식해두었다고 비난한다.
손양원 목사는 고려파 목사인데
통합측이 망친다는 것이다.

듣기에 가장 참기 힘든 대목은
손목사님이 용서하여 양자로 들인 안재선씨와
두 아들이 죽은 후 실질적인 양자 노릇을 한 자기 형 손동장씨에 대해 몹쓸 말을 할 때였다.
"아무리 그래도 형님들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셔야 되겠습니까?"라고 했더니 "예수 안 믿고 지옥 간 사람들이라 괜찮습니다"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자기 유튜브와 후원계좌가 적힌 유인물을 나눠준다.

손목사님과 두 아들의 무덤에 갔더니
손동길 씨가 만든 아직도 철제문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랑의 원자탄인데
아들은 증오와 분열의 원자탄이더라.
신앙이 한 세대도 못 이어진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돈' 때문이라니
사탄이 얼마나 통쾌하게 웃고 있을까 싶다.

다른 한편으로 아버지 손양원 목사는
48년에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 씨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는데

그는 50년 9월 28일에 순교하신다.
그 순교 때문에 그의 삶 전체가
기념의 대상이 된 것이 씁쓸했다.

그는 신앙이 탁월하여 안재선씨를 용서했는데
과연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어떠했을까?
그렇게 용서하고 2년만에 그가 순교한 후
안재선씨는 남은 가족들과 함께 살았을 것인데
그들은 과연 두 아들을 죽인, 그리고 오빠와 형을 죽인 그를
진정 가족으로 받아들였을까?
안재선씨가 결국 비참하게 살다가 죽은 것을 볼 때,
그리고 손목사님의 딸 동연과 동길이
그 안재선을 증오하는 듯한 말을 연신 쏟아내고
실질적인 장남 동장은 신앙 없이
그저 점치는 사람으로 살다 죽은 것을 보면,
아버지의 신앙의 유산을
남은 가족들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같고
어쩌면 끔찍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목사 아버지의 신앙 때문에 아내와 자식들이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하고 상처만 커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손양원 목사의 순교가 그의 삶 전체를 순교자의 삶으로 만들었듯이
윤동주의 시가 그 젊은 유학생 청년 윤동주를 시인으로 만들어주었다.
그것은 정병욱이라는 그가 사랑했던 연희전문 후배 덕분이었다.
그의 호는 '백영', 흰 그림자이다.
윤동주의 시에서 따온 호다.

윤동주만큼 정병욱도
선배 동주를 사랑했다.
그의 시원고 3묶음 중 하나를
그에게 맡길 정도로 둘은 각별했다.

정병욱이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어머니께 각별히 부탁한 이 원고를
어머니가 어디에 어떻게 숨겼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보았다.



국문학계의 귀한 어른,
한국의 판소리를 맨 처음 이론적으로 정립하신 분,
한창기 선생과 함께 판소리 무료 공연을 진행하신 분,
상을 받으면 그 상금으로 윤동주를 기리신 분,
윤동주 연구에 매진하신 분,
그러면서 한사코 자신을 감추신 분,
그가 바로 백영 정병욱이다.

그가 자란 곳, 광양의 망덕 포구에
그의 부모가 운영한 양조장이 있었고,
어머니는 그곳 바닥을 뜯어 항아리를 넣고
그 속에 원고를 보관하였다.
다행이 아들이 학병에서 돌아와 그 원고는 빛을 보았고,
우리 손에까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오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한 시인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의 동생 정덕희는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와 결혼한다.



간도의 신앙인 윤동주,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한 사람은 시로, 다른 한 사람은 삶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윤동주를 세상에 내놓은 정병욱과
손양원을 안내하는 그의 유족들의 행보가 너무 대조되었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소명의 선교부는 같이 얘기를 나누었다.
예수를 전한다고 하는 우리 때문에
그 예수님의 이름이 훼손되지 않는지 돌아보고,
정병욱 선생님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분을 드러내는 인생이 되자고 했다.
시인을 닮은 정병욱의 삶이 시인을 더욱 빛내주었듯이.
손목사님을 닮지 않은 그의 후손들의 행태가
손목사님의 사랑을 욕되게 하고 있듯이,
우리도 우리가 믿는 예수를 닮은 삶으로
그분을 드러내자고 했다.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