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성 통일 전망대에서 다시 홀(Hall) 가족을 만나다.

추석 연휴 첫날 동해안을 타고 올라갔다.
우리가 갈 수 있는 곳 마지막,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러 저 멀리 낙타등 처럼 보이는 북쪽 고성 해금강을 건너다 보았다. 비 개인 후 맑은 시야가 뚜렷하게 경계를 넘어가서 더 속상하고 애통했다.
북쪽에 있을 때 해금강에서 남쪽 고성 통일 전망대를 애절하게 바라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나는 어느새 남쪽에 서서 북쪽을 그리워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김일성/이승만 별장이 있어서
역사 탐방을 하려고 들렸는데, 이전에 못보던 새로 생긴 '화진포 셔우드 홀 문화공간'이 눈에 띄여 먼저 들어갔다.
깔끔하고 세련된 전시실에 월리엄 홀과 로제타 홀 부부에서 시작된 홀 일가를 타고 내려오는 조선의 근현대사가 소복히 촘촘히 담겨 있었다. 너무나 소중한 사료들을 모아 놓아서 놀랐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출신의 윌리엄 홀-셔우드 홀-프랭크 홀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조선 사랑이 북방한계선 이 지점에 왜 놓여있는가? 우리는 오늘 왜 다시 셔우드 홀을 다시 만나야 하는가?
윌리엄 홀이 청일 전쟁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다가 2년만에 병사한 이후, 그의 아내 로제타 홀이 어린 아들과 뱃속의 유복자를 데리고 떠났다가 다시 평양으로 돌아와 기홀병원을 세우고 보구회관에서 여성의료를 시작하고 지금의 이화대학 부속병원, 고려대학 부속병원의 기초를 다지고, 맹인들을 위한 점자를 만들고, 장애인사역을 시작했던 그 많은 영향력 아래 우리나라가 이렇듯 선진의료 문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들 셔우드 홀이 자기 누이동생이 세살의 나이에 조선의 차가운 무덤에 묻히는 것을 보고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다시 토론토 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망해버린 나라 조선으로 돌아와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어 결핵 왕국이었던 우리 나라에 결핵이라는 무서운 병을 퇴치시킨 그 삶의 희생 가운데 우리가 이렇듯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직 결핵 환자가 넘치는 우리의 반쪽 북쪽을 향한 셔우드 홀의 '조선 사랑'이 이곳 북방한계선에 멈추어 우리에게 그 남은 사명을 넘겨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선교사 정진호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