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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 박철 - 사람은 누구나 떠나간다. 떠나감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남은 이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남기고 가

ree610 2025. 9. 28. 15:39

끝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 박철 -

사람은 누구나 떠나간다.
떠나감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남은 이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남기고 가는 길,
다른 하나는 고요히,
그러나 빛을 남기고 가는 길이다.

신경하 목사님은 유언을 남기셨다.
“빈소를 차리지 마라.
조의금을 받지 마라.
예배는 아현교회에서 단 한 번만 드려라.
그리고 오시는 분들께는 정성껏 식사로 대접하라.”

떠남의 자리에
남김없는 단순함,
욕심을 지운 맑음,
남은 이들을 배려하는 따스함이 있었다.

그분의 유언은
죽음의 문턱에서조차
타인을 향한 배려였고,
삶의 끝자락마저
하나의 설교였다.

장례식장이 화려한 장식으로 덮이지 않으니
그의 삶 자체가 곧 장식이 되었고,
조의금의 무게가 사라지니
사람들의 마음이 곧 헌금이 되었다.
많은 예배 대신 한 번의 예배,
그러나 그 한 번이 깊고 충만한 울림이 되어
모인 이들의 가슴에 평생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분의 마지막 잔치는
애도의 자리가 아니라
사랑의 밥상을 나누는 자리였다.
떠나는 이를 기억하는 방식이
눈물이 아니라 나눔이었으니,
사람들은 밥 한 숟가락에 위로를 얻고,
음식의 따뜻한 김에
그의 가르침을 다시 떠올렸다.

우리는 보았다.
감리교의 큰 어른,
수많은 제자들의 좋은 스승이
마지막까지 자신을 비우며
하늘의 품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끝이지만,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이지만,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분은 몸은 흙으로 돌아갔으되
그 뜻과 가르침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았다.

사람들은 그의 생애를 떠올리며 말한다.
끝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그는 죽음조차 설교로 바꾸었다.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
섬김과 사랑을 가르쳤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한 편의 장엄한 시를.

아름다운 끝은
우연이 아니다.
한평생 살아온 길의 결실이고,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는 향기다.

그리하여
끝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죽음 너머에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남는다.
빛이 꺼진 뒤에도
그 빛에 물든 마음이 꺼지지 않듯이.


* 시 노트 : 신경하 목사님의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슬픔의 자리였지만, 제 마음은 오히려 따뜻하고 흐뭇했습니다. 많은 장례식을 경험했지만, 이렇게 고인의 삶을 온전히 닮은 장례식은 드물었습니다.
조용하면서도 은혜와 감사가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예배와 기도, 그리고 함께한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 되어 목사님의 삶을 증언하는 듯했습니다.

독일 속담에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Ende gut, alles gut)”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경하 목사님은 바로 이 말씀을 온몸으로 살아내신 분이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한국 교회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으셨고, 노년에는 더욱 맑고 단단한 신앙의 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제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허전함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깊은 감사와 감동도 자리합니다. 목사님을 떠나보내며, 우리는 더 큰 믿음의 길을 걸을 용기를 얻습니다.
이 졸시를 유족과 신경하 목사님을 그리워하는 모든 분들께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