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비위 사건을 마주하며: 흑백논리, 그 위험성과 파괴성.
1.
최근 어느 진보 정당에서 나온 성 비위 사건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들썩인다. 내 페북에는 이 문제에 대한 상이한 해석과 입장으로 서로 차마 옮기기 어려운 비방으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양극의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거시적으로는 이 정당의 정신과 방향을 지지하고 있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특정사안에 대한 입장과 판단이 상이하다는 것을 계기로 갈등 상황을 양극화하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비난/비방’과 ‘비판’은 출발점, 함의, 그리고 도달 지점에서 다르다.
2.
나는 그동안 학생으로, 선생으로, 강연자로, 또는 회의 참석자로 세계 곳곳을 다녀보았다. 그리고 여러 단체들에 회원으로 또는 회장/부회장 등 핵심 지도부에서 활동해왔다. 그러면서 그 사회나 집단의 ‘성숙성과 민주성,’ 또는 ‘미성숙성과 비민주성’을 판단하는 나만의 주관적인 기준들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 기준들 중 하나는 구성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한 서로의 입장과 판단의 ‘상이성’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다. 나와의 입장과 판단의 상이성을 무조건 ‘틀린 것’이나 더 나아가서 ‘나쁜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전형적인 흑백논리의 파괴적 기능이다.
3.
미성숙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특징은 ‘근본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흑백논리’를 작동시킨다는 점이다. 특정한 문제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나 입장과 다르면, 거시적 맥락에서 하나의 목적 (예를 들어서 젠더 평등, 정의 구현 사회, 민주사회 등)을 바라보며 모인 이들이, 흑백논리를 작동시키면서 나와의 ‘다름’을 전적으로 ‘틀림’으로 규정하고 서로를 ‘악마화’하고 심판한다. ‘사회정치적 근본주의’의 태도가 한국사회 전역을 미성숙의 덫 속으로 몰아넣는 것 같다. 모든 종류의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근본주의 등) 비판적 사유를 통한 상이성에 대한 개방을 근원적으로 차단한다. ‘나의 해석’은 절대적이며 그것과 ‘상이한 해석’은 모두 틀리고 나쁜 것으로 치부한다는 점에서 성숙한 민주주의의 근원적인 장애가 된다.
4.
성숙한 집단이나 사회 구성원이 모인 곳의 공통적 특징이 있다. ‘상이성’이 부각되었을 때, 지난한 인내심을 작동시킨다는 점이다. 감정에 휩쓸리며 격노하든가 심판적 태도를 의도적으로 지양해야 하기에 ‘성숙한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다. 서로가 ‘왜’ 그렇게 생각하며, 그것의 구체적인 근거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대한 입장을 교환한다.
5.
마치 두 팀이 탁구를 치며 공을 주고받는 것처럼, 상대방의 상이한 입장에 대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경청하면서 서로의 상이성을 넘어서서 교합점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탁구를 칠 때 공이 자기에게 오기를 기다렸다가 쳐야 하듯, 서로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시간을 보호하면서 상이성을 좁혀가고, 궁극적으로 공동의 협의점으로 도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성급하게 ‘목소리 큰 사람’이 주장하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매우 파괴적 기능을 한다.
6.
나는 학기 초에 나의 과목을 택한 학생들에게 반드시 묻는 질문이 있다. 모두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읽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X를 읽었다’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다음과 같은 근원적 질문에 관한 생각을 ‘함께-따로따로’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① 성 비위 사건이 드러났을 때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그 사건이 처리되었어야 하는가
② ‘진심어린 사과’란 누구로부터, 누구에게,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③ 사과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누구의 관점에서 그 ‘진정성’이 규정되는가
④ 이후로 ‘무엇’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러한 무엇 (what), 어떻게(how), 누가 (who), 누구에게 (whom) 등의 복합적 측면을 성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 사회든 공동체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성숙의 계기를 가지게 된다.
7.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각자가 언제나 상기해야 하는 것이 있다. ‘나’와 ‘너’가 한 인간으로 언제나 가지고 있는 ‘인식론적 한계성 (finiteness)’과 ‘인식의 사각지대’다. 지구에 거하는 그 누구도 ‘모든 것’의 전체 그림을 온전히 이해하고 판단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이는 없다. 그렇기에 나의 입장이나 판단과 상이하면, 모두 ‘틀린 것’으로 치부하고 정죄하는 흑백논리를 작동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파괴적이다.
8.
보다 나은 사회를 창출하고자 하는 민주적 목적을 이루고자 모인 이들은 거시적 정황과 미시적 정황 사이에서 지속적인 비판적 성찰을 해야 한다. 각자의 판단과 입장 간의 ‘상이성’ 사이를, 인내심을 가지고 경청하면서, 이해와 인지의 지평을 확장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정 개별인에 대한 전적 ‘이상화’나 반대로 전적 ‘악마화’는 자신은 물론 타자의 인간됨을 파괴하는 매우 위험한 흑백논리의 덫이다.
9.
현대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혁명가’가 일으키는 ‘혁명’은 불가능하다. 서로의 상이한 입장에 대한 개방성과 경청, 그리고 각자의 인식의 한계성에 대한 비판적 인지를 하면서 학습하고 대화하는 것—성숙한 구성원의 기본 자세일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그 어떤 변혁 운동을 위해 모인 이들은 이러한 입장과 판단의 상이성을 무수하게 경험하면서 서로 배우고, 수정하고, 합의하면서 그 운동이 지속되어 변화를 일구어왔다. 인간이 모인 곳이면 그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상이성’ 자체가 아니라, 그 상이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태도에 달려있다.
10.
성숙한 리더십 (leadership)은 성숙한 팔로우어십 (followership)과 분리불가의 관계다. 최근 불거진 성 비위 사건의 중심에 있는 정당이 이번 기회를 통해서 더욱 성숙하게 되기를 바란다. 사안의 복합성을 인지하면서, 서로의 입장과 관점의 상이성에 대하여 지난한 인내심을 작동시키면서, 지도부-구성원들은 개방적 경청과 성찰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예리한 지적처럼, 희망적인 공동체는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이 복합적인 세계에 등장하는 문제들을 계속 '학습'하면서, '상이성'에 대한 개방성과 동시에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비판적 관점을 기르는 것--새로운 희망의 토대인 것이다.
- 강남순 교수의 페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