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읽는 '김규나가 만난 사람- 전유성' 편
노트북 닫으려는데 전유성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 보이네요. 다음은 농심사보 2012년 8월호에 실었던 글입니다.

뻔한 것은 가라!
다르게 보면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디오게네스, 개그맨 전유성
달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머리를 싸매고 온종일 생각한다고 해도 스무 가지 이상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달걀 하나로 2,367가지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오래 전 잡지에서 본 기사이니 지금은 그 활용 개수가 더 늘었을지 모른다.
“대학 안 가고도 성공한 사람들이 많어. 이순신 장군, 최영 장군 훌륭하잖아. 세종대왕은 중학교도 안가고 한글을 만들었어.” 한 코미디 프로에서 던진 그의 대사는 한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화두가 되었다. “그냥 놀러왔습니다.” 처음 찾아와 머리 긁적이는 후배에게 “그럼 놀아라.” 하고는 만화책을 계속 읽는 사람, 결혼을 허락받으러 온 예비사위에게 “내가 반대하면 결혼 안할 건가?” 묻고는 아니라는 대답에 “그럼 뭐 하러 왔냐?”고 반문하는 사람.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일요일 밤 온 국민을 텔레비전 앞에 붙잡아 놓는 「개그콘서트」의 최초 연출자이기도 한 그에겐 개그계의 대부, 살아있는 전설, 아이디어 뱅크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중에서도 그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연예계의 디오게네스’일 것이다. 소원을 말해보라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일광욕 중이니 햇빛이나 가리지 말아 달라’고 시큰둥하게 말할 수 있는 한 사람. 긴 가뭄 끝에 온종일 비가 내리던 날, 우리 시대의 디오게네스 전유성, 그를 만나러 경상북도 청도를 찾았다.
-저 사람은 뭔가 다른데? 누구지?
“제기차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다방구도 한 번 안했어. 책만 읽었어. 지금도 테니스, 볼링, 골프, 심지어 운전도 안 해. 관심도 없고. 난 그냥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탤런트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어. 노래도 못하고. 그래서 개그맨이 됐어.”
오후 2시, 전국에서 찾아온 관객들이 모두 극장으로 들어간 뒤 작고 소박한 관객 대기실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황현희. 신봉선, 안상태 등을 배출한 개그맨의 사관학교라 불리는 철가방코미디극장, 2011년 5월에 개관해서 인터넷 예매율 45주 연속 1위, 1년간 누적 관객 수 3만 명이 찾은 극장이지만, 명성에 걸맞게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근사한 사무실이 없다. 전유성,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대학교 때 연출을 전공했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감독 밀로스 포먼이 ‘감독이란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찾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내가 그 일을 잘 하는 거 같았어. 내가 (임)하룡이나 (최)양락이를 좀 받쳐주면 그들이 뜨겠구나, 그런 게 보였던 거지.”
그는 스스로 ‘분수를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동료를 띄워줄 아이디어를 내고 개그 대본을 쓰면서 그는 아무도 욕심내지 않지만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어디서나 필요한 역할을 자원했다. 그 결과 경쟁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바쁘게 방송 3사를 뛰어다녔다. 그는 화면 귀퉁이에 구부정하게 서서 대사 한 마디 하지 않아도 빛이 났다. 거의 웃기지 않는 개그맨,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알아보았다. ‘저 사람은 뭔가 다른데? 누구지?’ 궁금해 했고 그가 한마디 툭 터뜨려주길 기대했다.
-주인공은 없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을 뿐
“영화와 달리 연극에선 주인공이 없어. 역할이 있을 뿐이지. 대사가 없어도 연습시간에 나와서 다 같이 호흡을 맞춰야 해. 개그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어. 아이디어와 연기 모두 뛰어난 최양락 같은 배우, 아이디어보다는 연기를 잘하는 임하룡 같은 배우. 그리고 아이디어는 있는데 연기를 못하는 나 같은 사람. 개그는 앙상블이야. 모두가 주인공이면 사람들이 웃을 거 같아? 안 웃어. 유상무가 있어야 장동민이 사는 거야.”
그는 무대 뒤쪽에 서서 둥둥 줄을 튕기며 리듬의 균형을 맞추는 베이스 기타에 자신을 비유했다. 모두가 리드 기타리스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 일을 평생 할 거냐, 말거냐?’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철가방코미디극장을 찾아오는 개그 지망생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는 입단 오디션을 보지 않는다.
“재능을 한 번에 본다는 건 말이 안 돼. 나는 지 스스로 물러나기 전까지는 관두라 소리 안 해. 연기가 뒤떨어져도 성실하면, 연기 잘하면서 불성실한 놈보다 뽑힐 확률이 더 많아. 이 바닥은 금방 소문나. 성실하게 있으면 스태프나 연기자 누구한테라도 같이 하자는 이야기가 틀림없이 나와.”
많은 후배들은 자신의 열정을 믿고 깨우고 이끌어주는 그를 정신적 멘토로 생각한다. 그에게도 가슴을 가득 채운 사람이 있다. 당대 최고의 인기 코미디언 ‘후라이보이’ 곽규석은 지금도 변함없이 그의 선배이자 멘토이며 스승이다.
“내가 쓴 대본만 보고 처음 본 내게 100만원을 맡겼어. 당시 40평짜리 일본식 집이 40만원 할 때니까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지. 한 번도 출납 장부를 조사한 적 없어. 그런 선생님이 찻집에서 절대로 차 안 마셨어. 밥값보다 비싸잖아. 시간나면 걸어 다녀. 자가용 기사는 매일 놀아. 그런데도 연예인 기사 중 월급이 제일 많다고 그 사람이 자랑하고 다녔지. 나도 찻집에서 약속 안 해. 장부 맡은 애한테 얼마 썼냐고 안 물어봐. 나도 모르게 그 분을 닮아가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
- 하나뿐이면 무조건 일등인 게 당연하잖아
그는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 한꺼번에 돈을 몽땅 가져다줄 것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세 번, 정말 큰돈을 벌었다. 그때마다 지인들 빚보증으로 모두 날렸다.
“벌어도 개털, 못 벌어도 개털이라면 안 벌고 개털로 사는 게 속편하겠다 싶었어. 여기 와서 1년 동안 정말 하루도 안 빼고 낮술을 마셨어. 하루는 마을 회의 한다고 나오라는 거야. 여기가 수몰되고 새로 생긴 마을인데 뭘 하면 좋겠냐고 물어서 공연장 하나 만들면 좋겠다, 그랬지. 손님이 오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어. 그런데 생각해봐. 내가 심형래나 서세원만큼 못 웃겼잖아. 그런데도 시골로 여행을 다니다 보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줘. 그들에게 물으면 코미디 다 좋아한대. 코미디 좋아하는 사람들이 농어촌에 숱하게 많은 거야. 그러니 농촌에 차려야지. 왜 도시에 가서 경쟁을 해? 하나 뿐이 없으면 무조건 일등인 건 당연하잖아.”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의 틈새를 알아챈다. 범부들이 지키는 질서와 기존의 규범을 가뿐하게 넘어서고, 일반적 상식을 뒤집고 비틀고 전복시킨다. 그럼으로써 새롭고 기발하고 재미있는 것들을 창출해낸다.
“하루 매상이 10만원인 스파게티 집이 있었어. 고등어 스파게티를 만들어보자고 했지. 그런데 비리지 않을까요? 대뜸 그러는 거야. 해보지도 않고 비린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게 실천이야. 해보니까 안 비려. 하루 매상이 20만원으로 올랐어.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 하는 식당 출입문에다가 큰 글씨로 ‘화학조미료 출입금지’라고 썼어.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들어와. 전문 컨설턴트들은 간판 바꾸고 조명 바꾸라고 해. 그런 조언은 누가 못해. 돈 들이지 말고 생각을 바꿔서 오게 해야지. 비싼 줄 알면서 나이트클럽에 가는 건 재미있어서지 과일안주를 많이 줘서가 아니잖아.”
그가 농심가족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했다. “로버트 할리 끝나고 양락이랑 후루룩 국수 광고했는데 왜 연장 안 해줘?” 그가 버럭, 말하고는 웃었다. 1975년에 농심은 회충약, 모기약, 무좀약 등에만 출연하던 코미디언을 식품 광고에 최초로 기용하는 모험을 단행했다. 당시 최고의 지명도를 가진 곽규석과 구봉서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란 카피는 적중했고 소비자에게 가까워짐으로써 라면업계의 선두가 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재미난 라면을 만들어주면 좋겠어. 라면에 단무지를 넣으면 어떨까. 물에 불리면 먹을 수 있는 단무지 한두 조각 들어가면 차별화 되지 않나?”
- 넌 10년 후에 뭐가 되어 있을 거 같니?
인터뷰를 끝내고 30분쯤 공연을 보았다. ‘공연 중 절대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단단히 붙은 문을 그가 열어준 덕분이었다. 빈자리 하나 없는 객석의 추임새와 웃음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가야할 길이 멀기에 무대 뒤에 꼭꼭 감추어두었을 땀과 눈물이 그들이 오르려고 하는 꿈을 눈부시게 했다. 웃음이 긍정을 만들고 긍정은 세상을 바꾼다. 뜨거운 열망이 창조한 웃음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딸한테 회사원에게 시집가지 말라고 했었어. 자유직이어야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그래야 인생을 다채롭게, 다양하게 살거든. 그런데 회사원하고 결혼했어. 내가 사위한테 10년 후에 뭐가 되어 있을 거 같니? 물었어. 뭐가 되겠어? 같은 사무실에 10년 더 다닌 사람처럼 되겠지. 회사원 평생 할 거냐고 했더니 평생 하기 싫대. 그러면 빨리 그만둬라 했지, 그랬더니 다음날로 사표 썼어. 지금 지리산 가서 찻집 해. 장사 드럽게 안 돼. 뭘 어떻게 해? 차차 되겠지.”
참 대책 없는 아버지, 대책 없는 장인이다. 그런데도 청도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 그의 말이 자꾸 가슴 언저리를 맴돌았다. 인도를 정복하러 떠나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영토를 넓히고 큰 나라로 만들고 나면 다음엔 뭘 하겠냐고 디오게네스가 물었다. ‘그러고 나면 좀 쉬어야겠소.’ 대왕이 대답하자 디오게네스가 큰소리로 웃었다. “지금 쉬지 않으면 평생 쉬지 못할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대 제국을 건설한 왕으로 이름은 남았으나 결국 전쟁만 하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가뭄이 끝났다. 대지는 하루하루 무성해질 것이다. 인생의 나침반이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 흔들린다. 우선 달걀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생각해봐야겠다. 그런데 몇 개라고 했더라?
농심사보 2012. 8월호
취재, 글 김규나
책임취재 농심홍보팀 / 사진 이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