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 1:21~31 정화의 용광로, 회복의 은혜.
찬송가 274장 나 행한 것 죄 뿐이니
Ⅴ. 멸망의 경고와 개혁의 약속 (사 1:21-31)
(1) 선지자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한 타락을 슬프게 탄식한다.
왕의 성읍인 예루살렘은 신실한 곳이었다. 즉 하나님에게와, 사람들 중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권익에 충실하였고, 유다의 공익에도 충실하였다.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공의가 정당하게 집행되었다. 우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더니. 아름답고 정숙한 배우자가 이제는 간음한 여인이 되었다. 이제는 공의가 예루살렘에 더 이상 거하지 않고 살인자들이 거기서 버젓이 살았다 방백들 자신이 아주 잔인하고 심한 압제를 하였으므로 살인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예루살렘의 부패가 구체적으로 설명된다(22절).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관원들의 이러한 부패는 조화가 변조되거나 은이 찌끼로 바뀌는 것만큼이나 그 나라에 치욕과 손해가 된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고. 그래서 맛이 없고 시큼하게 되었다. 찌끼도 은처럼 빛날 수 있고 물이 섞인 포도주도 그 빛깔은 간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전혀 가치가 없다. 이렇게 그들도 덕과 공의의 모양은 갖추고 있었지만 참된 의미의 덕과 공의는 전혀 간직하고 있지 않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충성하고 율법에 복종하게 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반역을 하여 하나님과 그의 율법을 무시한다. 도적을 막아야 할 자들이 오히려 도적과 짝한다. 그들은 도적을 보호해주고 부정한 소득을 함께 나눈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득을 보려고만 마음먹는다. 즉 그 일이 옳든지 그르든지 상관없이 자기들의 지위를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그들은 손해당한 자들을 보호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였다. 즉 고아들을 보호하는 데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난한 과부가 송사를 가져올 때 뇌물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은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한다.
(2) 이러한 슬픔의 원인들을 시정하려는 결심이 세워진다(24절).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말한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으신 분께서)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하나님께서는 이 짐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할 때와 방법을 찾아내실 것이다. 만일 신앙을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4절)이신 그분의 형상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전능자이신 그분의 손의 압박을 맛보게 돌 것이다. 비록 교회 안에 많은 찌끼가 있을지라도 교회는 버려지지 않고 정련된 것이다(25절). 내가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악은 억압될 것이고 압제자는 해를 끼칠 권세를 빼앗길 것이라." 한 민족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 고유의 일이다.
내가 나의 손을 네게 돌리리라. "내가 처음에 신앙을 심기 위해서 했던 그 일을, 이제는 신앙을 되살리기 위해서 행하리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한 행정관들과 사역자들을 보내심으로써 그 일을 행하신다(26절).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하여 행악자들에 대해 법을 시행하게 하고 공무를 처리하게 하리라."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공의의 원칙들을 심으시고 그 원칙들에 의해 그들의 생활을 다스리심으로써 그 일을 행하신다(27절). 외부적인 억압을 받을 때에도 사람들은 많은 것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의 감화로써 그 일을 효과적으로 행하실 것이다.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은 모두가 개심하게 될 것이고 그 개심으로 인해 구속될 것이다.
"그 `귀정한 자` 혹은 `돌아오는 자`(어떤 역본에는 이같이 되어 있다)는 의로 구속되리라." 사람들의 덕이 되살아날 때 그들의 명예도 회복된다.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고침 받기를 싫어하는 자들은 징벌만 받는 것이 아니라 멸망하게 될 것이다. 신앙심이라고는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내어 비린 노골적인 신성 모독자나, 신앙 고백이라는 가면을 쓰고서 악한 생활을 하는 위선자나 다같이 멸망할 것이다. 이전에는 여호와와 연합해 있었으나 이제 `여호와를 버린 자도,` 수로가 샘에서 끊어지면 그 속에 흐르던 물이 이내 끊어지듯이 곧 `멸망할 것이다.` 그들의 우상, 즉 `그들이 기뻐하던 상수리나무와 그들이 택한 동상도` 그들을 돕지 못할 것이다. 즉 그들이 숲 속의 푸른 나무 아래서 예배하였고, 그것 때문에 참된 하나님을 버렸으며, 집안에서 은밀히 예배하던 우상들이 그들을 돕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죄인들의 행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로 인해 수치를 당할 것이다(29절). 그러면서도 그들은 뉘우치는 빛을 보이지 않고 다만 절망하는 빛만 보일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으로 인하여도 수치를 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우상들 자체도 `사로잡혀 갈` 것이기 때문이다(참조. 46:1,2)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보 무엇인가?
이사야 1:22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 희석된 신앙
* 이사야 당시의 부패 상황(1:22, 23)
은이나 포도주 등에 혼합물이 섞이며, 방백들은 뇌물을 구하고 불쌍한 자들의 억울함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무엇보다도 공평해야 할 백성들의 관원이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치부하는 악습은 오늘날에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불의를 행치 않고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마5:13-16).
주님! 소금이 그 맛을 잃지않게 하시고 말씀의 빛이 내게 비취어 어둠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게 하옵소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