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유의 소유: “하나님은 나의 기업”
* 말씀: 여호수아 13장 14, 33절
우리는 소유로 자신을 설명하는 시대를 산다. 어느 집에 사는지, 무엇을 타는지, 얼마나 모았는지가 사람의 가치를 대신 말한다. 소유는 필요한 삶의 수단을 넘어 어느새 신분증이 되었다. 그래서 가진 것이 줄어들면 존재까지 작아진 듯 불안해한다.
여호수아 13장은 땅을 나누는 이야기다. 지파마다 자기 기업을 받는다. 그런데 레위 지파만은 땅의 기업을 받지 않는다. 14절은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라고 하고, 33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라고 말씀한다.
14절이 레위인의 ‘생활 방식’에 대한 언급이라면, 33절은 그들의 ‘존재 방식’에 대한 선언이다.
1. 소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소유했다
14절의 “화제물”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 예물을 가리킨다. 레위인은 토지를 경작하여 생계를 얻는 대신 성막을 섬겼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과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통해 공급받았다.
그러므로 레위인의 무소유는 삶의 부정이 아니라 소명의 재배치다. 그들도 일용할 양식이 필요했다. 다만 삶의 토대를 자기 땅의 생산력에 두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과 공동체의 예배에 연결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소유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소유물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 곧 “확장된 자아”로 여긴다. 내가 가진 것이 곧 “나”라고 믿는다. 레위인은 그 논리를 거스르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었다. 무소유의 핵심은 빈손이 아니다. 내 손에 있는 것이 내 존재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2. 제물을 넘어 하나님 자신을 소유하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33절)
'기업'은 상속받은 몫이다. 레위인의 진짜 몫은 제물이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넘어,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몫이 되셨다.
인류의 지혜 전통도 소유와 욕망의 위험을 깊이 성찰했다. 불교는 끝없는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쳤다. 스토아 철학은 부와 건강 같은 외적 조건에 행복을 맡기지 않는 내적 자유를 추구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 속함으로 얻는 자유를 말한다. 그 자유는 무의존이 아니라, 의존의 대상이 바뀌는 데 있다. 땅을 의지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한다. 소유에 기대던 사람이 하나님께 기대어 산다.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자족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시기에 나는 족하다“는 신뢰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무소유는 공허가 아니라 충만이다. 자기 충족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충족함이다.
3.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내어 주신 분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가난은 세상을 버린 은둔자의 가난이 아니었다. 자신을 내어 주기 위한 사랑의 가난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이"(고후 8:9)라고 고백한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붙들지 않고 자신을 내어 주셨다. 그분의 비움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자기 증여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표상은 '재산 없는 사람'이 아니다. 가졌으나 붙들리지 않고, 소유하였으나 나누며, 사용하되 섬기는 사람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그렇다면 “무소유의 소유”는 시장 경제 시대에도 가능한가? 오히려 더욱 필요하다.
성경은 모든 사유 재산을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유의 절대화를 거부한다. 내가 가진 것을 "내 것"이라는 마지막 말로 닫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으로 받아들인다. 소유자(Ownership)에서 청지기 (Stewardship)로의 전환이다.
돈을 벌 수 있다. 집을 가질 수 있다. 기업을 경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소유한 것이 나를 소유하기 시작할 때, 소유는 우상이 된다.
무소유의 절정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부요해지고 그 부요함으로 자신을 나누는 것이다.
“아,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들의 복이여!”
**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가진 것으로 나를 증명하지 않게 하소서.
성공과 업적이 내 가치를 결정하지 못하게 하소서.
주신 것을 감사히 누리고 기꺼이 나누게 하소서.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 살게 하소서.
주님의 선물보다 주님 자신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기업임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