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넘치는 요단에 발을 담그다”: 믿음의 첫걸음
* 말씀: 여호수아 3장 15절
홍해 사건과 요단강 사건은 서로 닮았지만 다르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은 애굽 군대에 쫓기고 있었다. 뒤에는 바로의 병거가 있었고, 앞에는 바다가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다를 가르셨다. 홍해는 노예 된 과거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요단강 앞에서 이스라엘은 쫓기는 백성이 아니었다. 이제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백성이었다. 홍해가 "탈출의 은혜"였다면, 요단은 "진입의 순종"이었다. 홍해는 하나님께서 먼저 물을 여시고 백성이 건넜다. 그러나 요단은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길 때 강물이 멈추었다.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수 3:15)
* “곡식 거두는 시기”란 봄철 보리 추수기다. 3월 말-4월 중순 무렵 겨울 비와 눈 녹은 물이 요단 계곡으로 흘러드는 시기다.
1. 물이 넘칠 때 부르시는 하나님
여호수아 3장 15절은 요단강의 상태를 일부러 기록한다. "곡식 거두는 시기에" 요단은 물이 불어나 언덕에 넘쳤다. 건너기 좋은 때가 아니었다. 조금 더 기다리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때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때 이스라엘을 부르셨다.
신앙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성경은 강물이 넘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현실보다 더 큰 현실을 보게 한다. 물은 넘쳤지만, 하나님의 약속보다 넘치지는 못했다. 강은 깊었지만, 하나님의 임재보다 깊지는 못했다.
2. 구원받은 백성은 기다림에서 순종으로 자란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이 들은 말씀은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14)는 것이었다. 그때 백성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친히 바다를 여셨고, 이스라엘은 열린 길을 걸었다. 그것은 전적인 은혜였다.
그러나 요단 앞에서 그들이 들은 부르심은 달랐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물가로 나아가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약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은혜가 백성 안에서 순종의 능력으로 자라났다는 뜻이다.
3. 발이 물에 잠길 때 길이 열린다
요단강을 건넌 중심에는 언약궤가 있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의 표지다. 백성은 자기 확신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따라갔다.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겼다. 길이 보여서 걸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걸었다. 믿음은 강물이 멈춘 뒤의 안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는 약속 위에 서는 용기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앞서 가장 깊은 강으로 들어가셨다. 죄와 죽음의 물결을 피하지 않으셨다. 십자가에서 죽음의 강을 건너셨고, 부활로 새 길을 여셨다. 그는 길을 설명하신 분이 아니라 친히 길이 되신 분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늘은 2026년 7월 1일, 한 해의 후반부가 시작되는 날이다.
우리 앞에도 아직 건너야 할 요단이 있다. 두려운 시작, 미루어 둔 순종, 다시 건너야 할 관계의 강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물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내가 앞서 가니, 너는 발을 담그라."
그 한 걸음에서 우리 앞에 하나님의 길은 열린다.
** 기도문
구원의 하나님,
홍해를 가르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소서.
요단 앞에서 머뭇거리는 우리 마음을 붙들어 주소서.
물이 넘칠 때에도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게 하소서.
길이 보이지 않아도 앞서 가시는 임재를 따르게 하소서.
십자가로 죽음의 강을 건너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우리의 요단에서 믿음의 첫걸음을 내딛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