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었으나, 낡지 않은 사람: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 말씀: 신명기 34장 7절
모세의 생애(120년)는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애굽 왕궁의 사십 년, 미디안 광야의 사십 년, 이스라엘을 이끌고 광야를 걸었던 사십 년이다. 그는 왕궁의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광야의 사람으로 다듬어졌고,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졌다. 그의 생애는 인간의 야망이 꺾이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세워지는 여정이었다. 그래서 모세의 마지막은 한 인간의 쇠퇴가 아니라, 사명의 완성이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
1. 흐리지 않은 눈: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본 시선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육체적 시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세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다. 그는 느보 산에 올라 가나안 땅을 눈에 담았다. 그러나 그 땅을 밟지는 못했다. 이것은 모세 생애에서 가장 아픈 대목이자 가장 거룩한 장면이다. 그는 자신이 들어가지 못할 땅을 바라보면서도, 그 땅으로 들어갈 다음 세대를 축복했다.
참된 지도자의 눈은 자기 성취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이 밟지 못할 땅, 자신이 거두지 못할 열매까지 바라본다. 모세의 눈은 미련이나 욕망으로 흐려지지 않았다.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열려 있었다. 이것이 영적 시력이다.
2. 쇠하지 않은 기력: 사명을 붙든 생명력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는 말 역시 단지 체력이 좋았다는 뜻이 아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생명의 신선함과 활력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모세는 늙었지만 낡지 않았다. 나이는 들었으나 사명은 식지 않았다. 몸은 죽음을 향해 갔지만, 영혼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곧게 서 있었다.
사람은 나이 때문에만 늙는 것이 아니다. 사명을 잃을 때, 감사가 식을 때, 배움이 멈출 때 늙고, 하나님 앞에서 떨림을 잃을 때 낡아간다. 반대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붙든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영혼이 마르지 않는다. 사명은 영혼의 근육이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며, 끝이 가까워도 여전히 누군가를 축복한다.
3.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사람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조차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5절)라고 기록한다. 그의 죽음조차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었다. 그는 실패자의 죽음을 맞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자기 생애를 맡긴 사람으로 눈을 감았다.
물론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민 20:12; 신 32:51). 그것은 그의 생애에 남은 깊은 아픔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실패자로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신 34:10)고 증언한다.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척도는 결과의 크기가 아니라, 그 자리의 신실함이다.
모세가 율법의 중보자였다면,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모세가 느보 산에서 멀리 바라본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열렸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더 깊은 눈을 얻는다. 십자가 너머 부활을 보는 눈, 실패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읽어내는 눈, 죽음 한가운데서도 생명을 바라보는 눈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늘은 백세 시대다. 길어진 수명만큼 녹슬어 가는 영혼도 많아졌다. 모세는 늙었으나 낡지 않았고, 죽음 앞에 섰으나 사명을 잃지 않았다. 103세까지 사신 방지일 목사님의 고백이 새롭게 들린다. “닳아질지언정 녹슬지 않겠다.”
눈은 약속을 향하고, 기력은 사명을 향하며, 마지막은 하나님께 맡기는 인생, 이것이 신명기 34장 7절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복된 노년, 아름다운 사명자의 길이다.
**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눈이 욕망과 두려움으로 흐려지지 않게 하소서.
나이가 들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주소서.
우리의 기력이 헛된 일에 소모되지 않게 하시고,
끝까지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우리가 다 이루지 못하는 일도 주님께 맡기며,
다음 세대를 축복하는 넉넉한 마음을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