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켜쥐지 말고, 네 손을 펴라”
* 말씀: 신명기 15장 7-8절
사람의 마음은 손에 드러난다. 사랑하면 손이 열린다. 두려워하면 손이 움켜쥔다. 신명기 15장은 7년마다 빚을 탕감하는 “면제년”을 말한다. 그리고 가난한 형제를 향해 손을 펴라고 명령한다. 이는 잊혀진 자들에게 다시 숨을 불어 넣는 하나님의 회복법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말씀이다. 탐욕은 손끝에서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은혜를 잊은 마음 깊은 곳에서 먼저 시작된다.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궁핍한 형제에게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신 15:7-8)
1. 마음이 닫히면 손도 닫힌다
신명기 15장은 손의 문제를 말하기 전에 마음의 문제를 말한다.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 사람은 먼저 마음에서 이웃을 밀어낸다. 그 다음 손을 닫는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 “내 책임은 아니야”, “저 사람도 문제가 있겠지”, “내 것도 부족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에 우리 손은 자연스럽게 움켜쥔다.
손은 몸의 기관이지만, 동시에 영혼의 언어이다. 손이 닫혀 있다는 것은 이웃을 향한 관계의 문을 닫고, 고통의 호소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움켜쥠은 탐욕의 몸짓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몸짓이다.
2. 열린 손은 출애굽을 기억하는 손이다
신명기 15장의 윤리는 기억에서 나온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신 15:15). 이스라엘은 원래 빚진 자였고, 종이었고, 해방 받은 자였다. 그러므로 가난한 형제에게 손을 펴는 것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의 기억 행위다. 손을 편다는 것은 시선을 바꾸는 일이다. 가난한 이웃을 부담이 아니라 형제로 다시 보는 일이다. 그것은 “나도 한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고백에서 시작된다.
3. “넉넉히 펴는 손”: 하나님 나라의 미리보기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의 동사는 히브리어 강조형이다. 곧 “열되 활짝 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마지못해 손가락 끝만 벌리는 도움이 아니라, 손바닥 전체를 펴는 환대를 원하신다.
신명기 15장 4절은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11절은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라고 말한다. 이 둘은 모순이 아니라 종말론적 긴장이다. 4절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요. 11절은 사회적 현실이다. 교회는 바로 그 사이를 살아가는 공동체다.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향해 손을 펴는 것이 신명기 15장의 신앙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궁극적으로 열린 손이다. 예수님은 움켜쥐지 아니하고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셨다. 병든 자를 만지신 손(마 8:3), 어린아이를 안으신 손(막 10:16),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손(요 13:5), 빵을 떼어 나누신 손(눅 22:19),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못박힌 손이다. 이는 신명기 15장 열린 손의 완성이다. 그 손에 붙들린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손을 움켜쥐고 살 수 없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세상은 받는 자가 복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고 말씀하신다. 신명기 15장의 정신이 복음 안에서 다시 밝아진다. 왜냐하면 주는 손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손이기 때문이다.
움켜쥔 손은 잠시 내 것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열린 손은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린다. 움켜쥔 손은 두려움의 고백이고, 펼친 손은 은혜의 고백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무 움켜쥐지 말고, 이제 네 손을 펴라!”
**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은혜를 잊어 움켜쥔 우리의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우리의 닫힌 눈과 닫힌 손을 열어 주소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받은 은혜를 우리 이웃에게 흘려보내게 하소서.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펼치신 주님의 손을 닮아,
오늘 우리의 손이 생명을 살리는 손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