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룩한 질투, 포기하지 않는 사랑
* 말씀: 신명기 4장 24절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이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증언한다. 이 표현은 낯설고 불편하다. 그러나 여기서 질투는 인간의 불안한 소유욕이나 병든 집착이 아니다. 그것은 우상에게 자기 백성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이다. 하나님은 우상을 태우시는 분이지만, 우상에게 묶인 인간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본문의 깊은 역설이다. 하나님의 질투는 차가운 분노가 아니라, 뜨거운 사랑이다.
“여호와 네 하나님은 삼키는 불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신 4:24)
1. 소멸하는 불
“소멸하는 불”이란 하나님이 폭력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불은 태우는 동시에 정결하게 한다. 죄를 태우는 심판의 불이면서, 동시에 새롭게 하는 정화의 불이다. 우상은 인간이 조종할 수 있는 신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부르시고, 새롭게 하시는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 앞에서 신앙은 존재 전체의 재정비라 할 수 있다. 그 불 앞에서는 거짓된 우상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2. 거룩한 질투
하나님의 질투는 언약적 사랑이 지닌 배타성이다. 참된 사랑은 무관심하지 않다. 어떤 부모가 자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침묵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거짓 우상에게 마음을 넘기는 것을 묵과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투는 억압이 아니라 회복의 열정이다.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직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버려진 관계에는 질투도 없다. 완전한 무관심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3. 포기하지 않는 사랑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스라엘 신앙은 보이는 형상을 붙드는 신앙이 아니라, 들려오는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이다. 29-31절은 고통과 환난의 자리에서도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복음의 씨앗이다.
우상은 크신 하나님을 인간의 욕망에 맞게 축소한다. 오늘 우리의 우상은 금송아지가 아닐 수 있다. 성공, 돈, 인기, 이념, 권력, 심지어 종교적 업적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우상은 늘 “나를 가지면 네가 안전해질 것”이라 속삭인다. 우상은 편안한 감옥이고, 하나님은 불편한 듯하지만 참된 자유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질투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만나는 자리다. 하나님은 죄와 우상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신다. 동시에 죄인을 포기하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상을 태우시되, 우상에게 묶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내어 주셨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폭력이 아니라 자기희생적 사랑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질투가 포기하지 않는 사랑임을 증언하는 표징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두려운 말씀이지만 동시에 복음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중심, 사랑의 중심, 예배의 중심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잃을까 가장 두려워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얻으면 살 것 같다고 믿는가?
그 대답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미 어떤 우상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우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그 사랑 앞에서 우상은 무너지고, 우리 영혼은 다시 살아난다.
**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우리 마음의 숨은 우상을 보게 하소서.
거짓 안전과 헛된 의지를 내려놓게 하소서.
소멸하는 불 앞에서 우리 영혼을 정결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질투를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깨닫게 하소서.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보게 하소서.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며 자유자로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