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
* 말씀: 신명기 1장 30절
신앙의 길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길은 보이는데, 그 길 앞에서 마음이 무너질 때다. 신명기는 모세가 광야 40년의 끄트머리에서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는 회고의 설교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가나안의 장벽이 더 크게 보였다. 그때 모세가 말한다.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신 1:29) 그리고 이어서 선포한다. 이 한 문장 안에 광야 신앙의 핵심이 담겨 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신 1:30)
* 신명기(申命記: 다시 선포된 계명의 책)는 영어 Deuteronomy(deuteros: 둘째; nomos: 율법)는 헬라어 70인역의 제목(두 번째 율법)에서 왔다.
1. 두려움은 현실을 크게 만들고, 하나님을 작게 만든다
이스라엘이 두려워한 것은 허상이 아니었다. 가나안 땅에는 실제로 강한 민족과 견고한 성읍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이 컸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이 작아졌다는 데 있었다.
두려움은 눈앞의 문제를 확대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축소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약속도 부담이 되고, 은혜도 불안하게 느껴진다. 믿음은 문제를 작게 보는 낙관주의가 아니다. 믿음은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는 영적 현실주의다.
2.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가신다
30절의 가장 강렬한 표현은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이다. 하나님은 백성 뒤에서 "왜 못 가느냐"고 재촉하시는 분이 아니다. 앞서 걸어가시며 "내가 먼저 간다"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명령하실 뿐 아니라 동행하신다. 보내실 뿐 아니라 앞서 가신다.
그러므로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싸우신다는 은혜를 신뢰하는 데서 시작한다. 하나님이 먼저 가신다는 것은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두려움이 마지막 말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3. 믿음은 과거의 은혜를 오늘의 용기로 바꾼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애굽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한다.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출애굽의 기억은 박물관 속의 기념품이 아니다. 오늘의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영적 근거다.
믿음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다. 믿음은 과거의 은혜를 오늘의 용기로 번역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홍해 앞에서 길을 내셨다면, 가나안 앞에서도 길을 여실 수 있다. 그러나 광야 세대는 기적을 경험했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데 실패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명령하기 전에, 먼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다. 죽음의 골짜기 앞에서 우리를 떠밀어 넣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죽음 한가운데로 들어가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용기는 자기 확신이 아니다. 앞서 가신 주님을 향한 신뢰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우리 앞에도 가나안 같은 현실이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 넘기 힘든 관계, 보이지 않는 미래, 무거운 사명, 설명되지 않는 고난이 있다. 그러나 믿음은 그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현실 앞에 이미 서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바라본다.
두려움은 말한다. "너 혼자 가라."
믿음은 바라본다. "하나님이 먼저 가신다.“
** 기도문
앞서 가시는 하나님,
두려움이 커질 때 주님의 크심을 보게 하소서.
현실을 부정하지 않되, 현실보다 크신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과거의 은혜를 오늘의 용기로 바꾸는 믿음을 주소서.
십자가의 길을 먼저 걸어가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내가 앞서려 하지 않고, 주님의 뒤를 따르게 하소서.
오늘도 두려움보다 깊은 신뢰로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