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41:1~24 하나님이 빚으신 최적기
찬송가 486장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I. 바로의 꿈 (창 41:1-8)
(1) 요셉의 석방은 `만 이년`이 지날 때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1절).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데에는 정해진 때가 있다. 비록 그때가 지체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오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왔을 때 그것이 가장 적절한 때임이 판명될 것이다.
(2) 요셉을 석방하는 계기가 된 바로의 꿈이 여기에 언급된다. 만일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그의 꿈은 어리석고 불합리한 환상의 결과일 뿐이다. 어떻게 유순한 소감 육식 동물처럼(그것도 몹시 굶주려서 다른 짐승도 아니고 동족을 잡아먹는) 변화하고 또 어떻게 곡식의 이삭이 서로를 마구 먹어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어리석은 꿈은 어리석은 말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바로의 꿈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졌다는 증거를 자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바로는 꿈에서 깨어난 뒤 마음에 번민이 생겼던 것이다(8절). 바로의 술객들은 가진 능력을 다 동원하여 그의 꿈을 해석하려 했으나 결국 올바로 해석하지 못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요셉으로 하여금 바로의 꿈을 해석케 하여 그가 더 큰 찬사를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이 이야기를 단 2:27;4:6;5:8과 비교해 보라). 요셉 자신의 꿈은 그가 환난을 당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이제 바로의 꿈은 그가 그 환난에서 해방되는 계기가 되었다.
Ⅱ. 바로 앞에 선 요셉 (창 41:9-16)
(1) 바로의 꿈을 해석할 사람으로 요셉이 추천되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추천한 것은 그에게 감사하거나 그의 사정을 동정해서라기보다는 바로에게 아첨하려는 이유가 더 강하게 작용했다.
그가 말해야 했던 이야기는 간단히 말해서 다음과 같다. 왕의 감옥에 한 미천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자기의 꿈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아주 정확하게 해석하였기 때문에 (해몽한 대로 각자에게 이루어졌음) 자기 주인인 왕에게 해몽가로서 그를 추천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해방시켜 주시는 가장 적당한 때임이 마침내 판명된 것이다. 만일 술 맡은 관원장이 처음부터 요셉을 석방했다면 아마도 석방되자마자 뼈에 사무치게 그리던 `히브리 땅`으로 다시 돌아갔을 것이다. 그랬을 경우 그런 자신이 훗날 시인했던 것처럼 그렇게 축복을 받지도 못했고 또 그의 가족에게 자비를 베풀지도 못했을 것이다. 결국 바로의 꿈을 풀기 위해서 감옥에서 이년을 더 있다가 지금에야 등장하게 되는 이 방법이 그의 성공에는 가장 좋은 것이었다.
(2) 요셉이 바로에게 소개되었다. 요셉은 최대한 신속하게 바로에게 소개되었으며 또 사도행전 12:9에서의 베드로처럼 놀란 표정을 한 채 바로의 궁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바로는 요셉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것은 묻지도 않고 즉시 그에게 자기의 꿈 이야기를 말해 주었다. 그것은 요셉이 자기의 꿈을 해석해 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15절).
여기서 요셉은 매우 겸손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1)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 영광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나이다."
2)그는 바로에게 경의를 표했으며 금의 해몽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이 되기를 기대함으로써 바로와 바로의 정부에 대해 갖고 있던 진정한 선의를 보여 주었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창세기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 하나님께서 대답하시리이다
* 요셉을 생각하는 관원장(41:9 -13)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가 꾼 꿈을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자 비로소 과거에 자기 꿈을 정확히 해석하였던 옥중의 요셉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따라서 요셉은 과거에 석방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최적의 때를 기다렸다가 행동하십니다. 진리를 붙잡았다고 해서 섣불리 나섰다가는 오히려 진리도 잃고 기회도 잃을 수가 있습니다. 성도는 이처럼 때를 보는 일에 하나님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 바로 앞에서 증거하는 요셉(41:14-16)
요셉은 만천하의 주권자인 바로 앞에서 그가 꾼 꿈이 하나님의 일임을 증거하였습니다. 바로는 자기 꿈을 해석할 자를 찾다가 요셉을 만나자 그를 주목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바로로 하여금 하나님을 주목하도록 했습니다. 성도는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정표임을 잊지 말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주목하지 말고 하나님을 주목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 바로와 요셉의 만남(41:14-40)
이 만남은 옥에 갇힌 종과 절대 권력의 상징인 왕의 만남이었지만 거꾸로 바로가 자신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요셉에게 호소하며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하여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앞서 있는 사람들이지만 영적으로는 성도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임을 기억하고 세상 사람들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나의 시선을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주님께 향하도록 인도하게 하옵소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