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좋은 설교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17-25) 지금부터 2,000년 전, 튀르키예 -본도와 갈라디아, 갑바도기아와 비두니아 지방

ree610 2026. 4. 21. 08:36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17-25)

갈등
1.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튀르키예-본도와 갈라디아, 갑바도기아와 비두니아 지방에 작은 공동체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큰 건물을 가진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어요.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오면, 그들은 조용히 한 집에 모였습니다. 등잔불 하나 켜놓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하나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날 밤, 한 사람이 편지 하나를 꺼내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보낸 편지입니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십자가와 부활을 직접 본 사람, 그가 우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듣기 시작합니다. 당시 그들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장사하던 사람이 갑자기 거래가 끊기고-가족들에게서 버림받고-동네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어요. 그들은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그들을 “흩어진 나그네들”이라고 불렀습니다.
17절,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2. 이 말은 따뜻한 위로보다는 오히려 긴장감을 줍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말했어요. 이 말을 듣는 성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미 세상에서도 사람들에게도 판단을 받고 있는데 하나님까지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신다고요. 그런데 베드로는 한 마디 더합니다.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닌가요? 베드로는 하나님이 아버지라면서 왜 두려워하라고 그들에게 말했을까요? 은혜로 구원받은 그들을 향해 그는 왜 이렇게 엄격하게 말했는가요?

18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평생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가정을 지키고-일을 하고-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베드로는“그 모든 것이 헛된 삶이었다.”고 했어요. 그들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선언입니다. 19절,“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베드로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과거 헛된 삶에서 구원-대속을 받은 것은 금이나 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베드로는 왜 이 메시지를 그들에게 보냈을까요?

갈등 심화
3. 그날 밤, 그 집 안에 앉아 있던 성도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등잔불이 흔들립니다. 그 빛 아래서, 한 사람의 얼굴이 보입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입니다. 같이 예배드리고, 같이 앉아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들 사이 대인관계입니다. 며칠 전, 같은 교회 성도와 다툼이 있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닫혀 있습니다. 겉으로는 함께 앉아 있지만, 속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편지를 읽던 사람이 다음 내용을 읽었어요. 22절,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습니다.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하라.”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
사랑은 할 수 있습니다. 적당히 친절할 수도 있습니다. 필요하면 도울 수도 있어요. 그러나 거짓 없이-마음으로- 뜨겁게 이렇게 사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어렵습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 베드로는 “그 사람을 사랑하라.” 그것도 “뜨겁게”요. 23절,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4.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씨앗에서 생명이 올라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너희 안에 심겨진 씨는 썩지 않는 씨다. 24절,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들판을 보세요. 요즘 같이 봄이 되면 꽃이 피어납니다. 화려합니다. 아름답습니다. 우리 동네는 이것을 보기에 참 좋아요. 제가 산책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잘 즐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꽃은 시들고 떨어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감정도-결단도-열심도 시간이 지나면 식어버립니다. 25절,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나는 변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데, 현실은 자꾸 시들어갑니다. 나는 사랑하고 싶은데, 내 마음은 식어갑니다. 나는 새 생명으로 살고 싶은데, 옛 모습이 계속 올라옵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못해요. 우리는 거듭났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흔들립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붙들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라질 것에 끌립니다. 베드로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실마리
5. 그날 밤, 튀르키예의 한 집에 앉아 있던 성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거칠어진 손입니다. 장사를 하다가 거래가 끊겼던 손-누군가에게 밀려나며 문밖에 서 있었던 손-가족들에게 외면당하며 떨고 있었던 그 손입니다. 그 손을 바라보며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실패한 인생인가?” “나는 버려진 사람인가?” 그때 베드로의 편지가 낭독됩니다. “너희가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한 시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값을 흥정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한가운데,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는 팔려 나온 사람-노예입니다. 그는 값이 매겨졌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옵니다. 묻지도 않고-흥정하지도 않고 그 값을 치러버립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이제 내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오늘부터 더 이상 노예가 아니고 자유인입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대속함”입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성도들이 들으며 그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버려진 사람이 아니다.” “값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미 값이 지불된 사람-나는 이제 사탄(세상)의 노예가 아니고 자유인이다.”

6. 그 값이 무엇입니까? 금도 아닙니다. 은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이건 단순한 거래가 아닙니다. 생명으로 값을 치른 사건입니다. 그제서야 성도들의 시선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왜 나는 이런 상황에 있는가”질문을 했습니다. 이제 질문이 이렇게 바뀝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값을 받고 살아가는가?” 내 삶을 바꾸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다시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값을 치르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날 밤, 튀르키예 집 안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조용히 등을 돌립니다. 말씀은 들렸지만, 마음이 여전히 닫혀 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혼자 남아 천천히 문을 나섭니다. 밖은 밤입니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습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집 뒤편 작은 밭으로 걸어갑니다. 그곳에는 며칠 전 뿌려 놓은 씨앗이 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흙은 그대로이고, 조용합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아직 아무 변화도 없네.” “내 마음도 저것과 똑같다.” 그 순간, 발밑의 흙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틈 하나가 보입니다.

7. 정말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아주 미세한 틈입니다. 그 틈 사이로 연약한 새싹 하나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소리도 없습니다. 드라마틱하지도 않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그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그 작은 싹을 바라봅니다. 그때, 베드로의 편지가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그는 그제야 깨닫기 시작합니다. “내가 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것이 있구나.” “내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명이 있구나.”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ㅈ“나는 아직도 그대로다-여전히 부족하다. 나는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합니다. “너희 안에 있는 것은 썩지 않는 씨다.” 씨앗은 소리 지르지 않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습니다. 결국 자라납니다. 이제 내 삶에서 질문이 바뀝니다. “왜 나는 안 변하는가?”가가 아니라 “내 안에서 지금 무엇이 자라고 있는가?”우리는 아직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생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복음 제시
8. 어느 날 밤, 튀르키예 집 안에 다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삶은 어렵고. 관계는 여전히 불편하고. 마음은 여전히 흔들립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편지 속 한 문장이 그 밤을 완전히 갈라놓았습니다. “너희의 대속함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들이 왜 변해야 했습니까? 왜 그들은 서로 사랑해야 했나요? 그들은 왜 거룩하게 살아야 했을까요? 어느 날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 위에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나가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는 한 사람이 달려 있었습니다. 조롱받고, 버림받고,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피는 억울한 피가 아니었습니다. 실패한 피도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값을 치른 피였습니다. 누구를 위한 값입니까? 바로 튀르키예 집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우리를 위한 값입니다. 그 순간, 보이지 않던 진실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단순히 용서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값이 지불된 존재입니다. 그 값이 무엇입니까? 금이나 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9.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그 아들을 통해서 값비싼 구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헛된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까? 이미 값을 치르고 건져내셨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까? 우리를 위해 먼저 생명을 내어주신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변할 수 있습니까? 그 피와 말씀으로 이미 새 생명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용서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그냥 살려둔 사건이 아니라, 값을 치르고 새 생명을 주신 사건입니다.”

기대
10. 그날 밤, 베드로의 편지를 다 읽은 후에도 성도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등잔불은 여전히 흔들리고, 방 안에는 말 없는 침묵이 흐릅니다. 그때, 그 말씀 한 구절이그들의 마음에 계속 맴돕니다.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그 말은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서로를 아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어요. 바로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시선을 돌립니다. 며칠 전 다투었던 그 사람. 마주치기 싫어서 일부러 피했던 그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의 마음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어색하고, 여전히 불편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다른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십자가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아무 대가 없이-아무 자격도 없는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신 예수님. 그 사랑은 뜨거웠습니다. 계산하지 않았고-미루지 않았고-조건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구나.”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완전히 준비된 마음이 아닙니다. 완전히 정리된 감정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앞에 서서 조용히 말합니다.“미안합니다.” 이것이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삶의 시작”입니다.

11. 뜨겁다는 것은 감정이 넘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복음이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그리스도의 피로 사랑받은 사람은, 그 사랑으로 다시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사랑이 아닙니다. 시작하는 사랑입니다. 마음이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어도. 감정이 아직 따라오지 않아도. 한 걸음 내딛는 것. 그 한 걸음이 막혀 있던 관계를 열고-식어 있던 공동체를 살리고-보이지 않던 생명을 드러내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뜨거운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받은 그 사랑으로 이제 한 걸음 사랑하십시오. 마음으로, 그리고 뜨겁게 서로 사랑합시다. - 신수일 목사(포항 빛내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