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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남겨진 예금은 대략 2억 8,200만 원 정도였다. 장례를 마친 그날, 큰오빠가 저와 둘째 오빠를 거실로 불렀습니다

ree610 2026. 4. 9. 13:59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남겨진 예금은
대략 2억 8,200만 원 정도였습니다.

장례를 마친 그날,
큰오빠가 저와 둘째 오빠를 거실로 불렀습니다.

통장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뜻대로 셋이 똑같이 나눈다.
한 사람당 9,400만 원 정도다.”

저는 순간, 손을 뒤로 뺐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혼하고 멀리 살았습니다.
1년에 몇 번밖에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곁에서
생활을 챙기고, 병원도 모시고,
실제로 돌본 사람은
두 오빠와 새언니들이었습니다.

저는 아니었습니다.

거절하려는 순간, 큰오빠가 제 말을 막았습니다.

“이건 아버지 유언이야.
한 푼도 안 줄인다.
안 받으면, 넌 우리를 형제로 생각 안 하는 거다.”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손에 쥔 수표는 얇았는데,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네 살 때 엄마를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새엄마가 들어와서 아이들 눈치 보게 하는 건 싫다고 하셨고,
끝내 재혼하지 않으셨습니다.

낮에는 회사 다니고,
밤에는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했습니다.

사치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세 아이를 다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말주변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감정적인 말을 하는 걸 거의 못 봤습니다.

늘 하던 말은 하나였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공부는 해야 한다.
배워야 길이 열린다.”

큰오빠는 선생님이 됐고,
첫 월급을 통째로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동생들 학비에 보태세요.”

둘째 오빠도 사범대 나와서
고향에서 교사가 됐습니다.

저는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고,
그대로 결혼했습니다.

가족 중 가장 멀리 살았고,
결국 간병도, 보살핌도
거의 하지 못한 사람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끝까지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리가 부러져도 혼자 병원 다녔고,
고혈압이 심해지고 당뇨가 나빠져도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제가 전화하면
늘 똑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괜찮다.
너는 애들 잘 키워라.”

명절에 내려갈 때마다
돈이라도 쥐여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 집에 돌아와
캐리어를 열어보면,
그 돈 봉투가 그대로
제 겉옷 주머니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꼭 이랬습니다.

“애 둘 키우잖아.
너한테 돈 들어갈 데가 얼마나 많은데.
나는 시골에서 돈 쓸 일이 없다.”

몇 년 전,
남편 사업이 망했습니다.

주택담보대출, 자동차 할부,
아이들 학원비까지
전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전화 붙잡고
울음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30분 뒤, 큰오빠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신다.
일단 4,700만 원 정도 보낼 테니까
급한 불부터 끄라고.”

다음 날, 아버지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두 오빠도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좋아하던 반찬이랑,
영양음료를 한가득 들고서요.

이상하게도
아무도 저를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됐냐고 묻지도 않았고,
정신 차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늦은 밤까지
제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돌아가기 직전에 큰오빠가 말했습니다.

“돈 문제는 같이 생각하자.
진짜 안 되겠으면 내려와.
집은 안 없어진다.
오빠들이 있잖아.”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평생을 걸려도
이 가족한테는 못 갚겠구나.

그래서 아버지 돌아가신 뒤
9,400만 원 정도를 받는다는 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받았습니다.

끝까지 거절하면
형제 사이까지 망가질까 봐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그 돈으로 대출을 갚았고,
생활은 조금씩 다시 서기 시작했습니다.

일도 점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줬다고.

그런데 올해 설날,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밤에 밖에서 폭죽놀이를 하려고
라이터를 가지러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 오빠 방 앞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습니다.

큰오빠가 말했습니다.

“막내, 이제 좀 살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아버지도 이제야 마음 놓으시겠지.”

둘째 오빠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쟤 성격 알잖아.
사실대로 말했으면 절대 안 받았을 거다.
빚으로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자 새언니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형제라는 게 원래 그런 거죠.
누가 넘어지면, 말없이 받쳐주는 거지.”

저는 복도에서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를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그 9,400만 원은
아버지 유산이 아니었습니다.

두 오빠가
자기 돈으로 내준 돈이었습니다.

아버지 이름까지 빌려서,
제 초라한 자존심이 무너지지 않게
끝까지 지켜준 겁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건
통장도 아니고, 돈도 아니었습니다.

가족이 사는 방식이었습니다.

가족은
쓸모 있는 사람만 사랑받는 곳이 아닙니다.

넘어진 사람이 있으면,
손해 계산부터 하는 곳도 아닙니다.

아무 말 없이 붙잡아 주고,
조용히 일으켜 세워주는 곳입니다.

저는 그날
그 방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
아이들을 꼭 안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아버지, 걱정 마세요.
저 이 집 지킬게요.
오빠들 정말 소중하게 대할게요.

말로만 안 할게요.
남은 인생으로, 끝까지 보여드릴게요.”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