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16:16~24 잠시의 슬픔, 영원한 기쁨.
찬송가 487장 어둠 후에 빛이 오며
Ⅲ. 다시 오실 것에 대한 그리스도의 예고 (요 16:16-22)
1.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신 위로(16)
(1) 제자들이 이제 곧 주님을 뵐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16절). 그러므로 만일 주님께 제기할 바람직한 질문이 그들에게 있다면, 그들은 즉시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새로운 은혜를 받기 위해서 은혜의 시기가 얼마나 가까이 임했는가를 염두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죽으심으로써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리스도가 승천하여 제자들에게서 떠나셨음으로 그의 존재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2) 그러나 그들이 속히 주님을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그의 작별은 최후의 작별이 아니었다. 그가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는 그들에게서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신다.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17절). 이 구절은 그가 승천하여 종말에 다시 재림하실 것이라는 내용보다는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실 것이란 의미를 지닌 말씀이다.
2. 제자들의 당혹(17,18)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러한 말씀을 듣고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17,18절). 그리스도께서 종종 이러한 취지에 대해 전에 언급하셨는데도, 제자들은 그것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1) 제자들의 나약함: 그들은 나약했음으로 너무도 평범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종종 그리스도께서 "내가 죽임을 당하여 사흘만에 다시 부활할 것이다"는 말씀을 분명히 전하신 것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말했다. 그들의 마음은 근심으로 가득 찼으므로 위로의 말씀을 받아들일 자세도 갖추지 못하였다.(2) 사실을 알기 원했던 제자들의 자발적인 태도: 그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미에 대해 당혹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것에 대해 서로 의논하였다.
3. 그리스도께서 전하셨던 말씀에 대한 충분한 설명(19-22)
(1) 본문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전하신 말씀에 대해 설명하신 이유를 살펴보자(19절). 그 이유는 제자들이 주님께 문의하기를 열망하고 있음을 주님이 아셨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주님께 가져가야 한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문의하기를 열망하고 있음을 아셨으나, 그들은 부끄러워 문의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비록 그들이 묻지는 않더라도 그에게 문의하기를 열망하는 자들에게 알려 주셨다. 그러면 제자들이 어떠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그들을 가르치고자 하셨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고백한 겸손한 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온갖 수단을 동원한 근면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묻느냐 그러면 너희가 가르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다.
(2) 본문에서 그리스도께서 그 문제를 설명하신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그리스도는 제자들의 회로애락을 통하여 이 문제를 설명하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물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20절).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기뻐하기도 하며 슬퍼하기도 한다.
1) 그리스도께서 본문(20절)과 21,22절에서 제자들의 슬픔과 기쁨에 관해 말씀하신 내용은 우선적으로 그들의 현재 상태에 관한 것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그들의 현재 상태에 관한 것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그들의 슬픔은 다음과 같이 예언되었다.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너희는 근심하겠으나. 제자들이 주님을 위해 운 것은 그들이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슬픔은 곧 기쁨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슬퍼하는 것 같았으나 기쁨에 넘친 마음을 간직하였다.
2) 본문은 그 자체가 비유의 말씀이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치 아니하느니라(21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저주의 결과이다(창 3:16).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고 기록되었다. 축복의 결과는 기쁨의 문제이며, 생명을 지닌 아이의 출생은 부모의 기쁨이 된다. 자녀는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자녀를 통해 위로 받으리라는 것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때로는 그들이 견딜 수 없는 십자가로 여겨지기도 한다.
비유의 적용(22절):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22절).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의 슬픔에 관하여 거듭 말씀하신다. 그는 `내가 너희를 떠나므로 지금 너희가 근심하는 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떠나심이 제자들을 슬픔에 빠뜨린 요인이었다.
기쁨의 원인: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그리스도는 그를 고대하는 자들에게 은혜로써 돌아오실 것이다.
기쁨의 진실성: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22절). 마음에서 우러나온 기쁨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확고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기쁨은 은밀하고 달콤하며 확실하므로 쉽게 사라지지 아니한다.
기쁨의 계속성: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이 기쁨을 빼앗으려고 하지만 실패할 것이다.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빼앗을 수 없으며 하나님과 하늘의 보화를 빼앗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16:16)
** 주의 죽음과 부활
* 성도가 얻는 기쁨(16:20-24)
근심이 기쁨이 됩니다. 성도의 생활은 슬픔뿐이고 세속 생활은 모두 기쁜 것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그것이 반대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낳은 즐거움으로 인해 해산의 고통을 잊듯이 순교자는 하늘의 영광으로 인해 현재의 고통을 잊게 됩니다(행7:55, 56). 또한 성도는 빼앗기지 않는 기쁨을 얻습니다. 이 기쁨은 세상의 변화와 생활의 변천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나 권력도 앗아갈 수 없는 결국은 온전한 기쁨이 됩니다. 인생의 기쁨이란 아무리 큰 기쁨일지라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즐거움에는 아무런 흠도, 부족함도 없습니다.
주님!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한 애통과 고난은 주님의 재림으로 위로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니 온전히 인내하여 승리하게 하옵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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