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영성

‘내 백성’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 — 모세의 “어찌하여?” - * 말씀: 출애굽기 32장 11절 본문을 읽다보면, 마구 감탄과 눈물이

ree610 2026. 3. 23. 06:52

‘내 백성’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 — 모세의 “어찌하여?” -
* 말씀: 출애굽기 32장 11절

오늘 본문을 읽다보면, 마구 감탄과 눈물이 난다. 와, 이런 담대하며 멋진 지도자가 있는가? 공동체가 가장 큰 위기를 맞았을 때에 "어찌하여?"라는 물음을 누가 감히 하나님께 던질 수 있을까? 그것도 자기에게 맡긴 백성을 자기 생명을 걸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당신)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 진노 앞에서 언약을 붙들다

출애굽기 32장은 인간의 조급함과 하나님의 거룩이 맞부딪히는 본문이다.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하나님은 진노하신다. 히브리어 ‘진노’는 ‘콧김이 타오름’이라는 신체적 언어로 표현한 단어다. 이것은 냉정한 심판자의 판결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배신당했을 때 터져 나오는 뜨거운 관계적 고통이다.
모세는 백성의 죄를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 서서 묻는다: “어찌하여?”

금송아지 사건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출애굽의 은혜를 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우상을 붙든 언약 파기의 사건이다. 그럼에도 모세는 현재의 죄보다 먼저 과거의 구원을 기억한다.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붙든다. 죄는 분명하지만, 은혜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믿음, 그것이 중보의 출발점이다.

2. "어찌하여?"는 믿음의 질문이다

모세의 “어찌하여?”는 반항의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가능한 질문, 곧 믿음의 질문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기 때문에 묻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에 묻는 것이다.

참된 기도는 찬양만이 아니라, 때로는 떨리는 질문까지 품는다. 이것은 감정적 호소가 아니라, 언약의 법정 앞에서 선 중보자의 신학적 변론이다. 하나님의 정의를 두려워하면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모세의 질문은 불신의 언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신뢰의 언어가 된다. 하나님께 질문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관계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3. 사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다

이 물음의 긴장은 하나님의 “네 백성ָ” 과 모세의 “당신의 백성” 사이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하나님은 금송아지 우상숭배의 책임을 모세에게 건네시는 듯이 보인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출 32:7)
하지만 모세는 이를 거절하고 출애굽의 동력 원인을 명백히 한다. “나 모세가 아니라 당신이 인도했습니다. 이 백성은 내 백성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입니다.”
소유격의 교환,  이것이 언약신학의 핵심 논리다. 모세는 백성을 자기 소유처럼 붙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당신의 것"이라고 되돌림으로써, 마지막 책임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 중보는 32장 후반부에서 한 극점에 이른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 32:32)

모세의 기도하는 무릎은 훗날 죄인 곁에 홀로 서시는 진정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비추는 그림자다. 모세는 "나를 지워주소서"라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실제로 지워지셨다. 그래서 우리가 살았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바로 여기서 오늘의 지도자에 대한 분별도 시작된다.
참된 지도자는 사람을 소유하며, 공동체를 사유화하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에 책임을 약한 이들에게 떠넘기지도 않는다. 반대로 거짓 지도자는 사람의 충성을 자기 영광의 재료로 삼는다. 위기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추종자들에게 뒤집어씌운다. 그것은 목자의 길이 아니라 폭군의 길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유화와 책임 회피의 핑계가 아니라, 중보 기도하는 분별력과 용기다.

** 기도문

언약의 하나님,조급한 마음으로 주님을 망각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모세처럼 공동체의 죄악을 보면서 중보의 자리에 서게 하소서.

정죄하지 않고 가슴으로 품고 기도하는 마음을 주소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감당하는 신실한 지도자가 되게 하소서.

사람을 사유화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거룩한 지도력을 주소서.
진정한 중보자 예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그 마음을 배우고 실천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