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물을 받지 말라” - 밝은 눈도 어둡게 한다 -
* 말씀: 출애굽기 23장 8절
선물과 뇌물은 형태가 비슷하다. 둘 다 무엇인가를 건네는 행위다. 그러나 둘은 본질에서 서로 다르다. 선물은 관계를 기뻐하며 자유롭게 주는 것이다. 반면 뇌물은 판단을 바꾸고 마음을 사기 위해 건네는 것이다. 선물은 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만, 뇌물은 사람을 묶는다. 선물의 중심에는 상대가 있지만, 뇌물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출애굽기 23:8)
1. 뇌물은 밝은 눈도 흐리게 한다
이 말씀은 정의의 붕괴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드러낸다. 그것은 행동 이전에 시선에서 시작된다. 뇌물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다. 판단과 판결을 기울게 하는 힘이다. 본문은 뇌물이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밝은 자’의 눈도 어둡게 한다고 말한다. 분별력 있는 사람도 이익과 욕망 앞에서는 시야를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문제는 단지 무지가 아니다. 더 깊은 문제는 자기기만이다. 사람은 몰라서 길을 잃기도 하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외면하기 때문에 더 자주 길을 잃는다.
2. 눈이 흐려지면 말도 굽어진다
뇌물의 두 번째 결과는 무엇일까? 뇌물은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한다.” 눈이 흐려지면 말도 비뚤어진다. 판단이 흔들리고, 판결이 기울고, 증언이 달라진다. 거짓은 대개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오지 않는다. 조금 덜 말하게 하고, 조금 다르게 표현하게 하고, 조금 유리하게 해석하게 만든다. 그래서 정의는 한순간에 무너지기보다 서서히 휘어진다. 더 두려운 것은 그 왜곡 속에서도 사람은 자신이 여전히 공정하다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3. 현대의 뇌물
오늘의 뇌물은 봉투만이 아니다. 인맥과 청탁, 침묵의 대가, 관계 때문에 진실을 덮는 태도도 뇌물의 한 형태다. 권력자에게 아부하며 뇌물을 바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이는 정의를 사유화하려는 악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받았기에 무엇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가?”
신명기 10장 17절은 선언한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뇌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은 단순한 공정하시다는 뜻만이 아니다. 정의가 하나님의 성품 깊은 곳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이 하나님을 닮는 것(imitatio Dei)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다. 그 궁극적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은 불의한 재판의 가장 큰 희생자이셨다. 은 삼십 냥의 거래, 군중의 압력에 굴복한 빌라도의 판결, 그 모든 왜곡과 타협 속에서도 예수님은 끝내 진실을 굽히지 않으셨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뇌물은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한다. 하지만 의로우신 예수님의 말씀은 고난 속에서도 진리와 사랑으로 가장 곧게 드러났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길도 분명하다.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굽히지 않는 길이다. 관계보다 공의를, 편의보다 정직을, 이익보다 진실을 택하는 삶이다. 정의는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무엇을 받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굽히지 않을 것인가에서 시작된다. 밝은 눈을 지키는 것, 그것이 곧 거룩함의 시작이다.
** 기도문
공의의 하나님,
밝은 눈과 곧은 마음을 우리에게 주소서.
이익과 욕망에 흔들려 진실을 흐리지 않게 하소서.
뇌물을 물리칠 분별력을 주시고,
말을 굽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유혹에서 우리를 건져 주소서.
관계보다 정의를, 편의보다 진실을 선택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라 오늘도 정직하게 걷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