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도 나그네였음이라” - 기억과 환대의 신앙 -
* 말씀: 출애굽기 22장 21절
출애굽기 22장 21절은 단순한 사회윤리 조항이 아니다. 이 말씀은 언약 백성이 누구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신학적 선언이다. "외국인을 잘 대하라"는 도덕적 권고에 머물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구원받은 백성은 타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스라엘의 윤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 행위, 곧 출애굽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출 22:21)
1. 나그네와 공동체
"이방 나그네"는 히브리어로 게르(ger)이다. 이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가 아니다. 공동체 안에 거주하지만 토지와 혈연의 보호망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사회 안에 있지만 중심에는 속하지 못한다.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다. 그래서 그는 쉽게 억울함을 당하고, 착취와 차별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압제하지 말라." 이 금지는 물리적 폭력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적 착취, 법적 불이익, 일상적 멸시와 모욕까지 포함한다.
성경은 공동체의 성숙을 강자의 성공으로 측정하지 않는다. 가장 연약한 자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묻는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품격은 힘 있는 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힘없는 자의 안전에서 드러난다.
2. 기억의 윤리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기억이 윤리의 뿌리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그네였다. 타국에서 나그네로 두려움과 수치를 경험한 백성이다. 그들은 노예였고, 이방인이었고, 억눌린 자였다.
여기서 출애굽 신앙의 핵심 구조가 드러난다. 은혜가 먼저이고, 윤리는 그 은혜의 열매다. 이스라엘은 약자를 사랑함으로써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약자를 해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 고통의 기억이 자동으로 자비를 낳는 것은 아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더 약한 자를 억누르는 일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다. 상처의 기억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해석될 때 비로소 연민이 된다. 출애굽의 기억은 보복의 자산이 아니라 환대의 근거이다.
3. 그리스도와 나그네
이 말씀은 신약에서 더 깊고 넓게 열린다. 예수님은 친히 나그네의 자리에 서신 분이다. 탄생 직후 피난길에 오르셨고,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말씀하셨으며, 마침내 성문 밖에서 버림받으셨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이 약자의 자리로 내려오신 사건이다. 그러므로 나그네를 향한 태도는 단순한 사회 배려의 윤리를 넘어선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일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약자를 향한 태도는 신앙의 부수적 항목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사랑의 진실성을 판별하는 자리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늘 한국 사회는 이미 다문화 현실 속에 놓여 있다(한국 인구의 5%). 이주노동자, 외국인 유학생, 탈북민은 오늘 우리의 '게르’다.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한국교회와 사회의 영적 수준을 비추는 거울이다. 나그네를 향한 태도는 시민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 이해의 문제다.
구원은 개인의 감격으로 끝나지 않는다. 타자를 향한 책임으로 자라야 한다. “너희도 나그네였음이라”는 말씀은 두려움과 수치, 무력감과 억울함 속에서 부르짖던 시간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설 수 없었던 자였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 기억이 살아 있을 때, 교회와 사회는 더 복음적이고 아름다운 공동체로 성숙할 수 있다.
** 기도문
자비의 하나님,
우리도 한때 나그네였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출애굽의 은혜를 기억하며 타자의 아픔에 무감각하지 않게 하소서.
힘없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배려하는 마음을 주소서.
상처의 기억이 분노가 아니라 연민으로 열매 맺게 하옵소서.
나그네의 길을 친히 걸으신 예수님의 마음을 닮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를 환대와 책임의 사람으로 세워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