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영성

“돌은 죽이고, 반석은 살린다!” * 말씀: 출애굽기 17장 4절 인생의 광야에서 결핍이 오면 우리는 누군가를 탓하며 돌을 든다. 그 때 먼저

ree610 2026. 3. 6. 06:17

“돌은 죽이고, 반석은 살린다!”
* 말씀: 출애굽기 17장 4절

인생의 광야에서 결핍이 오면 우리는 누군가를 탓하며 돌을 든다. 그 때 먼저 무너지는 것은 우리의 언어다. 감사가 불평으로, 기쁨은 원망으로 변질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돌의 폭력을 꺾어 반석의 은혜를 여신다. 원망의 소리를 부르짖는 기도로 바꾸신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출 17:4).

1. 결핍이 아니라, 결핍이 만든 언어

광야에서 무서운 것은 물이 없는 현실이 아니다. 그 현실이 우리의 언어를 바꾸는 순간이다. 목마름이 몸을 치고 올라오면, 마음은 쉽게 분열된다. 공동체는 "왜 물이 없느냐"를 묻다가, 곧 "누가 책임지느냐"로 옮겨간다. 그리고 책임의 화살은 한 사람, 모세를 겨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향해 돌을 든다. 광야는 결핍의 공간이기 전에, 폭력의 가능성이 드러나는 자리이다.

2. 원망을 기도로 번역하다

여기서 이야기의 주어가 바뀐다. 백성은 모세를 향해 원망한다. 하나님을 향하지 못한 말이 수평으로 흩어진다.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언어의 방향이 수직으로 세워진다. 모세의 부르짖음은 감정 배출이 아니라 신앙의 결단이다. 수평의 불평을 수직의 기도로 번역하는 순간이다. 그런 점에서 중보자는 해결사가 아니라 번역자다. 사람의 말이 사람에게 상처를 줄 때, 그는 그 말을 하나님께 들고 간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에, 모세를 향해 "그 반석을 치라"(출 17:6)는 구체적인 명령으로 응답하신다.

3. 폭력의 돌, 구원의 반석

본문의 대비는 너무 선명하다. 백성은 모세를 돌로 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 하신다. 폭력의 돌은 생명을 끊으려 하고, 구원의 반석은 생명을 솟아오르게 한다. 사람의 분노는 죽이려 하고, 하나님의 명령은 살리게 한다.
물은 그냥 돌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반석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광야의 기적은 단지 "물이 생겼다"가 아니다. 하나님이 공동체의 파괴 본능을 생명의 길로 꺾으신 사건이다.

바울은 "그 반석이 그리스도"라고(고전 10:4) 밝힌다. 모세가 돌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세상의 거절과 폭력을 온몸으로 받으셨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으며 내치심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생명의 물, 곧 살리는 은혜가 흘러나온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이 장면은 오늘도 반복된다. 분노가 우리의 언어를 점령한 시대다. 정치는 진영의 돌을 들고, 세대는 서로를 향해 돌을 겨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결핍은 돌을 만들고, 불안은 희생양을 찾는다. 그러나 살 길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열린다. 그 자리에서 원망의 돌은 기도로 바뀌고, 기도는 순종으로 이어진다. “그 반석을 치라”(출 17:6)는 명령 앞에서 비로소 물이 솟는다.
광야의 물은 결핍의 종말이 아니라, 여정을 지속하게 하는 은혜다. 그 은혜의 원천은 인간의 돌을 대신 맞은 반석, 곧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 신앙 공동체는 결핍의 위기 앞에서 분노의 돌을 들고 있는가, 반석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가?

**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결핍 앞에서 우리 입술이 거칠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목마름이 두려움이 되어, 누군가를 탓했습니다.

원망을 기도로 번역하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사람의 소리보다 주님의 얼굴을 먼저 찾게 하소서.

반석을 치라는 말씀 앞에서 순종하게 하시고,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물을 함께 마시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