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정과/설교 자료

요한복음 11:28~37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찬송가 86장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Ⅱ. 베다니에서의 그리스도 (요 11:28-32)

ree610 2026. 3. 7. 17:31

요한복음 11:28~37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찬송가 86장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Ⅱ. 베다니에서의 그리스도 (요 11:28-32)
  (2)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대화
   1)마르다가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림:`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28절). 전에 마르다는 마리아가 자신의 `과중한 일`을 와서 도와 주도록 그리스도께 요청하면서 마리아를 그리스도로부터 떼어놓으려 했던 때가 있었다(눅 10:40). 그러나 여기서 마르다는 마리아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려는 열의를 보인다. 그녀는 마리아를 은밀히 불렀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아 마리아를 불렀던 것이다.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그녀는 주님의 도착을 기뻐하면서 선생님이 오셨다라고 전한다. 우리가 학수고대했던 그리스도께서 드디어 오셨다. 이것은 현재의 고통 속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그녀는 `너를 부르신다`라고 말하면서 동생 마리아에게 가서 주님을 만나보라고 전한다.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는 우리를 부르신다. 그리고 그는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를 찾으실 것이다. 그는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치유하시며 위로하실 것이다.

   2)마리아가 그리스도에게 급히 나아감(29):그녀는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일어나 그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주께서 그녀 곁에 얼마나 가까이 계셨는지에 대해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이같이 주님은 종종 그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시온에서 애곡하는 자들 곁에 가까이 계신다. 주님께서 찾아 오신다는 소식 그 자체로도 우리의 신앙에 충분한 활기를 주는 것이다. 또한 그 소식은 우리로 하여금 첫 번째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할 뿐 아니라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한다. 그녀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함께 있던`이웃의 유대인들과 의논하지 않았다. 즉 그녀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함께 있던`이웃의 유대인들과 의논하지 않았다. 즉 그녀는 그들 모두를 남겨두고 주님을 맞으러 달려나갔다.

   3)마리아가 주님을 만남: 마르다가 주님을 만났던 장소에서 마리아가 주님을 발견한 사실을 알게 된다(30절). 그리스도는 자신의 사역에 충실하셨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도 나사로의 무덤으로 미리 가시기 위해 그 무덤 가까이에 머물러 계셨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사랑하였다. 여전히 그녀는 주님을 매우 사랑하였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늦게 오신 것이 불친절하게 보였을지라도, 그녀는 결코 주님을 탓하려 하지 않았다.

   4)마리아가 급히 밖으로 나간 것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31절):그들은 `그녀가 곡하러 무덤에 간다`고 말했다. 마르다는 슬픔에 자민 유순한 성격의 마리아보다 이 고통을 훌륭하게 잘 참아냈다. 마리아의 이러한 성격은 타고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위로자들은 마리아가 밖으로 나갔을 때 그녀가 `곡하러 무덤에 간 줄로` 단정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①상주들은 종종 어리석음과 잘못을 범한다는 사실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슬픔을 심화시키고 악화시키려고 애쓴다. 우리는 고통을 악화시키는 것들에 집착하기 쉽다. 그럴 때 우리는 그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할 수 있어야 한다.

   ②위로자들의 지혜와 의무가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 즉 이들의 의무는 상주들의 슬픔을 가능한 한 억제시켜 그들이 슬픔을 다른 곳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이로써 마리를 따라간 유대인들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되었고 그의 가장 영광스런 기적들 중의 하나를 목격한 증인들이 되었다. 슬픔을 당한 그리스도의 친구들과 깊이 동참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이로써 우리가 준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5)우리 주 예수께 대한 마리아의 제언(32절): 그녀는 여기서 예수께 나아와 `그의 발앞에 엎드리어`많은 눈물을 흘리면서(33절에서 나타난 대로)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그녀 또한 앞서 마르다가 말한 대로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32절)라고 말했다. `예수 발 앞에 엎드린`마리아의 태도는 자신의 감정을 잘 억제할 수 있었던 마르다의 행동보다 더욱 숙연한 것이었다. 이 마리아는 전에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발 아래` 앉았던 적이 있다(눅 10:39).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전과 다른 목적으로 그리스도의 발 아래 엎드린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된다. 평온한 떼에 그리스도의가르침을 받기 위해 그이 발 아래 엎드리는 자들은 고통의 때에도 위로와 확신을 갖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는 심정으로 그의 발 아래 엎드릴 것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발 아래 엎드림으로써 "나는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나이다"라고 실제로 말했던 마르다처럼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녀는 자기를 돌본 유대인들이 보는 앞에서 그리스도의 발 아래 엎드렸다. 이 유대인들은 비록 그녀의 친구요 가족이었지만 그리스도와는 철천지 원수였다. 그녀는 그들의 원망 따위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리스도의 발 아래 엎드렸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32절)라고 말한 그녀의 제언은 매우 애처로왔다. 그리스도의 제언은 매우 애처로왔다.
그리스도의 지연은 회상의 목적을 위하여 계획된 것이며, 이 사실은 곧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 두 자매는 그리스도에게 똑같은 말을 매우 무례히 전했으며, 결국 그들의 형제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전가하였다. 마리아는 마르다처럼 긴 말을 하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마르다보다 적게 말했으나 더 많이 울었다. 경건한 애정의 눈물은 그리스도에게 호소력을 갖는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웅변이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 슬픔을 나누어 주시는 예수

* 예수님의 눈물(11:35)
예수님은 세 번 눈물을 흘리셨는데, 이는 먼저 나사로가 죽었을 때였습니다. 주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우셨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아픔을 아파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 보셨을 때였습니다. 즉 예수님을 영접치 않는 유대인과, 그로 인해 생길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고 우셨던 것입니다(눅19:41-44). 셋째는, 기도하실 때입니다. 그분은 인성을 가진 육체로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

주님!
나의 애통과 고통 그리고 슬픔까지도 짊어지시는 주님께 모두 말씀드리는 믿음을 주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