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하나님”: 미리암 – 한나 – 마리아
* 말씀: 출애굽기 15장 21절
홍해를 건넌 뒤, 이스라엘에게 남은 과제는 하나다. 해방의 역사를 '사건'으로만 남길 것인가, 아니면 '기억'과 '예배'로 승화할 것인가이다. 출애굽기 15장 21절에서 미리암은 소고를 들고 춤추며 화답한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출애굽의 해방은 노래가 되어 공동체의 호흡이 된다.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 15:21).
1. 여성의 노래와 춤: 몸이 먼저 자유를 배운다
미리암의 찬양은 말의 예배를 넘어선다. 소고와 춤은 전인적 예배다. 억압은 몸을 굳게 하고, 두려움은 숨을 옅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이 해방하시면 몸이 다시 살아난다. 춤은 가벼움이 아니라 해방된 존재의 진솔함이다.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라는 문장은 신앙의 구조를 보여준다. 모세와 이스라엘의 노래(출 15:1-18)에 미리암이 후렴으로 응답한다. 믿음은 개인의 독백이 아니라 공동체의 화답이다. 한 사람의 찬양이 공동체의 입을 열고, 한 사람의 율동이 공동체의 길을 만든다.
2. 찬양의 대상을 바로 세우다
미리암의 노래는 승리 서사의 주어를 바로잡는다. "우리가 이겼다"가 아니라 "여호와를 찬송하라"이다. 승리는 영웅을 만들기 쉽고, 영웅은 다시 우상이 된다. 그러나 본문은 승리의 원인을 인간의 지략이나 용맹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린다.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이것은 단지 군사적 패배의 묘사가 아니다. 억압의 질서가 무너졌다는 선언이다. 그러므로 찬양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신학적 분별력이다.
누가 진짜 왕인가? 애굽 왕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3. 여인의 노래가 증언하는 뒤집기의 하나님
출애굽기의 하나님은 현상 유지의 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바다를 길로, 죽음을 노래로, 노예를 예배자로 바꾸신다. 이것이 출애굽의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이 '뒤집기'의 신학을 여인들의 노래를 통해 반복해서 들려준다. 한나는 노래한다. 강한 자의 활이 꺾이고 약한 자가 힘으로 띠를 띤다(삼상 2장). 마리아는 찬가로 선포한다.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신다(눅 1:46-55).
이 세 노래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강자의 질서를 보존하는 신이 아니다. 보이지 않던 이들의 목소리를 역사의 중심으로 세우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노래는 단지 성별의 표지가 아니다. 그것은 변방에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율동이다. 억눌린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구원의 증언이다.
하나님은 바깥의 애굽만 무너뜨리지 않으신다. 우리 안에 있는 애굽, 곧 노예근성, 냉소, 불평, 탄식의 습관도 허무신다. 그래서 구원 직후에 찬양이 주어진다. 찬양은 마음속 애굽을 비워내는 영적 훈련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그러므로 우리의 찬양은 현실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참된 왕이심을 고백하는 삶의 방향 전환이다.
미리암 – 한나 - 마리아의 노래는 한 가지를 증언한다. 하나님은 강자의 질서를 보존하지 않으시고, 은혜로 역사를 역전시키신다.
강함을 자랑하고 뽐내는 우리여, 역전의 하나님을 기억하라. 십자가로 이기신 예수님을 보라!
** 기도문
구원의 하나님,
우리로 죽음의 바다에 침몰하지 않고,
두려움을 넘어 건너게 하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승리의 주어를 사람에게 돌리려는 교만을 꺾으시고,
오직 주님만 높이게 하소서.
십자가로 역전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따라,
오늘도 찬양의 걸음으로 새롭게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