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측의 '개혁'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
사법부는 대체로 법원/사법 개혁에 대한 반대자세가 체질화되어 있는 것 같다. 지난 수십년간 그랬고, 자체의 적극 개혁자세를 취한 적도 별반 없다.
1.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사법부 내에서 처음부터 개혁안을 내걸고 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속영장실질심사제의 도입과 정착'이었다. 1990년대 중반, 윤관 대법원장은 사법발전위원회를 만들어, 이를 선도하고 검찰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착시켰다. 그 효과는? 1990년대 중반 구속기소자가 14만명인데, 지금은 2만명이 안된다.
연간 12만명 이상이, 불구속상태에서 기소.재판받고 있는 중이다. 국민에게 자유를 확장시킨 최대의 공적이다.
2. 2003-2004년에, 사법개혁위원회를 대법원 산하에 출범시켜, 법조 일원화, 로스쿨, 국민참여재판, 양형위원회, 법조윤리협의회 등의 개혁을 이루어냈다. 그때 주저하던 대법원을 견인하여, 노무현 정부가 해낸 업적들이다. 사법부는 그때 개혁대상이 될 뻔 했으나, 개혁의 동반자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일차적으로 사법부 주도의 개혁안을 도출해냈다. 많은 개혁과 양보도 했지만, 사법부도 많은 자체 기득권을 방어해냈다. 대법관수가 증원되지 않았고, 법원행정처도 보존되었고, 재판소원도 막아냈다. 대신 사법연수원의 연수기능도 사라졌고, 소위 우수인력의 법관독점시대도 완화되었다. 법원입장에서는 방어적 개혁을 했고, 노무현 정부는 중요한 개혁과제(로스쿨, 국민참여재판, 재심 등 과거사정리)를 성취할 수 있었다. 대체로 윈-윈이었다. 지금까지 그 틀이 변함없는 것을 보면, 노무현 정부의 사법개혁은 장기적 제도화에 성공했다.
3. 그때 밀렸던 과제가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이었다. 이재명 정부를 맞아, 불신받는 사법부로서는 선제적 개혁안을 내놓을 필요가 절실했다. 계엄때의 행적, 지귀연의 구속취소, 5.1파기환송판결로 사법부는 치명적 신뢰실추를 입었고, 개혁에 앞장서겠다는 중심성을 세워갈 수 없었다. 지금 대법관증원, 재판소원, 법왜곡죄는 국민적 신뢰상실에 대한 대법원과 조희대 책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말하자면, 개혁의 최대동력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행적과 자세에서 나온 것이다.
4. 개혁주제에 대해 대법원측의 대응은 안쓰럽고 촌스럽다. 전국법원장회의..이는 전국검사장회의, 전군지휘관회의로 군림.겁박하던 모습의 재연인데, 무섭다기보다 그냥 우습다. 그럴수록 개혁에의 기름만 더 부을 뿐이다. 법원행정처장의 사퇴는 그냥 코믹하다. 감동과 긴장의 울림이 전혀 없다. 아마 임팩트 있는 유일한 처방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자진사퇴 뿐일 것이다.
5. 대법원이 개혁의 방향을 잡으려면, 반대 반대 반대로 일관할 게 아니다. 대법관 늘어나면 1조4천억이 더 소요된다거나, 우수인력이 대법원에 더 집중되어 하급심이 더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그건 대법관 기득권의 유지보존 차원에서 접근할 때의 이야기일 뿐, 26인 대법관 체제에서 새로이 조정.재정비하면 될 것인데 그를 위한 방안은 전혀 내놓지 않는다. 재판소원에 대해서 4심제니 위헌이니 주장이 가득한데, 위헌주장은 헌재에서 전혀 동의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 재판소원의 필요성이 불거졌는지, 법원 내부의 교정장치는 개발될 수 없는지에 대한 자체 검토도 없다. 법원측의 각종 주장에 대해 동조, 증폭할 친법원법조인은 차고 넘치지만(검찰개혁에 반대하는 친검찰법조인도 차고 넘쳤다), 그 반대 역시 조금 시간이 지나고 보면 새로운 제도적 적응을 거친 뒤 잘 운용된다. 뜻만 제대로 선다면.
6. 법원측은 국민의 절실한 needs에 부응할, 국민의 사법서비스에 대한 기대에 부응할 종합적 대책을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소극적, 수구적 태도로는 국민설득이 이루어질 수 없다. 사법적 결정의 투명화(판결문 공개, 재판중계), 국민참여의 제도화와 다양화(국민참여 재판의 필수화, 각종 위원회와 법원행정처의 탈법관화, 대법관 제청 이전에 국민공론화 시스템 도입 등), 전-현관유착비리의 척결을 위한 근본적 처방 제시, 법률서비스의 고른 분배, 지역균형 가치 실현을 위한 대법원의 지방이전, 인천고등법원에 이은 고등법원의 확충 등등. 다양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사법의 구상을 본격적으로 펼쳐내어, 많은 토론을 거쳐 새로운 제도화로 나아가야 한다.
7. 다만 이러한 새로운 구상에는 엄청난 개혁에너지의 집중이 필요한데, 현재의 영향력과 신뢰도가 바닥인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는, 과거의 재판에 대한 비판 차원에서도 필요하고, 미래 사법제도의 건설이라는 차원에서도 불가피하다. 앞으로 남은 조희대 잔여임기(16개월)동안 대법원은 국민감동과 국민설득을 위한 새로운 개혁처방을 자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냥 두들겨맞으면서 그래도 현상유지-기득권 보전을 지상가치로 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인가? 대법원장 사퇴로 새로운 물꼬를 틀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 한인섭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