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읽기"와 "촛불 절도"의 비유, 그 근원적 위험성:
1. 2026년 2월 19일, 모든 국민의 시선이 모아진 재판의 선고가 있었다. 모든 국민의 안녕과 안전을 책임지어야 하는 한 나라의 수장이었던 대통령이, 오로지 자신의 권력 확보와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 모든 국민을 위험으로 몰아친 계엄 선포를 했던 '내란 죄'를 범했다. 그에 대한 선고에서 지귀연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라는 비유를 들었다.
2. 특검의 '사형' 구형을 수용하지 않고, '무기 징역'을 선고하기 위해 지귀연 판사는 로마 시대를 포함하여 공허한 수사법을 여기저기서 끌어다 대었다. 마치 윤 피고인이 성경을 읽고자 하는 "선한 목적"을 가졌었지만, 계엄 선포와 같은 "촛불 절도"라는 위법한 수단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그럴듯한' 괴변으로 특검의 사형 구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복합적인 헌법적 판단을 하는 '내란죄'의 선고에서, 그 '내란'을 지극히 개인적인 '도덕적 일탈(촛불 절도)'의 차원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3. 특정한 사례에서 이렇게 '비유'를 들 때 우리는 그 비유가 어떠한 가치관을 은닉하고 있으면, 그 비유는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엄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많은 비유는 "반쪽 진리(half truth)"를 가지고 "전체 진리(whole truth)"를 생산하곤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반쪽 진리" 자체가 다층적 편견으로 구성된 것일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3. 만약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이 아니라, "코란을 읽는다는 이유로," 또는 "불경을 읽는다는 이유로"라는 비유를 썼다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성경 읽기"는 선하고 정당한 목적이라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자연스러운 선한행위라고 전제하며, 그 "성경"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극도의 혐오 정치와 같은 문제점을 덮어버린다.
4. 그런데 '성경'이라는 특정 종교(기독교) 의 경전을 예로 든 것은 우연이었을까. 나는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설정이라고 본다. "윤어게인"을 외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오래전부터 집요하게 반대하는 종교 단체가 누구인가. 불교나 이슬람이 아니라, 바로 기독교인들이다. 그들은 '성경'을 언제나 내세우면서, 갖가지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고 종교화하는 것이다.
5. 피고는 여전히 '선한 목적(성경 읽기)'을 가진 사람임을 판사는 공공연하게 선언하고 있는 장치가 된다. 윤 피고인이 감옥에서 읽을 성경을 요청했고, 뉴라이트 계열인 김00 목사가 사인을 하고 성경을 전했고, 구치소에서 '성경을 많이 읽는다'라고 하는 뉴스가 곳곳에 실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특정종교의 경전인 '성경'의 비유를 들어서, 결국 피고인은 여전히 '선한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판사는 선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6. 지 판사는 '계엄선포'라는 막중한 행위의 국가적 책임성을, 지극히 개인적인 '도덕적 유감 (촛불 절도)'의 차원으로 격하시키고 왜곡시키는 지독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가 직시해야하는 문제는 개인적인 '선한 의도 (성경읽기)'의 여부가 아니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수장인 '대통령'이 수행했어야 할 그 막중한 '공적 책임성'이 계엄선포를 통해서 근원적으로 파기되고 훼손한 문제다.
7. 지 판사의 '성경읽기-촛불절도' 비유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윤어게인'을 외치는 기독교인들에게 피고인을 더욱 '거룩한 사람 (오로지 성경을 읽고자 하는)'임을 확인 시키고, 그 거룩한 행위를 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그저 '촛불'하나 훔쳤을 뿐인 '가련한 사람'으로 추앙될 수 있는 근거를 법적으로 공인해버렸다. 평화 ✌️ ✔️
- 강남순 교수님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