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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5~51 와서 보아라. 찬송가 497장 주 예수 넓은 사랑 Ⅵ. 그리스도의 첫 제자들 (요한복음 1:37-42)

ree610 2026. 2. 2. 17:45

요한복음 1:35~51 와서 보아라.
찬송가 497장 주 예수 넓은 사랑

Ⅵ. 그리스도의 첫 제자들 (요 1:37-42)
1. 요한의 두 제자(37-39)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를 가리켜 주었던 두 사람은 안드레와 그와 함께 있었던 다른 한 사람이었다(37절). 또한 이 다른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1) 여기 두 사람은 즉시 그리스도에게 가고 있다. 그 두 사람은 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제거해 버리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하는 요한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 두 사람은 예수를 좇게 되었다.

  (2) 그리스도는 그 두 사람을 친절히 맞아 주셨다(38절). 그리스도께서는 그 두 사람이 뒤좇고 있음을 알아차리자 곧 뒤돌아서 좇아 오는 두 사람을 바라 보셨다. 그리스도는 사람이 자기를 좇는 처음 동기를 미리부터 알고 계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두 사람이 함께 대화를 나누자고 간청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시고 먼저 말씀하셨다. 한 영혼과 그리스도 사이에 교제가 오고 갈 때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무엇을 구하느냐(38절).

  (3) 그 두 사람은 공손하게 그리스도의 거처를 묻고 있다.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그들은 그리스도를 랍비라고 부름으로써 자기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온 이유가 그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함이었음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랍비란 선생님 곧 학교 선생님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그리스도의 학생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께 나왔다. 이와 같이 스스로 그리스도에게 나온 모든 자들도 역시 그리스도의 학생이 되어야 한다.

  (4)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거처로 그 두 사람을 정중하게 초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보라(39절). 그리스도께서는 그 두 사람에게 자신의 거처로 오라고 초대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더욱더 그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사기군들은 자기를 좇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둠으로써 추종자들 속에서 자기들의 이익을 유지하지만, 자신을 뒤좇아 오는 두 사람의 존경과 애정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방법은 그들에게 와 보라는 권유였다. 그리스도는 지체없이 즉시 그 두 사람을 초대하셨다. 지금보다 더 적절한 시간이 있을 수 없다. 쇠는 달구어 졌을 때 쳐야 하듯이 사람은 그 마음이 가장 좋은 상태에 있을 때 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 주어진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지혜인 것이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5) 그리스도의 초대에 이 두 사람은 기꺼이,(의심할 바 없이) 감사히 응했다.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39절). 그 두 사람은 즉시 그리스도와 함께 갔다. 은혜로운 영혼은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초대에 기꺼이 응하게 된다. 그 장소가 어디건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이라면 좋은 것이다. 그 두 사람은 그 날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였다. 그야말로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마 17:4)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기꺼이 그들을 환영하셨다. 그때가 제 십시 쯤 되었을 때였다.

2. 안드레가 베드로를 그리스도께 인도함(40-42)
  (1)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알린 내용.

   1)우선 안드레는 자기의 형제 베드로를 찾는다. 안드레가 자기의 형제를 찾았다는 말 속에는 그를 우연히 발견했더는 말이 아니라 일부러 먼저 시몬을 찾았다. 시몬은 단지 세례 요한의 집회에 참석하려고 왔을 뿐이었으나 기대 밖으로 예수를 만난다.

   2)안드레는 시몬에게 자기들이 만났던 사람에 대하여 말하였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안드레는 "내가 만났다"고 말하지 않고 겸손하게 "우리가 만났다"고 말한다. 안드레는 다른 사람과 함께 명예를 나누기를 즐거워하였다. 안드레는 몹시 기뻐서 "우리가 만났다"고 얘기하고 있다. 안드레는 그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안드레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부족함이 없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지적으로 말한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그런데, 그 사람은 여지껏 들어왔던 그 이상의 인물이었다. 안드레는 자기의 선생이 말했던 것보다 더욱 분명하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3)안드레는 시몬을 예수께로, 즉 그 근본되시는 이에게로 데리고 갔다. 이것은 바로 자기 형제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한 본보기였다. 우리는 우리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의 영적인 행복을 찾아주는 일에 특별한 관심과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친척 관계란 그들에게 좋은 일을 해 줄 수 있는 의무이며 동시에 기회이기 때문이다. 안드레가 시몬을 찾아 메시야를 증거하고 자기의 형제를 그리스도에게까지 인도해 온 일은 그리스도와 하루 동안 대화하고 난 결과였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대접을 보자(42절).
   1)그리스도께서 그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42절). 혹자는 이 이름의 의미에 주목한다. 시몬은 순종이란 뜻이며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이다. 순종하는 비둘기 같은 정신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자격이 있음을 나타내 준다.

   2)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바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시몬에게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그에 대한 그리스도의 총애를 나타낸다. 이렇게 하시므로써 그리스도는 시몬을 자기의 일원으로 택하셨다. 메시야께서 시몬에게 주신 그 이름은 그리스도께 대한 시몬의 충성을 가리킨다. 장차 게바라 하리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이는 돌이라는 히브리 말이다). 베드로는 천성적으로 성질이 급했고 난폭했으며 단호했다.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기본적인 이유로 시몬을 게바 즉 돌이라고 부르셨던 것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후일 베드로의 신앙이 떨어지지 않고 그리스도께 대하여 확고하도록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셨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하나님의 어린 양

* 빌립의 전도법(1:45-49)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말한 것은, 신앙에 대한 변론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딤전1:4; 딛3:9).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믿음을 주는 최선의 길은 예수님과 직접 부딪치는 경험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직접 만난 나다나엘은 만나자마자 즉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49절). 신앙은 이론보다 영적 체험이 분명해야 합니다(4:20). 나다나엘은 예수님께로부터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시32:2).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체험하고 나서 자신의 편견과 자만심을 버리고 예수님에게서 이스라엘의 소망을 찾게 되었습니다(47, 48절).

주님!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나의 주로 고백함으로 반석위에 세우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