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16:1~16 살피시는 눈, 들으시는 귀
찬송가 400장 험한 시험 물속에서
I.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함 (창 16:1-3)
우리는 여기서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여 그녀가 그의 첩이 되는 기사를 보게 된다. 이 일은 세상과 교회에 좀더 빨리 사람들을 번성케 하기 위해 가정을 세우려는 부당한 욕망으로부터 발단된 것 같다.
(1) 이러한 결혼은 주선한 사람은 사래 자신이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우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 사단의 책략이다. 만일 아브람이 사래의 어리석은 계획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의 규례를 좇았더라면 사래에게도 그것이 휠씬 더 유익했을 것이다.
(2) 이 일의 동기는 사래가 자식을 낳지 못함에 있었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아브람이 그의 하녀와 결혼해야 하는 이유로 내세웠다. 아브람은 이러한 주장에 설득되어 그 결혼을 하였다. 우리는 아브람이 사래의 제안을 따른 것은 언약을 물려받을 약속된 후손에 대한 간절한 열망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후사가 될 자는 그의 몸에서 날 아들 이라고는 말씀하셨으나 사래의 몸에서 날 아들이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사래 자신이 그것을 제안했으니 하갈 이면 어떠랴" 육신의 지혜는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의 때를 앞지르는 만큼 또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게 한다. 만일 우리가 중대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일을 행해야 할 때 먼저 기도로 하나님께 자문을 구한다면 이러한 잘못은 잘 예방될 수 있을 것이다.
Ⅱ. 사래와 하갈의 불화 (창 16:4-6)
(1) 사래는 멸시받자 그로 인해 노하여 격정에 사로잡혔다(4절). 하갈은 스스로 자신이 사래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즉 자신이 사래보다 하늘의 은총을 더 많이 받은 것 같았고 그래서 아브람에게도 더 많은 사랑을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과 같이 사래에게 복종하지 않으려 하였다.
(2) 사래의 기분이 언짢은 동안에는 아브람의 마음도 산란하고 편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기가 받은 부당한 모욕에 대해 아브람을 비난한다(5절). 그녀는 경솔하게 그 문제를 하나님께 호소한다.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3) 하갈은 괴로움을 받고 그 집에서 도망간다(6절). 그녀는 그녀 자신이 먼저 여주인을 멸시함으로써 화를 자초하였다.
Ⅲ. 하갈이 광야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남 (창 16:7-9)
(1)사자가 어떻게 도망가는 그녀를 만났는가(7절). 그녀는 자기 나라 애굽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난 중에 있을 때 고향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하갈은 자신의 본분을 벗어나 더욱더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의 길을 벗어난 사람들을 잠시 방황하도록 내버려두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아 돌아가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갈은 광야에 들어설 때까지 도망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보내시고 거기에서 우리를 만나신다(호 2:14).
(2) 사자가 그녀에게 어떻게 물었는가 (8절).
1)그는 그녀를 `사래의 여종 하갈`이라고 불렀다. 비록 그녀가 아브람의 아내였지만 그래도 그녀를 `사래의 여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녀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2)사자가 그녀에게 물은 질문들은 매우 적합하고 타당성 있는 것이었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네가 자신의 본분을 버리고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어디로 가느냐"즉 너는 지금 광야에서 애굽으로, 곧 죄와 위험 가운데로 달려가고 있다는 말이다.
3)그녀의 대답은 정직하고 공정한 고백이었다.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4)사자는 어떻게 그녀를 적절하고 온정 어린 권고로 돌려보냈는가.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9절).
Ⅳ. 하갈의 자식에 대한 예언 (창 16:10-14)
(1) 그녀의 자식에 관한 예언은 현재 고통 가운데 처해 있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자기 자녀들이 하나님의 섭리의 특별한 보호와 감찰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식을 가진 여인들에게는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2) 하갈은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이같이 은혜롭게 나타나신데 대해 경건한 태도로 숙고한다(13,14절).
1)그녀는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섭리에 대해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경우에 적용하면서 두려움에 찬 경배를 드린다. 감찰하시는 하나님(13절). 이 명칭은 그녀에게 있어서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이 될 것이다.
2)그녀는 자기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을 겸손히 찬미한다.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아브람의 장막 단에서 뿐만 아니라 `여기서`곧 이 광야에서도 주를 뵙다니. 여기 곧 내가 전혀 기대하시도 못했고 내 본분에서조차 이탈해 떠났던 이 자리에서 주를 뵙다니 `주여 어찌하여"
(3) 이 사건으로 인해서 그 장소에 다음과 같이 이름이 붙여진다. 브엘라해로이 곧 `나를 감찰하시는 생존자의 우물이라`는 뜻이다(14절). 이곳은 영광의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고통 중에 있는 불쌍한 여인에게 특별한 보호를 베푸신 곳이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창세기 16:9)
** 그리스도인의 본분
* 도망친 하갈에게 주신 권면(16:6-9)
하나님은 도망친 하갈에게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이 갈등 상황으로부터 회피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도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직접 부딪혀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면서 기다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감찰하시는 하나님(16:13)
이는 자신을 주목하여 보시는 하나님, 또는 지켜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갈은 고통을 겪다 못해 주인으로부터 도망쳤으나 광야에서 또다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갈은 이런 고통 속에서 여호와를 만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 외에는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삶을 늘 감찰하시며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약이 분명하다는 것을 믿고 끝까지 주님을 기다리게 하옵소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