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가서다, 보다, 울다!
* 말씀: 누가복음 19장 41절
서사도 설명도 없다. 오직 '다가서다, 보다, 울다'라는 세 동사만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 세 동작은 인간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움직임 전체를 요약한 행위 동사이다. 단 세 개의 동사로 예수님의 마음과 성품을 드러낸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눅 19: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다가서셨다. 그 도시를 보셨다. 그리고 통곡하셨다. 하나님은 멀리서 부르지 않으신다. 가까이 다가서시고, 그대로 보시고, 거절된 사랑 앞에서 아파하신다. 이 3개의 동사는 복음이 현실 속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1. '다가서다': 인간 삶의 현실 한복판으로
‘다가서다’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까움은 곧 예수님의 가까움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 안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분은 멀찍이 서서 판단하지 않으시고 상처 입은 현실 한복판으로 들어오신다. 다가가는 사랑은 위험을 감수한다. 거절당할 가능성을 끌어안는 사랑이다.
예수님의 다가섬은 '위로부터의 강압적 권위'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섬김'이다. 가까이 갈수록 더 아프다는 사랑의 역설을 드러낸다. 예수님의 다가섬은 결국 십자가로 향하는 길의 시작이었다.
2. '보다' - 진실을 직면하는 예수님의 시선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시를 보셨다. 이 동사는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통찰하는 인식이다. 예루살렘의 아름다운 성벽이나, 종교적 열심만 본 것이 아니다. 그 아래 감추어진 권력의 탐욕, 종교의 타락, 평화를 잃어버린 민족의 영혼까지 보셨다. 본다는 것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한다. 보는 순간 책임이 생기고, 보는 순간 외면할 수 없게 된다. 타자와의 만남에서 윤리적 책임이 생긴다고 ‘환대’를 화두로 꺼낸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곧 응답해야 할 부름이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눈은 예루살렘을 향한 응답의 눈이다. 그래서 이 '봄'은 인간의 눈과 다르다. 우리의 눈은 편향되고 선택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예수님의 눈은 감추어진 것을 드러낸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눈 속에서 평화의 도시가 아닌, 평화를 거부한 도시로 나타난다. 평화를 가져오신 분이 바로 눈앞에 있음에도, 예루살렘(평화) 도시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을 짓누르는 비극이다.
3. '울다' - 사랑이 거절당할 때
세 번째 동사 ‘우셨다’는 이 울음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애통의 울음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자기 민족을 위해 울었던 그 비탄(렘 9:1: “어찌하여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이 예수님의 얼굴에서 재현된다.
예수님은 왜 우셨을까?
예수님의 눈물은 무지에 대한 눈물, 거절된 사랑에 대한 눈물, 다가올 파국(AD 70년 예루살렘 멸망)을 아시는 분의 슬픔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 고난받는 하나님이시다. 사랑 때문에 아파하고, 평화가 사라진 세상을 위해 울고, 끝내 그 눈물의 길을 십자가까지 이어 가신다. 눈물은 심판보다 앞서는 사랑이다. 눈물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최후 표현이다. 눈물은 복음의 첫 장이다.
예수님의 '다가섬, 봄, 울음'은 단순한 감정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구조적 방식이다. 다가서면서 멀어진 거리를 좁히는 사랑이다. 현실을 직면하는 사랑으로 거절당할 때에 통곡한다. 예수님의 사랑은 거리감 없는 사랑,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랑,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다. 눈물은 신앙의 약함이 아니라 성숙의 표지이다. 평화를 잉태하는 영혼의 힘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예수님의 눈물은 예루살렘의 종말을 예고했지만, 동시에 새 평화를 여는 시작이었다. 통곡하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절망의 역사 속에서도 소망의 역사가 열린다. "다가서다, 보다, 울다", 이 세 개의 동사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따라야 할 사랑의 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묻는다. 우리에게 정말 사랑이 있는가?
그렇다면 가까이 다가서라. 보고 직면하라. 그리고 애통하라. 울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 기도문
우리를 향해 우시는 예수님,
우리에게 먼저 다가 오시고,
우리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시고,
우리를 위해 통곡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늘의 평화가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먼저 다가서게 하시고,
똑바로 보게 하시며,
그리고 마침내 울 줄 알게 하소서.
그 눈물 속에서 당신의 평화가 시작됨을 깨닫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