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영성

"내 적의 적은 나의 친구?" - 헤롯과 빌라도의 거짓 우정 - * 말씀: 누가복음 23장 12절

ree610 2025. 12. 9. 10:37

"내 적의 적은 나의 친구?"
- 헤롯과 빌라도의 거짓 우정 -
* 말씀: 누가복음 23장 12절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재판 한가운데서 한 문장을 이렇게 덧붙인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눅 23:12).

예수님이 버림받고 십자가로 내몰리던 바로 그날, 두 권력자는 친구가 되었다. 이 짧은 구절은 권력의 속성과 왜곡된 우정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 공동의 골칫거리로 맺어진 우정

헤롯과 빌라도는 오랫동안 서로 불편한 존재였다. 유대 분봉왕과 로마 총독, 두 사람 사이에는 권력 다툼과 경쟁 의식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 사건 앞에서 둘은 미묘한 공통점을 발견한다.
"이 예수 때문에 정치적 이슈를 확대하고 싶지 않다.“

예수님의 무죄를 알면서도, 둘 다 체제 유지와 자기 자리를 더 우선했다. 그 순간 두 사람은 '공동의 선'이 아니라 '공동의 골치덩이'로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정치 권력의 우정이다. 선함 때문에 맺어진 동행이 아니라, 불편한 존재를 함께 처리해야 하는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정치 동맹이다. "내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말은 정의로운 통찰이 아니다. 죄로 물든 인간 권력의 자화상에 더 가깝다.

2. 우리 안의 헤롯과 빌라도

문제는 이런 방식이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함께 싫어할 때 금방 친밀해진다. 비난하고 험담하고 "원래 그 사람 그렇지"라고 말하는 자리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빨리 '우리'가 형성된다. 뒷담화는 연대성의 강력한 접착제다.
반대로 함께 선을 행하자고 할 때는 금세 갈라진다. 누가 주도권을 잡을지, 인정은 누가 받을지, 어디까지 희생해야 할지 그 계산이 복잡해지면 합의는 마냥 늦어진다. 악에 대한 합의는 쉽고, 선에 대한 연합은 어렵다. 이것이 죄의 본성이다. 희생양을 하나 세워놓고 그 사람에게 책임을 모두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우리는 잠시 평안을 흉내 낸다. 헤롯과 빌라도의 '우정'은 바로 이런 희생양 위에 세워진 거짓 평화다.

3. 십자가가 보여준 참된 우정

그렇다면 진정한 우정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친구란 "같은 선을 함께 향해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더 깊이 사랑할 대상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이 참된 친구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요 15:15).

예수님은 권력 게임의 파트너를 찾지 않으셨다. 십자가의 길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함께 사랑할 친구를 부르셨다. 헤롯과 빌라도식 우정은 책임과 죄책감을 줄이는 우정이다. 반면 예수님과의 우정은 서로의 짐을 함께 지며 생명을 살리는 우정이다(갈 6:2).
십자가 앞에서 이 두 우정은 극명하게 갈린다. 권력의 우정은 예수님을 제거함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복음의 우정은 예수님을 기억함으로 시작된다. 세상은 희생양을 만들어 하나가 되지만, 교회는 이미 희생되신 어린 양을 기억하며 하나가 된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함께 나누는 성만찬은 이렇게 고백하는 자리이다.
"누군가를 미워함으로 하나 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함께 기억함으로 하나가 되겠습니다."
이것이 교회와 세상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우리는 배제의 연대가 아니라 포용의 연대로 부름 받았다.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한 연합이 아니라, 약자를 끌어안기 위한 연합으로 초대받았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나는 "내 적의 적"을 기준으로 친구를 고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를 기준으로 친구를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 교회의 연대는 누군가를 배척하기 위해 생긴 연대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함께 사랑하기 위해 생긴 연대인가?
참된 우정은 함께 미워할 대상을 찾는 관계가 아니다. 함께 더 깊이 사랑할 분을 바라보는 동행이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무엇을 함께 반대하느냐’를 중심으로 연맹을 맺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정치 집단에 불과할 것이다.

**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헤롯과 빌라도식 거짓 우정을 끊어내고,
악과 불의한 것에 쉽게 합의하지 않게 하소서.

‘같이 싫어하는 사람’으로 서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 깊이 사랑할 예수님’을 바라보는 친구가 되게 하소서.

십자가의 길을 위해 기꺼이 함께 분투하는
거룩한 친구들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