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의 순수: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는 길
* 말씀: 누가복음 18장 15-17절
우리는 평생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힘써왔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소유하고, 웬만한 일에는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을 성장이라고 믿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 힘으로 설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 그것이 우리가 꿈꾸어 온 어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견고한 어른의 세계를 향해 멈추라고 말씀하신다. 단순히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가던 길을 완전히 되돌아오라고 하신다.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마 18:3).
도대체 하나님 나라는 왜 어린아이의 것일까? 아이가 훌륭해서가 아니다. 아이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무력함을 알기에 부모에게 전적으로 매달릴 줄 알고, 내세울 공로가 없기에 빈손으로 선물을 받을 줄 안다.
우리가 그토록 애썼던 ‘스스로 서는 어른’은 역설적이게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들어가기 힘든 문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 나라는 꽉 쥔 어른의 주먹이 아니라, 활짝 펼쳐진 아이의 손바닥 위에 놓이는 은혜이다. 이 부르심은 방향 자체를 바꾸는 거룩한 유턴이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눅 18:16)
1. 막는 손과 부르시는 손
누가복음의 장면은 단순하다.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와 안수해 달라 부탁한다.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으며 가로막는다. 그들의 눈에 아이들은 말씀 사역을 방해하는 존재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말씀하신다.“내게 오게 하라, 막지 말라.”
제자들은 문지기처럼 아이들을 걸러 내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가슴을 여신다. 막는 손과 부르시는 손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예수님의 시선에서 하나님 나라는, 잘 준비된 어른의 나라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나라였다.
2. 어른은 분석하고 해부하고, 어린아이는 감탄한다.
어른은 사물을 분석하고 해부한다. 무엇이 옳은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어떻게 설명할지를 따진다. 분석은 소중한 능력이지만, 문제는 거기서 멈출 때다. 분석이 삶의 ‘놀람과 경외’를 삼켜 버릴 때, 신앙은 차갑게 식는다. 반대로 어린아이는 감탄한다. ‘와!’하는 놀라움으로 반응한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점이다. 모두를 이해하지 못해도, 자기보다 큰 존재 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죽이며 바라본다. 감탄은 설명 이전에 찾아오는 마음의 열림이다. 신앙의 성숙이란, 분석 능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분석을 통과해 다시 감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폴 리쾨르는 이것을 ‘제2의 순수’라고 불렀다. 비판 이전의 순진한 믿음(제1의 순수)이 아니라, 과학과 역사비평, 종교 비판과 회의를 다 통과한 후에도, “그럼에도 나는 예수님 이야기를 신뢰하겠다”고 고백하는, 성찰을 통과한 신뢰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아이’는 생각을 멈춘 철없는 순진함(childish)이 아니다. 오히려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되, 끝까지 따져 보고도 다시 감탄할 줄 아는 순전한(childlike) 마음이다. 성숙한 믿음은 생각하지 않는 믿음이 아니라, 깊은 성찰을 거친 뒤에도 다시 맡길 줄 아는 믿음이다.
3. 내 안의 어린아이
사실 우리 안에는 또 다른 아이가 살고 있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 조건부 인정 속에서 자랐던 경험, 실수하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를 지닌 ‘내면 어린아이’이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늘 이런 목소리가 응크리고 있다.
“잘해야 사랑받는단다.”
“성적을 좋게 내야 안전하단다.”
그러나 예수님의 “내게 오게 하라”는 말씀은 우리 안의 어린아이에게도 주어진 복음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너는 부담이 아니라, 나의 기쁨이다.”
우리가 가진 조건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다는 선언이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아들의 신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권리가 있으셨다(빌 2:6). 하지만 자기 인생을 끝까지 스스로 통제하는 어른의 길이 아니라, “아버지여,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눅 22:42)라고 기도하는 아들의 길을 택하셨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분의 자발적인 낮아지심과 무력함이 구원의 능력이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어린아이와 같은 아들과 딸의 길(롬 8:15)을 함께 가자고 초청하신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런 사람의 것이다. 세상의 냉소와 질문을 알고도, 그 모든 분석과 해부를 통과한 뒤에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감탄할 줄 아는 어른, 그리고 다시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맡기는 사람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을 두려워하는 순진함이 아니라, 비판을 지나 다시 감탄하며 감사하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심령이다. 우리 모두 이 거룩한 유턴, ‘제 2의 순수’로의 회귀를 깊이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 기도문
어린아이를 열납하시는 예수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되,
생각의 끝에서 다시 감탄하게 하소서.
분석을 그치지 않되,
분석 너머에서어린아이처럼 주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의 어른이기 전에,
하나님 나라의 어린아이로 순전히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