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나라는 ‘언제’가 아니라 ‘누구’이다!
* 말씀: 누가복음 17장 20-21절
전쟁과 기후 위기, 경제 불안, 정치적 양극화, 그리고 AI까지. 우리는 거의 매일 ‘시대가 심상치 않다’는 신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 뉴스와 유튜브는 재난과 갈등을 엮어 ‘마지막 때의 징조’를 해석하려 한다. 신앙의 언어마저 어느새 “언제 끝이 오는가?”라는 불안에 끌려다니며 허공을 맴돌 때가 있다.
1. 징조에 매인 시대: ‘언제’를 묻는 사람들
이 질문은 사실 낯선 것이 아니다. 2천 년 전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께 그렇게 물었다.“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눅 17:20)
그들의 관심도 ‘언제’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리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2. 하나님 나라는 ‘언제’가 아니라 ‘누구’이다.
예수님은 시간표 대신 ‘인격’을 가리키신다. “언제 오는가?”가 아니라, “지금 누가 너희 가운데 서 있는가?”를 되물으신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시대나 체제가 자동으로 만들어 내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가까이 오신 하나님의 통치 그 자체이다. 예수님이 계신 곳, 그분을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
바리새인들이 기대한 나라는 로마 제국을 뒤엎을 정치혁명이나 하늘의 눈부신 표적, 누가 봐도 ‘이제 시작됐다’고 외칠 수 있는 대단한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의 방식은 다르다. 그분은 ‘볼 수 있게’ 임하는 나라를 부정하신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여우의 입을 빌려 이 진리를 꿰뚫는다.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이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3. 오늘 우리가 붙잡을 질문: 예수님을 어디에 두었는가?
하나님 나라도 그렇다. 눈으로 보기에는 별 것 아닌 일상, 골방에서 조용히 흘린 눈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정직과 섬김 안에서 보이지 않는 통치가 시작된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결국 “나는 지금 예수님을 어디에 두고 사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수님이 신앙의 부록이 아니라, 우리 생각과 판단과 관계의 중심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그 때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서 겨자씨처럼 자라기 시작한다. 예수님의 눈으로 약자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향해 넉넉히 손을 내밀며, 예수님의 길을 따라 기꺼이 순종하는 선택을 한다. 그 때에 비록 세상은 눈치채지 못해도 하나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실재하는 현실이 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끊임없이 “언제?”를 묻도록 부추킨다. 언제 끝이 나나, 언제 성공하나, 언제 안정되나? 하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질문을 배우라고 초대한다.
“지금, 너의 삶 한가운데 동행하시는 그분을 경험하고 있는가?”
“오늘, 너의 말과 선택 속에서 예수님이 실제로 주님으로 계신가?”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하나님 나라는 달력 위의 어떤 날짜에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로 모시고 사느냐’에 따라 이미 오늘 여기서 시작되기도 하고, 안타깝게 놓쳐 버리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언제’가 아니라 ‘누구’, 곧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나라는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가까이 왔고, 그분을 주로 모시는 삶 가운데 조용히, 그러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언제?”라는 미래의 불안 대신 “누구?”라는 현재의 질문 앞에 서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신앙이다. 그분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 기도문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우리가 끝이 언제 올지 계산하며 불안해 할 때,
하나님 나라는 ‘언제’가 아니라 ‘누구’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하소서.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작은 진실, 작은 나눔, 작은 섬김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