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영성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 - 폭력이 사랑으로 - * 말씀: 히브리서 9장 22절 다음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불편한 진리이다..

ree610 2025. 11. 15. 16:46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 - 폭력이 사랑으로 -
* 말씀: 히브리서 9장 22절

다음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불편한 진리이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피, 흘림, 사함”이라는 세 단어가 하나의 문장 안에 얽혀 있다. 우리는 마지막 단어, '사함'(용서)을 갈망한다. 그러나 그 앞의 '피와 흘림'은 외면하고 싶다. 마치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는 길목에 가시덤불이 놓여있는 것처럼, 용서와 회복의 길에는 피의 통과가 있다. 왜 하나님은 이런 방식을 택하셨을까? 히브리서는 그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답한다.

1. 구약 제단의 피, 자비의 통로

구약의 제단은 동물들의 피로 가득했고 제사장의 손은 붉게 물들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레 17:11)

"내가 주었다", 바로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꾼다. 피는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련하신 생명의 선물이었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나, 하나님은 인간 대신 동물이 죽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이것은 폭력이 아니라, 폭력 한가운데 놓인 자비의 통로였다. 그러나 그 자비는 불완전했다. 해마다, 날마다 반복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저자의 표현처럼,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 10:4). 그러므로 구약의 제단은 늘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끝났다. "언제 온전한 피가 올 것인가?“

2. 예언자들의 탄식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니라"(미 6:7-8).

예언자들은 제사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제사의 한계를 절감했다. 피는 흘러도 사람의 마음은 완악하여 변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제단은 붉어도 더럽혀진 인간의 삶 앞에서 탄식했다. 피 흘림과 용서함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컸다. 그 때 다음의 말씀이 들려왔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이사야 53:5,10).

이제 희생 제물이 동물에서 한 인격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3. 십자가, 역설의 정점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11-12).

여기서 모든 것이 뒤집힌다. 제사장이 제물이 되고, 드리는 자가 드려지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희생자가 되신다. 예수님이 못박히신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사건이다. 로마제국의 극형, 육체의 찢김, 공개적 수치,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 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폭력이 사랑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폭력의 주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는 인간이 동물을 죽였다. 그러나 십자가에서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주셨다. 인간은 폭력을 가했지만, 예수님은 그 폭력을 받으시며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라고 기도하셨다. 받은 모욕과 폭력을 용서로 바꾸셨다. 당한 상처를 치유의 통로로 만드셨다. 죄의 값을 치르되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치르신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브리서 10:19,22).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피 흘림’은 새롭게 ‘사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죄로 막혔던 길이 열렸다. 찢어진 휘장은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피 흘림이 있었기에, 사함이 있다. 십자가가 있었기에, 우리가 있다. 그분의 죽음이 있었기에, 우리의 삶이 있다. 이제 이웃을 위해 섬기는 ‘작은 십자가’의 삶으로 우리가 보내심을 받고 있다.

* 기도문

용서의 하나님,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기에,
겸손히 우리의 고개를 숙입니다.

십자가에서 폭력이 사랑으로 바뀌고,
우리 죄악이 사유함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열린 은혜의 길을
주님과 함께 담대히 내딛게 하옵소서. 아멘.